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항 출발 후 한 달이 지났다. 여행은 후반부로 접어들고 있다. 자동차 주행거리가 1만4천㎞를 지났다. 사막은 매우 넓어 중간에 협곡도 있고, 호수도 있고, 타림강도 흐른다. 길이 수십㎞의 쿠차 대협곡을 지나면 해발 1천500m에 보스텅 호수가 푸른 물을 출렁이고 있다. 오늘 이동할 거리가 길므로 보스텅 호수에는 안 들르고 스쳐 지나간다. 타림강은 쿤룬산맥의 빙하 녹은 물이 사막에서 발원해 사막에서 사라진다.
눈이 많이 녹는 봄, 여름은 수량이 많고 가을 겨울은 물이 거의 없다. 타클라마칸사막의 모습은 다양하다.
사막의 일부 구간은 사하(沙河), ‘모래바다, 모래강’이 있다. 400년경 13년에 걸쳐 천축을 다녀온 후 여행기 ‘불국기’를 남긴 법현 스님은 불국기에서 타클라마칸사막의 사하와 ‘카라부란(검은 모래바람)’에 대해 생생한 기록을 남겼다.
“사하에는 악귀와 열풍이 심해 이를 만나면 모두 죽고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한다. 하늘에는 날아다니는 새도 없고, 땅에는 뛰어다니는 짐승도 없다. 아무리 둘러봐도 망망해 가야 할 길을 찾으려 해도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다. 언제 이 길을 가다가 죽었는지 모르는 죽은 사람의 마른 해골만이 길을 알려주는 표지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마르코폴로(1254~1324)는 700년 전 원나라로 가기 위해 서역남로를 통과했다. 그가 남긴 ‘동방견문록’에 “사막에는 악령의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홀려 길을 잃고 죽어간다”고 기록하고 있다. 무서운 재난을 피하도록 기도를 위해 실크로드 전 구간에 수많은 석굴을 만들었다. 타클라마칸사막의 남과 북의 폭은 400㎞가 넘는다. 현재 타클라마칸사막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로가 두 개 설치돼 있다. 중국인들은 이 길을 ‘금(金)으로 만든 길’이라고 부른다.
사막 종단 도로 건설에 엄청난 돈이 들어갔다는 의미다. 인력 손실도 컸다. 반정부 독립운동 시위를 한 죄로 감옥에 갇혀 있던 위구르족 청년들이 고속도로 현장에 투입됐고 사상자가 많았다고 한다. 고속도로 주변 사막의 농경지 주변에 방풍림으로 심은 백양나무와 포플러가 자주 보인다. 농경지로 날아오는 모래를 막고 바람을 막기 위해 심은 나무들이다.
과거 타림분지와 타클라마칸사막 오아시스에는 작은 부족국가가 많이 있었다. 부족국가는 오아시스 크기에 따라 인구도 수백명, 수천명, 많아야 수만명이다. 11세기 이후 기후 변화로 300개 이상의 오아시스 촌락이 없어졌고 지금도 오아시스가 계속 사라진다고 한다.
많은 약소 부족국은 주위 강대국의 세력 다툼에 항상 희생을 강요당했다. 종주국이 바뀔 때마다 언어가 바뀌고, 종족이 바뀌고, 종교도 바뀌어야 한다. 타림분지는 동양과 서양의 중간에 위치해 기원전부터 동서양 교역로였다. 중요한 무역로를 차지하면 통행세 징수, 조공 수입 등 나라 재정에 도움이 된다.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고대 중국(한나라 당나라), 유목국가(흉노, 돌궐족, 티베트족, 몽골족) 등 강대국의 싸움터였다.
서구학자와 탐험가 등이 19세기 말 타림분지, 타클라마칸사막의 유적과 유물에 관심을 갖게 됐다. 서구 탐험가들은 신장지역이 발굴이 안 된 마지막 미지의 유물 보고로 생각하고 모여들었다. 19세기 유럽의 고고학자는 이집트 ‘왕가의 계곡’ 발굴, 메소포타미아 유적 발굴, 성서에 나오는 지역 발굴 등 많은 유물을 발굴했다. 더 이상 중동지역은 탐험 대상이 없어졌을 때 다음 목적지가 타림분지 지역이었다.
서구의 탐험가들에게 타클라마칸사막의 사라진 오아시스 도시에 금과 보석이 묻혀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보석을 찾기 위한 탐험을 많이 했으나 귀중한 보석은 찾지 못했다. 그 대신 3000~4000년 전 미이라, 고대 언어로 된 문서, 불교 유적 등을 발굴했다.
위구르족이 많이 사는 서쪽으로 갈수록 공안의 검문이 심해지고 어떤 곳은 20분 이상 지체되기도 한다. 서쪽 도시인 투루판, 쿠차, 카슈가르 등 파미르고원으로 가는 도시들은 위구르족이 70% 이상 사는 지역이다. 촘촘히 설치된 고속도로 톨게이트의 직원들은 한국에서 온 차량을 처음 보기 때문에 번호판 사진을 찍고, 상급자에게 통과 여부를 보고하고 승인을 받느라 시간이 오래 걸린다.
위구르족이 많이 사는 지역의 주유소는 군 막사처럼 철책으로 튼튼하게 보호하고 있다. 주유소는 군대나 교도소처럼 높은 쇠창살로 담을 쳐놓고 입구와 출구의 문이 별도로 설치돼 있다. 위구르족 테러범이 주유소를 점령해 방화 등 사건을 저지르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내에 있는 주유소는 기름 넣는 데 여권까지 검사한다. 주유소 입구에서 운전자만 남고 다른 탑승객은 내려서 약 50m 떨어져 있는 출구로 걸어가야 한다. 운전자가 기름을 넣고 출구로 나오면 일행은 기다렸다가 다시 차를 탄다. 7, 8월 사막의 땡볕 아래 위구르족 여자와 아이들이 주유소 밖 담장을 따라 걸어가는 모습이 측은하다. 주유소 내부 담에 몽둥이, 삽, 방망이 등 진압용 장비가 걸려 있어 살벌한 분위기다. 주민들 불편함은 무시되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체념하고 잘 순종하는 것 같다.
신장지역에 사는 위구르족은 약 1천200만명이다. 과거는 신장지역의 전체 16개 민족 중 위구르족이 45%를 점유하는 다수 인종이었으나 현재는 한족이 가장 많은 종족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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