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달러당 1470원을 웃도는 고환율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국인 보따리 상인인 '따이궁'의 급감과 외국인 관광객의 여행 트렌드 변화가 맞물리며 국내 면세시장 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다. 과거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대량 판매에 의존해왔던 면세점 산업의 구조적 한계가 뚜렷해지자 업계는 단순한 '판매 공간'을 넘어 '체험 공간'으로의 전환을 통해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가격 메리트를 상실한 현 상황에서 체험형 콘텐츠는 외국인 관광객을 다시 끌어들이기 위한 사실상 유일한 차별화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는 약 1742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4% 증가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국내 면세점 매출은 오히려 감소했다. 한국면세점협회 집계 결과, 면세점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 줄어든 11조4145억원에 그쳤다. 외국인 관광객 수 증가와 면세점 매출 감소라는 상반된 흐름은 면세점 산업을 둘러싼 환경 변화가 단순한 경기 요인을 넘어 구조적 전환 국면에 들어섰음을 엿볼 수 있다.
이에 우리나라 면세점 3사 매출도 감소했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3분기 매출 7241억원, 영업이익 18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9.4% 감소했다. 다만 2024년 3분기 영업손실 460억원에서 지난해 183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현대면세점은 전년 동기 대비 2.5% 감소한 2225억원의 3분기 매출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13억원이었다. 신세계면세점은 전년 동기 대비 106억원 줄어든 5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매출은 14.2% 증가한 5388억원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여행 방식도 과거와는 달라졌다. 여행 전문 플랫폼 트립닷컴이 공개한 '2025년 한국 여행 트렌드'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들은 여행 초기에는 명동과 같은 대표 관광지를 중심으로 정보를 탐색하지만 실제 예약 단계에서는 공연·체험·콘텐츠 중심의 일정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면세점들은 매장 수를 줄이는 대신 한국 문화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체험형 콘텐츠를 강화하고 있다.
면세점별로는 K-뷰티, K-팝, K-푸드, K-콘텐츠 등 한류 자산을 활용한 체험 공간을 앞세워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이처럼 면세점이 체험형 콘텐츠 강화에 나선 배경에는 소비자들의 방문 감소가 있다. 과거 실적을 떠받쳤던 중국 따이궁 수요가 중국 경기 침체로 급감한 데다, 개별 여행객이 늘어나면서 올리브영·다이소·무신사 등 이른바 '올다무'로 불리는 국내 유통 채널을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현대면세점은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한 맞춤형 뷰티 체험존 'AI 뷰티 트립'을 무역센터점 9층에 조성했다. 방문객은 퍼스널컬러 진단을 통해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상을 확인한 뒤 맞춤형 메이크업 제품을 추천받을 수 있다. 또한 AI 기술을 활용해 이마, 양쪽 볼, 턱 등의 피부 상태를 분석하고 피부 노화 정도도 진단할 수 있다. 체험 결과는 모바일을 통해 상세 리포트로 제공된다. 상세 리포트에서는 피부 타입과 피부 연령, 주름 분석, AI 기반 케어 솔루션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서 만난 문서연 씨(34·여)는 "점심시간에 잠시 들렀는데 간단한 체험까지 할 수 있어 색다르게 느껴졌다"며 "평소 궁금했던 피부 상태를 짧은 시간 안에 확인할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어 "설 연휴를 맞아 가족 여행을 고민 중인데, 해외여행을 가게 된다면 출국 전에 다시 방문해 더 자세한 테스트를 받아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롯데면세점은 최근 서울 명동본점 1층 '스타에비뉴'를 전면 리뉴얼해 K팝·체험 중심의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었다. 체험 요소를 대폭 강화한 '스타리움(STARIUM)' 콘셉트의 몰입형 전시 공간으로 재구성했다. ▲하이파이브 존 ▲대형 미디어 월 ▲체험존 등 총 3가지 구역으로 구성돼 있다.
스타에비뉴의 입구 양쪽에는 롯데면세점과 함께한 모델인 하츠투하츠, 에스파, 트와이스 등의 핸드프린팅을 만나볼 수 있다. 대형 미디어 월은 가로 약 23.5m, 세로 약 4.25m 규모로 제작됐으며 K팝 테마의 시그니처 콘텐츠와 롯데면세점 모델 및 브랜딩 영상 등을 감상할 수 있다. 한국인 관광객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잠시 길을 멈춰 평소 본인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손바닥에 손을 맞춰보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신세계면세점도 시내면세점에 K푸드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보강했다. 작년 7월 명동점에 식품 큐레이션존 '테이스트 오브 신세계'를 열었다. 매장 내에는 고추장, 케첩, 잼, 제주도 초콜릿 등 한국을 대표하는 간식들 뿐만 아니라 영양제, 홍삼 등 그간 계속해서 인기 있었던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신세계 관계자에 따르면 "테이스트 오브 신세계 개점 6개월 만에 식품 구매고객 수는 4배 증가, 매출은 30배 성장했다"며 "또 식품과 함께 화장품·패션 등 타 카테고리 교차구매 비중도 10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기존의 방식으로는 면세점이 생존하기 어려운 만큼 체험을 중심으로 한 전략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한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고환율과 소비 패턴 변화, 따이궁 중심의 매출 구조가 무너지면서 면세점은 더 이상 대량 판매에 의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이 같은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 체험형 콘텐츠를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다만 면세점 경기가 과거 수준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인천공항 이용객 수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Copyright ⓒ 르데스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