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겉보다 중요한 건 작동 방식이다. 정치는 말과 행동으로 움직이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고유한 ‘문법’이 존재한다. 법과 제도의 언어, 권력의 계산, 대중의 심리, 미디어 전략과 정치 언어 등이 어떤 타이밍에 움직이며, 무엇을 감추고 드러내는지는 단순한 논쟁 너머의 작동 규칙을 따른다.
〈정치문법〉은 한국 정치의 핵심 이슈와 정국 전개를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닌 정치 구조, 전략, 심리, 제도 작동 방식의 측면에서 분석해본다. 정치를 이해하고 싶다면, 정치의 문법부터 파악하라.
【투데이신문 박애경 발행인】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국혁신당에 “우리와 합치자”며 합당을 전격 제안했다. 목표는 분명했다. 6·3 지방선거를 “같이 치르자”는 문장은 선거연대를 넘어 정당의 경계선을 지우자는 요구로 들린다.
정 대표의 언어는 ‘원팀’과 ‘시대정신’이었다. 12·3 비상계엄 내란 극복, 이재명 정부 성공이라는 두 갈래의 서사를 한 줄로 꿰어 “따로가 아니라 같이”를 주문했다.
하지만 합당은 언제나 ‘명분’으로 시작해 공천과 룰로 끝난다. 합당은 선거공학이기도 하고, 조직공학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공천공학이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과거 “덮어놓고 묻지마 합당”과 “공학적 접근”을 경계한 것도 그 지점이다. 조국혁신당이 어떤 대답을 내놓든, 이번 제안은 지방선거 판을 ‘통합의 정치’로 끌어올렸다.
정청래 대표의 원팀 제안에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이 발끈했다. 국민의힘은 이를 “통일교·공천뇌물 의혹 물타기”라고 규정하며 특검 우선 수용을 촉구했고, 개혁신당은 “같은 중국집에 전화기 두 대”라며 조롱으로 일갈했다. 일련의 반응을 통해 여·야·정의 숨은 문법은 무엇인지 들여다본다.
정청래의 원팀 제안
정청래 대표는 조국혁신당에 “따로, 또 같이”의 과거를 소환해 이제는 “같이”만 남기자고 했다. ‘한 지붕’ 문법이다. 과거형(총선은 따로)과 현재형(대선은 같이)을 연결해 미래형(지방선거도 같이)으로 밀어붙이는 구조다.
그리고 이재명 정부의 성공과 지방선거의 승리를 한 세트로 묶어 ‘시대정신’을 부각시켰다. 이 문법을 적용함으로써 ‘합당은 가치의 결합’이 아니라 ‘목표 달성의 도구’로 정당화시킨다.
원팀이 되면 ‘승리의 비용’도 절감된다. 다당 구도가 유지되면 선거는 조정비용이 커진다. 후보 단일화, 지역별 역할 분담, 지지층 동원 메시지의 일원화가 매번 협상 테이블에 오른다. 합당은 그 협상비용을 제도적으로 없애는 방식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러한 비용을 “처음부터 없애자”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다.
합당 제안이 더 강하게 들리는 이유는 상대가 원내 제3당(12석)이라는 점과도 맞물린다. 민주당은 ‘제3당의 요구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범진보진영의 표 분산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그동안 조국혁신당은 교섭단체 요건 완화 등 원내 영향력 확대를 요구해왔다. 민주당의 합당 제안은 그 요구를 다른 형태로 종결하려는 선택지이기도 하다. “룰을 바꾸자”는 조국혁신당의 요구 대신 민주당은 “팀을 합치자”로 문제를 재정의한다.
또 하나의 민주당의 문법은 ‘정치적 책임의 재배치’다. 선거에서 지면 ‘각 당’에게 분산되는 책임이, 합당을 하면 그 책임이 ‘하나’로 모인다. 정청래 대표의 ‘원팀’ 제안을 수용하는 것은 승리의 과실뿐 아니라 패배의 책임도 함께 계약하는 셈이다.
조국의 숙고
조국혁신당은 합당이라는 단어에 부정적 의견을 표출한 정당이다. 조국 대표는 과거 합당론을 두고 “공학적 접근”이라고 비판하며, 비전·정책의 합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못 박았다. 합당은 절차가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라는 주장이다.
그의 문제의식은 지역정치 구조를 겨냥해왔다. 호남의 1당 지배, TK의 1당 지배를 “혁신하겠다”는 말은 민주당과의 차별을 ‘정체성’으로 삼아온 조국혁신당의 존재 이유를 설명한다. 그래서 민주당의 합당 제안은 이 문제의식을 품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기존 1당 체제’로 다시 흡수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고 그는 경계한다.
아울러 조국 대표가 최근 “돈 공천 같은 구태를 깨겠다”는 메시지를 꺼낸 것은 지방선거에서 공천이 핵심이라는 사실을 정면으로 겨눈 말이다. 조국혁신당은 민주당과 한 지붕아래에서 공천 룰을 유리한 쪽으로 바꾸지 못한다면 공존할 이유가 약해진다.
조국 대표가 “정강·정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했던 대목은 합당 논의가 시작되는 순간 역으로 민주당을 압박하는 카드가 된다. 합당의 명분을 세우려면 결국 정책 패키지와 당내 민주주의 장치까지 테이블에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국 대표는 이번 합당 제안에 대해 즉답 대신 “국민과 당원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며 당내 논의 절차를 예고했다. 갑작스러운 제안의 무게를 인정하면서도 결정을 ‘절차’로 돌려 시간을 늦추는 방식이다.
