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MP 보도…美-EU 관계 악화 때 中-EU 제한적 협력 강화 가능성
"EU, 전략적 자율성 추구할듯…그래도 中과 안보파트너는 '무리'"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시도로 '대서양 질서'가 흔들리는 가운데 중국과 유럽연합(EU) 관계도 재조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2일 보도했다.
일단 철회하기는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병합에 반대하는 유럽 국가 일부에 보복 관세와 군사력 사용 가능성까지 거론하면서 미국-EU 관계 균열이 가시화했으며, 그 반작용으로 중국과 EU가 거리를 좁힐 수 있다는 관측이다.
미국의 대(對)유럽 경제 부흥 지원 정책이었던 마셜플랜과 소련 팽창에 맞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창설을 바탕으로, 미국과 EU가 자유민주주의·인권이라는 가치를 함께 주창하며 구축한 정치·경제·군사적 협력체제인 2차 대전 후 대서양 질서가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중국과 EU도 대안 모색을 하는 형국이다.
SCMP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작금의 트럼프 미 대통령 행보가 대서양 질서에 치명적 타격을 주고 있다"면서 이를 계기로 "중국과 유럽 관계도 개선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사실 작년 초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한 이후 동맹국에까지 무차별적으로 고율 관세 부과 압박에 나서면서 EU는 대미 의존도를 낮출 파트너를 적극적으로 물색하고 있고, 미국과 '1년 관세 휴전' 상태인 중국 역시 이래저래 EU와의 관계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덴마크령인 그린란드에 대한 미국의 병합 행보에 덴마크를 포함해 영국·프랑스·독일 등 나토 소속의 유럽 8개국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으며, 유럽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빌런'으로 부각하는 가운데 중국에 대한 경계심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 중국의 그린란드 장악 야욕을 이유로 미국의 병합을 정당화하려 하지만, 유럽 내 분위기는 그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SCMP는 중국이 2030년까지 '극지방 강대국'이 되겠다는 목표를 2018년 백서에서 밝힌 바 있지만, 현재 북극에서 중국의 군사적 존재감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중국은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에 과학 연구기지를 설립했고, 심해용 소형 잠수함과 북극 관측용 위성을 탑재한 쇄빙선 등을 운용하고 있지만 이는 과학 연구 목적일 뿐이라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베이징외국어대학의 추이훙젠 교수는 "(중국의 북극 활동은)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북극 야욕을 과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추이 교수는 "그린란드 문제로 대서양 사이의 갈등이 악화하면 EU로선 미국과의 협력 관계를 재검토하게 될 것"이라며 EU가 중국과도 기후·광물·공급망 분야에서 선별적으로 협력할 수 있고 필요할 경우 EU가 중국을 미국에 대항하는 카드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대서양 질서가 균열·악화하면 중국에 외교적 기회가 열리고, 장기적으로 비(非)서구 중심의 다극 체제가 구축되는 효과가 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그린란드 병합 강행은 나토를 위기로 몰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외신 보도를 보면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미유럽센터 소장인 콘스탄체 스텔젠뮐러는 트럼프 대통령 주도로 미국이 그린란드를 장악할 경우 나토 해체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했으며,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도 "미국의 그린란드 공격은 나토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일명 다보스포럼)에서 1시간 20여분간 연설을 통해 이전에 예고했던 나토 소속 8개국에 대한 관세 보복 조치를 철회하고 그린란드에 대한 무력 불사용을 선언한 것도 이 같은 '나토 위기'를 우려한 선택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EU가 그린란드 문제로 미국에 거리를 두는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것이 바로 중국과의 관계 진전 시도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덴마크 국제연구소의 안드레아스 보예 포르스비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자국 핵심이익을 위해선 강압적인 외교를 서슴지 않아 왔고 4년 가까이 우크라이나전쟁을 벌이는 러시아를 전략적으로 지원해온 데 유럽은 반감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실제 최근까지도 전기차를 중심으로 중국과 무역 갈등을 빚어온 EU는 중국의 경제적 강압 조치에 대해 줄기차게 우려를 표시해왔으며 종종 무역 바주카포인 '통상위협대응(ACI) 조치로 대응해왔다.
중국은 아직 자국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고 강변하지만, EU는 갈수록 힘을 키워가는 세계 주요 2개국(G2)으로서 북극 강대국을 지향하는 중국을 안보 파트너로 삼기는 무리라는 평가도 있다.
이런 가운데 외교가에선 중국과 EU의 경제·안보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밀착' 가능성은 크지 않고 제한적인 협력 강화 형태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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