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노묘정 작가] 서울독립영화제 단편경쟁1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작품이 있다. 바로 ‘물질형태’. 솔직히 작품 제목만 보고 ‘음, 쉽지 않은 영화겠군.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고 봐야지’라고 생각했다. 뭔가 미술관에서 상영되는 내러티브 없는 실험 영화나 미디어아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하니 그렇지 않았다. 그저 카메라의 차분한 시선대로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 무엇 하나 과하게 보여주려는 느낌 없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 채, 인물과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침착하게 비추고 있다.
작품은 ‘시락’님이 극단 코끼리들이 웃는다 공연의 음성 해설 작성을 위해 배우와 함께 연습에 참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시락님은 시각장애인으로, 시각적인 부분이 아닌 다른 오감을 통해 세상을 느낀다. 감독님이 쓴 글을 보면 ‘시락’의 세계에서 소리는 풍경이 되고, 발자국은 표정이 된다고 표현했는데, 작품을 보면 정말 그런 부분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시락님과 카메라가 비추는 풍경들을 통해 공감각적으로 세상을 보는 체험을 한다.
이 작품이 좋다고 느낀 점은 시락님이 주인공이지만, 시각장애인인 시락님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느낀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표현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보면서 누군가를 제대로 보려고 하는 노력은 그 사람을 판단하는 생각들을 비워내는 작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이럴 것 같아,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네-로 결론짓는 것이 아니라, 계속 다른 가능성을 품고 현재의 그 사람을 충분히 경청하는 것이야말로 그 사람을 제대로 보고 있는 것 아닐까. 그래서 너무나도 많은 시각 정보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보다, 오감으로 세상을 느끼려고 하는 시락님이 더 세상을 잘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시락님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서울독립영화제 폐막식 후 단편 우수작품상을 수상한 감독님과 뒤풀이 자리에서 만났다. 이미 그때부터 칼럼을 쓸 생각이어서 감독님께 여러 가지를 물어봤다. 특히 이 작품을 하면서 얻은 것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다음 작품을 하게 될 때 어떤 도움이 될지 궁금했다. 감독님은 ‘인간을 깊고 자세히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었다고 답했다. 극영화를 찍을 때면 자신이 얻고 싶은 장면을 메이킹하는 데 집중하게 되는데, 이 작품을 할 때만큼은 본인이 찍고 있는 인물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앞으로 작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인간을 깊고 자세히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다는 것은 창작자에게는 어마어마한 무기를 얻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눈으로 본 것을 작품으로 잘 풀어내야 하는 것도 큰 숙제이기는 하지만, 둔하고 무심한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은 아무리 테크닉이 좋고 경험이 많아도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할 수 없다. 영화를 만드는 우리보다 예리하고 따스한 마음을 가진 관객들이 세상에 훨씬 많기 때문에, 이런 눈을 기르는 훈련을 평생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작품에 나온 시락님의 마지막 인터뷰를 끝으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을 남기며 글을 마친다.
“뭐랄까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음… 저한테는 좀 여러 가지 제한, 약간 결핍, 부족이라고 느껴지는 것 같고요. 그래서 더더욱 보이지 않는 건 좀 더 귀를 열고, 계속 눈을 감지 말아야 하는, 그래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제가 알지 못하는…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더 많아진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계속 거기서 머물지 않고 계속 고민하고 탐구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