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탈모 치료를 둘러싼 논쟁이 의료 정책의 주변부를 벗어나 중심부로 이동하고 있다. 탈모를 개인의 미용 문제가 아닌 삶의 질과 사회적 생존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탈모 치료의 건강보험 적용 검토를 지시하자 의료계와 제약업계, 자본시장이 동시에 반응했다. 그러나 탈모 치료의 비용 구조를 들여다보면 건강보험으로 ‘덮기’에는 구조적 난제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탈모를 공적 영역으로 끌어들인 대표적 사례는 서울 성동구다. 성동구는 2023년부터 만 39세 이하 청년을 대상으로 경구용 탈모 치료 약 비용을 연간 최대 20만원까지 지원하고 있다. 의료기관에서 탈모 진단을 받은 뒤 약값을 선지출하면 본인부담금의 80%를 환급해 주는 방식이다. 2023~2025년 3년간 3053명이 이 제도의 혜택을 받았고, 누적 지원액은 약 3억8000만원에 달한다.
문제는 이 실험을 전국 단위 건강보험 제도로 확장할 수 있느냐다. 탈모 치료는 그간 ‘미용 목적’으로 분류돼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왔다. 하지만 국내 탈모 인구가 약 1000만명으로 추산되는 상황에서 탈모를 질환으로 재정의할 경우 영향 범위는 다른 질환과 차원이 달라진다. 이미 원형 탈모증 등 질환성 탈모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는데, 2024년 기준 해당 환자만 약 24만명이다.
여기에 유전성·노화성 탈모까지 급여 대상에 포함될 경우 재정 부담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는 것이 정부와 의료계의 공통된 우려다. 복지부의 중기 재정 전망에 따르면 건강보험 재정은 2026년 적자로 전환돼 오는 2028년에는 적자 폭이 1조5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정책 논의가 본격화되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탈모 치료제와 관련된 제약·바이오 종목이 급등했고, 특히 현대약품은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기대와 실적 개선이 맞물리며 단기간에 주가가 상승했다. 신약 임상 성과와 정책 기대가 동시에 반영되면서 탈모가 의료 정책을 넘어 산업·자본시장 변수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내 탈모 치료 시장은 이미 제약사 간 경쟁이 치열한 영역이다. 현대약품을 비롯해 JW중외제약, 유한양행 등은 경구용·외용 치료제는 물론 이너뷰티, 샴푸 등 모발 관리 영역까지 포트폴리오를 넓히고 있다. 탈모 치료가 단일 약물 처방이 아닌 장기 관리와 반복 소비를 전제로 한 산업 구조로 굳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만 급여화가 산업 성장으로 곧바로 이어질지는 단정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건강보험 급여 등재가 이뤄질 경우 약가 조정이 동반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다. 제약업계에서는 급여 적용 시 환자 접근성은 개선될 수 있지만, 비급여 시장에서 형성돼 온 가격 구조가 조정되면서 수익성과 연구개발(R&D) 여력이 동시에 압박받을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탈모 치료 비용이 개인과 치료 방식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점도 건보 적용 논의를 어렵게 하는 요소로 꼽힌다. 탈모 치료가 약물 치료뿐 아니라 시술과 관리, 소비재 시장까지 폭넓게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모발이식은 대표적인 비급여 치료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병원과 지역별로 가격 차이가 나타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1모당 모발이식 비용은 지역별로 최대 15배까지 차이가 난다. 광주는 1모당 평균 2만1000원 수준인 반면, 인천은 1400원으로 집계됐다. 2000모 이상 이식 시 평균 비용은 서울이 약 685만원으로 가장 높았고, 세종은 200만원대였다.
현장에서는 모발이식 비용이 병원과 조건에 따라 폭넓게 형성돼 있는 모습이 확인된다. 2000모 기준 이식 비용은 200만원대부터 600만원대까지 분포, 3000모 이상에서는 1000만원을 넘는 사례도 있다. 의료진 숙련도와 병원 브랜드, 광고·후기, 사후 관리 범위 등에 따라 비용이 달라지는 구조다.
일부 환자들 사이에서는 저가 수술 이후 재수술로 추가 비용이 발생하거나, 시술 결과에 따른 심리적 부담을 호소하는 사례도 전해진다. 이런 점을 감안해 의료진들은 약물 치료를 일정 기간 충분히 시행한 뒤 이식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와 함께 탈모 보조 수단으로 활용되는 의료용 가발 역시 건강보험 적용 여부와 관계없이 업체·유통 채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 비용 예측이 쉽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때문에 탈모 치료는 단일한 표준 치료나 가격 체계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처방 약과 시술뿐 아니라 이너뷰티 제품, 샴푸 등 관리 상품까지 소비 구조가 다층적으로 형성돼 있어서다. 이 같은 특성을 고려할 때 건강보험이 적용되더라도 탈모 관련 비용 전반을 포괄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정부도 이 점을 의식해 전면 급여화 대신 우회적 대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는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건강바우처 사업에 탈모 치료를 포함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20~34세에게 연간 최대 12만원 상당의 바우처를 지급해 비급여 진료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질환으로 공식 규정하지 않으면서도 정책적 요구에 대응하려는 관리형 접근으로 풀이된다.
해외 주요국의 사례를 보면 탈모 치료 급여화에 신중한 접근이 이어지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에서는 남성형 탈모 치료제를 일반 급여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일부 국가에서만 의료용 가발 등 보조 수단을 제한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암 등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를 우선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제약업계 역시 급여화가 추진될 경우 그 속도와 적용 방식에 따라 시장 구조와 연구개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함께 고려하고 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탈모로 인한 삶의 질 저하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분명히 커지고 있지만, 건강보험은 한정된 재원을 어디에 먼저 배분할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며 “질환 정의와 의학적 필요성, 재정 지속 가능성을 함께 고려한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약업계 관계자 역시 “탈모 치료가 제도권 논의 테이블에 오른 것 자체는 의미가 있지만, 급여화 방식에 따라 시장 구조와 연구개발 환경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며 “전면 적용보다는 관리 가능한 범위에서의 정책 설계가 산업과 재정 모두에 영향을 덜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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