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이 보유한 미국 소형모듈원전(SMR) 기업 테라파워의 지분 일부를 한국수력원자력에 넘기고 3사 간 원전 동맹을 공식화하며 급증하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전력 시장 공략을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
국내 에너지 공기업이 글로벌 SMR 선도 기업에 직접 지분을 투자한 첫 사례가 나왔다. SK이노베이션은 보유 중이던 테라파워 지분 일부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완료했다고 21일 밝혔다. 이번 거래로 SK그룹의 민간 투자 역량과 한수원의 원전 운영 노하우, 테라파워의 차세대 기술력이 결합한 3각 편대가 완성됐다. 단순한 지분 거래를 넘어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최대 화두인 AI 전력 수급 문제를 해결할 통합 에너지 솔루션 구축이 목표다.
테라파워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2008년 설립한 기업으로 차세대 원전 기술인 나트륨(Natrium)® 원자로를 개발 중이다. 현재 미국 와이오밍주에 2030년 완공을 목표로 세계 최초의 상업용 SMR 플랜트를 건설하고 있다. SMR은 증기발생기, 냉각재 펌프 등 주요 기기를 하나의 용기에 담아 공장에서 조립하듯 건설하는 방식이다. 대형 원전 대비 건설 기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전력 수요가 폭발하는 지역에 빠르게 투입 가능한 대안으로 꼽힌다.
SK이노베이션-테라파워-한수원 동맹 / SK 이노베이션 뉴스룸
주목할 점은 테라파워가 가진 기술적 차별성이다. 이들이 개발한 나트륨 원자로는 기가와트(GW)급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을 결합한 독특한 구조를 갖췄다. 원전이 생산한 전기를 저장해뒀다가 필요할 때 공급하는 방식이다. 태양광이나 풍력 등 기상 조건에 따라 발전량이 들쑥날쑥한 재생에너지의 단점을 보완하기 최적화된 기술이다. 전력 수요에 맞춰 발전량을 유연하게 조절하는 부하 추종 운전이 가능해 24시간 안정적인 전력이 필요한 AI 데이터센터의 핵심 에너지원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투자는 1년 이상의 치밀한 준비 과정을 거쳤다. 한수원은 지난해 12월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하며 기술 유출이나 안보 우려를 해소했다. SK이노베이션과 SK㈜는 앞서 2022년 8월 테라파워에 선제적으로 투자해 2대 주주 지위를 확보했고 이번 매각 이후에도 2대 주주 자리는 유지한다. 양사는 이미 2023년 4월 SMR 개발 및 실증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협력의 물꼬를 텄다.
3사는 이번 지분 구조 재편을 기점으로 글로벌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낸다. 올해 상반기 내로 미국을 포함한 해외 시장에서의 추가 SMR 건설과 국내 도입을 위한 사업화 본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이 가진 에너지·소재 분야의 글로벌 네트워크에 한수원이 지난 50년간 축적한 원전 건설 및 운영 데이터가 더해지면 북미 시장 내 파급력은 상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단순 자료 사진.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이미지.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협력에 대해 나트륨 기술이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 차세대 원자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비전의 실현이라고 평가했다. 박인식 한수원 수출 사업본부장 역시 한수원이 차세대 원전 분야의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김무환 SK이노베이션 에너지솔루션 사업단장은 소재와 부품의 국산화 등 실질적인 성과 창출에 집중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시장 환경도 이들에게 우호적이다. 최근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Meta)가 테라파워의 SMR 프로젝트에 참여 의사를 밝히며 빅테크 기업들의 관심이 입증됐다. 외신에 따르면 메타는 2032년까지 최대 690메가와트(MW) 규모의 전력을 생산할 원자로 2기 개발 자금을 지원하고 2035년까지 추가로 6기의 에너지 구매권을 확보했다. 구글, 아마존에 이어 메타까지 원전 확보전에 뛰어들면서 SK와 한수원이 구축한 SMR 공급망이 빅테크 기업들의 러브콜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SK이노베이션과 한수원의 결합은 단순한 기업 간 협력을 넘어선다. 폭증하는 데이터 처리량으로 인해 전기 먹는 하마가 되어버린 AI 산업계에 안정적인 먹이를 공급할 수 있느냐는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한국형 원전 생태계가 테라파워라는 플랫폼을 타고 글로벌 AI 인프라 시장의 중심으로 진입할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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