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손성은 기자]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달러 자금을 원화로 돌리기 위한 ‘환전 유도’에 나섰지만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달러 예금은 원화 예금보다 금리가 높고, 환차익 기대도 여전하다. 고환율 국면이 이어지면서 개인과 기업 모두 달러를 쉽게 내려놓지 않는 분위기다.
◇1400원대 고환율 지속…달러 예금 잔액 다시 늘었다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00원대 중후반을 유지하는 고환율 국면이 이어지면서 시중자금이 달러 자산으로 몰리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달러 예금 잔액은 674억달러로, 지난해 말(671억달러)보다 약 2억달러 증가했다.
앞서 달러 예금은 지난해 11월 약 603억달러에서 12월 672억달러로 한 달 새 70억달러 가까이 급증했다. 환율 상승 국면에서도 달러 보유를 확대하는 이례적인 흐름을 보인 다.
정부는 최근 원·달러 환율 변동성 확대의 배경으로 해외 투자 확대와 달러 예금 증가 등 수급 요인을 지목했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시중은행 외환 담당 임원들을 소집해 외화예금 마케팅 자제와 원화 환전 유도를 주문했다.
은행권도 대응에 나섰다. KB국민은행은 글로벌 플랫폼에서 외화 수익을 얻는 크리에이터가 이를 원화로 환전할 경우 환율 우대를 제공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외화 입출금 통장에 보유한 달러를 원화로 환전할 때 우대 환율을 적용한다. 우리은행은 해외여행 특화 외화예금 상품의 달러 금리를 낮췄고, 하나은행도 유사한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달러 예금 증가세 ‘주춤’…정책 효과보다 환차익 실현 영향
정부와 금융당국, 은행권이 동시에 수급 안정에 나서면서 달러 예금 잔액은 단기적으로 감소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5대 은행의 달러 예금 잔액은 660억달러로, 15일보다 약 14억달러 줄었다.
다만 은행권은 이를 정책 효과로 해석하지 않는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당국의 안정화 방안이나 은행 대응보다는 환차익 실현에 따른 자연스러운 조정으로 본다”며 “연말 대비 환율이 오른 만큼 차익을 실현하려는 수요가 일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권에서는 최근의 환전 유도책이 구조적 해법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금주 입장에서 달러를 원화로 바꿀 유인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핵심은 금리 차다. 시중은행 달러 예금 금리는 현재 2%대 후반~3% 초반 수준이다. 반면 원화 정기예금 금리는 2%대 중후반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 환율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까지 겹치면서 달러를 유지하려는 심리가 강하다. 이자 수익과 환차익 가능성을 동시에 기대할 수 있는 상황에서 원화 환전은 선택지가 되기 어렵다.
시중은행 다른 관계자는 “원·달러 환율 하락을 전제로 한 환차익 실현 수요가 본격화되지 않는 한 달러 예금이 눈에 띄게 줄어들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기업 달러 예금은 ‘정책 비탄력’…시장 논리가 좌우
기업 예금은 개인보다 정책 유도에 더 둔감하다. 특히 수출기업의 달러 예금은 수출 대금 유입과 해외 투자, 결제에 대비한 실수요 성격이 강하다.
시중은행 또 다른 관계자는 “수출기업들이 단기 환차익을 노리고 달러를 쌓아두는 구조는 아니다”며 “환율 변동성과 글로벌 결제 수요에 대비해 외화를 보유하는 만큼 환전 유도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달러 예금의 증감은 정부 정책이나 은행 마케팅으로 쉽게 제어되지 않는다. 환율 수준, 금리 격차, 시장의 기대가 더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당국과 은행의 환전 유도는 자금 흐름의 ‘속도 조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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