대법원이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지적장애 고교생의 정신질환 호소에도 감정 없이 실형을 선고한 것은 잘못이라며 재판을 다시 하라고 판단했다. 하급심에서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대법원 1부(주심 마용주 대법관)는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A(17)군에게 장기 9년·단기 6년의 징역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 보내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지난 2024년 8월 19일 A군은 경기 안산시 상록구 한 중학교 근처에서 등교하던 B(14)양의 머리 부분을 둔기로 내려치고 흉기를 휘둘러 현행범 체포됐다.
지적장애가 있는 A군은 같은 해 5월께 이성적으로 호감을 갖던 후배 B양으로부터 연락하지 말라는 취지의 말을 들은 후 유서를 쓰고, 한 달여 뒤 다니던 고교 교사에게도 이를 알렸다. A군은 학교전담경찰관 권유로 입원해 정신과 치료를 받다 그해 7월 말 보호자의 요구로 퇴원, 20여일 뒤 범행을 저질렀다.
A군은 수사기관에서 우울증이 심했고 정신과 입원 처분을 바란다고 진술했으나 구속된 후 기소됐다.
A군은 1심 첫 공판기일 전 지적장애인으로 의사소통 보조인력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1심에서는 전문심리위원이 재판에 관여했을 뿐 법원에서 추가적인 조력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A군은 1심과 2심에서 지속적으로 정신질환을 호소하고 범행에 영향을 미쳤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또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재범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며 진단서, 진료기록부, 의무기록 사본 등을 제출했다고 전해졌다.
1심은 "심신미약까지 이르지 않았지만 지능이나 정신적 어려움이 범행 동기에 다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징역 장기 8년·단기 5년을 선고했다.
2심은 부모의 탄원서와 '전문적인 치료를 받고 싶다', '잘못을 반성한다'는 A군의 진술만 듣고 공판을 한 차례만 연 뒤 변론을 종결했다. 이어 '병력을 핑계로 책임을 경감하려는 모습만을 보인다'며 형을 높여 징역 장기 9년·단기 6년을 선고했다.
대법은 1·2심에서 A군이 지난 2018년 11월부터 2024년 5월까지 지속적으로 정신과 입원 및 통원치료를 받아 왔고, 퇴원 20여일 후 범행에 이르게 된 점 등을 충실히 고려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A군의 장애 내용과 정도, 재범 위험성, 치료감호시설에서의 치료의 필요성 등에 관해 감정을 실시해 심신미약 여부 등을 가려볼 필요가 있었다고도 봤다.
대법은 "1심과 원심(2심) 공판과정에 피고인의 성장과정이나 보호환경, 심신상태 등에 관한 조사 및 피고인과 변호인이 주장하는 정신 질환이나 정신적 장애의 내용과 정도, 징역형 복역 후 재범의 위험성, 치료의 필요성 등의 감정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피고인이 기존의 정신질환에 대한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은 채 단순히 징역형을 복역하다가 출소해 범행 이전과 유사한 생활환경으로 복귀하게 된다면 여전히 정신질환으로 다시 범행을 저지를 개연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심으로서는 소년이자 정신적 장애인이고 구속된 상태에 있던 피고인에 대해 절차적 권리와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사정이나 사유가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며 "필요한 조치와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잘못이 있고 이런 잘못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대법은 헌법 12조 1항의 적법절차 원칙, 27조의 재판 받을 권리의 보장을 언급하며 "피고인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형사절차의 진행과정과 결과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필요한 절차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헌법이 선언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내용"이라고 설시했다.
이를 위해 소년범 사건의 경우 심신상태와 가정상황 등에 대해 정확한 사실을 밝히도록 조사관을 위촉하거나 판결 전 조사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장애인의 헌법상 재판 받을 권리 보장을 위해 장애 유형과 연령 등을 고려해 보조인이나 통역인, 신뢰관계인을 재판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대법은 "정신적 장애를 밝히거나 이를 이유로 치료의 필요성 등을 주장하는 것을 '죄를 반성하거나 후회하고 있지 않다는 인격적 비난요소'로 보아 가중적 양형의 조건으로 삼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했다. 장애를 밝히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어 방어권 행사에 지장을 주고 실질적 평등이 보장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라는 취지다.
Copyright ⓒ 모두서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