여기서 조국혁신당의 선택지는 단순하지 않다. 합당을 수용하면 선거의 위험(표 분산)을 줄일 수 있지만 독자적 정체성을 잃을 수 있다. 합당을 거부하면 독자성을 선명해지지만, 선거 결과가 흔들릴 경우 ‘분열의 책임’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
지방선거까지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 합당 제안에 조국혁신당이 시간을 끌수록 ‘원칙을 지키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는 강화되고, 민주당이 조급해질수록 “선거용 통합”이라는 가십도 늘어난다.
승부처는 공천설계
합당 논의가 본격화되는 순간, 문법은 결국 공천으로 귀결된다. 정당 통합이든 선거연대든,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단 하나다. “누가 어디에 출마하는가.” ‘원팀’은 ‘단일공천’의 다른 이름이다.
정청래 대표가 “실무 테이블은 서둘러 만들자”고 한 대목은 통합이 선언이 아니라 계약임을 말해주는 장면이다. 계약서는 조항이 필요하다.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광역. 기초의원까지 층위가 많을수록 조항은 촘촘해지고 이해충돌은 늘어난다.
민주당의 선택지도 쉽지 않다. 민주당이 진짜로 통합을 원한다면, 조국혁신당이 요구할 ‘공천 혁신 장치’를 일부 수용해야 한다. 경선 룰, 공천심사 투명성, 현역 프리미엄 조정 같은 기술적 장치가 논의될 수밖에 없다. 조정이 크면 당내 반발이 커지고, 조정이 적으면 조국혁신당 지지층이 ‘흡수통합’이라고 반발한다.
조국혁신당의 계산도 복잡하다. 합당을 수용하면 안정적 간판을 얻지만, 지역 기반을 키울 ‘독자 공천’ 실험은 줄어든다. 반대로 합당을 거부하면 ‘민주당 2중대’ 이미지를 벗고 지역에서 교두보를 만들 수 있으나, 광역단체장·핵심 지역에서 표 분산의 비난을 떠안을 위험도 커진다.
그래서 이번 합당 논의의 승부처는 ‘공천 설계’에 있다. 유권자는 명분보다 결과를 본다. 지방선거 후보군이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통합은 ‘시너지’가 되기도 하고, ‘기득권 연장’으로 읽히기도 한다.
야당의 반발
국민의힘은 합당 제안을 ‘권력 유지’로 변역하고 즉시 ‘통일교·공천뇌물 의혹 물타기’로 규정했다. 정치적 야합이라고 맹비난하며 우선 특검 협상을 수용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국민의힘이 말한 “고장 난 덩치 큰 버스”라는 비유는 감정의 각인을 노린다. 통합을 ‘덩치 키우기’로 묘사하면, 유권자는 통합을 성장이나 안정이 아니라 위험의 확대처럼 인식할 수 있다.
“툭검 수용이 먼저”라는 요구는 또 다른 덫이다. 국민의힘은 특검을 통해 민주당의 의혹을 집요하게 파헤쳐 이번 지방선거에서 도덕성 프레임으로 대응하려는 계산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대응이 까다롭다. 국민의힘의 특검 프레임을 무시하면 ‘회피’가 되고, 정면 대응에 매달리면 합당 이슈의 주도권을 잃는다. 그래서 민주당은 ‘시대정신’ 같은 거대 담론으로 상층을 덮고, 실무 협상은 조용히 진행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조국혁신당도 이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민의힘은 조국혁신당을 향해 “특검엔 침묵하고 야합에 흔들리면 심판”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조국혁신당이 어떤 선택을 해도 비용을 치르게 만드는 ‘양면 포위’다. 합당을 받으면 “야합”, 특검을 거부하면 “민주당 2중대”라는 조롱이 남는다.
청와대의 거리두기, 개혁신당의 조롱
청와대는 애매한 거리를 유지했다. 홍익표 정무수석은 “사전에 전달받았다”고 말하면서도, 당·청의 사전 조율 여부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설계하지 않았다”는 통합의 결과에 따른 책임을 조절하려는 정치적 거리두기의 전형이다.
청와대가 덧붙인 ‘대통령 지론’이라는 설명은 통합에 지지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는 합당을 ‘정권 성공의 연장선’으로 정당화하는 효과가 있지만, 동시에 통합이 실패했을 때 청와대가 부담해야 할 정치적 비용도 키운다. 그래서 청와대는 지지와 개입 사이의 중간지대를 택했다.
개혁신당의 ‘조롱’으로 일갈했다. 이준석 대표가 말한 “같은 중국집에 전화기 두 대”는 두 당의 정체성에 대한 공격이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차이를 ‘기만’으로 규정함으로써, 통합의 명분을 ‘정체성 붕괴’로 차환하려 한다. 또한 “조민당” 같은 표현으로 중도층에게 정치를 ‘희화화’해 낮은 수준의 정당을 폄훼하려 한다. 결국, 민주당이 통합을 통해 ‘빅텐트’를 만들려 할수록, 개혁신당은 “너희는 원래 하나였다”는 말로 그 텐트를 찢으려 한다.
정청래 대표의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제안은, 지방선거를 앞둔 ‘범진보 재정렬’의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다만 이 제안이 ‘원팀의 승리 공식’이 될지, ‘물타기 프레임’이 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정치문법에서 통합의 성패는 계약서로 갈린다. 명분이 아무리 좋아도 공천과 룰, 조직과 책임이 계약서에 어떻게 담기느냐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조국혁신당이 요구해온 독자성의 값, 민주당이 지키려는 기득권의 값,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유권자가 판단하는 공정의 값. 정치문법은 그 ‘값’에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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