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대만 생산시설 인수와 미국 메가팹 투자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면서 AI 메모리 시장의 경쟁 구도가 다시 흔들리고 있다.
업계의 관심은 마이크론의 증설 자체보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맞닥뜨릴 고객사 협상 구조 변화와 공급망 압박에 쏠린다. AI 데이터센터용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이 커질수록 공급사는 ‘성능’만이 아니라 물량과 납기 확신, 생산 거점 안정성까지 패키지로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이크론은 지난 19일(현지시각) 대만 먀오리현에 위치한 PSMC의 P5 공장 인수를 위한 의향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인수 금액은 18억달러(약 2조6500억원)로 30만 제곱피트 규모의 300mm 팹 클린룸이 포함된다. 마이크론은 내년 하반기부터 D램 생산량 확대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거래는 규제 당국 승인을 거쳐 올해 2분기까지 마무리될 예정이다.
◆ “공장 인수=시간 매입”…대만 투자, 증설 '속도전'
업계에서는 이번 인수의 본질을 “공장을 산 게 아니라 시간을 산 것”으로 본다. 반도체 공장은 착공 이후 양산까지 수년이 걸리지만 마이크론은 완공된 시설을 확보해 증설 리드타임을 단축했다. 인수 대상 공장이 기존 마이크론 시설과 인접해 인력 운영과 공정 연계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속도전의 배경으로 꼽힌다.
마니쉬 바티아 마이크론 글로벌 운영 담당 수석 부사장은 “수요가 공급을 웃도는 시장에서 생산량을 확대해 고객 대응력을 높이게 될 것”이라며 “기존 시설과의 결합으로 운영상 이점이 크다”고 밝혔다.
◆ 마이크론의 생산 확대, 삼성·SK 협상력 흔든다
마이크론의 공격적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는 HBM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도 고객사들이 공급망 다변화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빅테크는 특정 업체 의존을 줄이기 위해 멀티벤더 체제를 강화하는 흐름이 뚜렷하고 이 과정에서 마이크론이 생산 여력을 확대해 ‘납기’와 ‘공급 안정성’을 확보할 경우 협상 구도가 달라질 수 있다.
업계에서는 마이크론이 기술 격차를 단숨에 좁히기보다 먼저 캐파를 확보해 고객 대응력과 협상력을 키우려는 전략으로 보고 있다. AI 메모리는 공급이 타이트할수록 고객사 입장에서 확실하게 제때 받을 수 있는 공급사의 가치가 커진다. 이 때문에 마이크론의 투자는 단순 추격이 아니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상대해온 HBM 협상 구도 자체를 흔드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HBM4, 수율·패키징이 '승부처'
한국 기업들도 대응을 서두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청주 M15X 신공장을 조기 준공해 양산 준비에 들어갔고 삼성전자는 평택캠퍼스 일부 라인을 메모리로 전환해 AI 메모리 공급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시장의 다음 승부처는 단순한 증설 경쟁이 아니라 HBM4 이후의 수율과 패키징, 공정 통합 역량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HBM은 적층 구조와 열 제어, 후공정 난이도가 맞물려 병목이 발생하기 쉬운 제품이다. 결국 경쟁은 “누가 더 많이 만드느냐”에서 “누가 더 안정적으로 고객 맞춤형 사양을 후공정까지 포함해 제공하느냐”로 이동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AI 메모리 시장은 공장 증설만으로 끝나는 싸움이 아니라 설계 단계부터 메모리와 패키징, 파운드리 협력이 중요해지고 있다”며 “마이크론은 미국 내 생산으로 관세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대만 등 아시아 거점을 활용해 속도와 효율을 동시에 노린 전략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크론의 이번 투트랙 확장은 ‘3위의 반전’이라는 상징성보다 AI 메모리 시장에서 공급망이 경쟁력으로 작동하는 구조 변화가 본격화됐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기술 우위를 유지하는 동시에 납기 안정성과 공급망 분산 요구까지 충족해야 하는 과제가 더욱 무거워지고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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