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관 부장판사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한덕수 전 국무총리 내란 우두머리 방조,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사건 1심 선고공판에서 선고문을 읽고 있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제공 영상 캡처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을 '친위 쿠데타' 성격의 내란으로 규정하고, 이는 '아래로부터의 내란'과 비교할 수 없는 위험성을 지녔다고 봤다. 재판부는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가 헌법과 법률을 경시하고 내란 행위를 함으로써 국민이 가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신념 자체를 뿌리째 흔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방조,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사건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날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기소된 한 전 총리는 1심에서 징역 2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 뉴스1
재판부는 "세계사적으로 살펴보면 친위 쿠데타는 많은 경우 성공해 권력자는 독재자가 됐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 같은 기본권은 본질적으로 침해됐으며, 국가의 경제와 외교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며 "독재자의 권력이 약해지는 시기가 되면 내전 같은 전쟁이나 정치 투쟁으로 국가와 사회 전반이 회복하기 어려운 혼란에 빠진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재판부는 현재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고려할 때 친위 쿠데타가 초래한 경제적·정치적 충격은 과거 내란 행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고, 이에 따라 국제 무역과 국제 정치 등에 있어서 그 위상도 기존과 비교할 수 없다"며 "이러한 점에서 기존 내란 사건에 관한 대법원 판결들은 피고인에 대한 형을 정함에 있어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12·3 내란이 짧은 시간에 종료된 것은 내란 가담자 덕분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재판부는 "무장한 계엄군에 맨몸으로 맞서 국회를 지킨 국민의 용기, 신속히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의결한 일부 정치인들의 노력, 위법한 지시와 명령에 저항하거나 소극적으로 참여한 일부 군인과 경찰 공무원의 행동에 의한 것"이라며 "따라서 12·3 내란 가담자에 대한 형을 정함에 있어 피해 발생이 경미했다거나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됐다는 사정을 깊이 고려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한 전 총리 개인에 대한 재판부의 평가도 가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국무총리로서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고 헌법을 수호하고 실현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헌법적 의무를 부담한다"며 "그럼에도 12·3 내란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러한 의무와 책임을 끝내 외면하고 오히려 그 일원으로서 가담하기로 선택했다"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한 전 총리의 범행 후 행태도 중형의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국무총리로서 12·3 내란의 진실을 밝히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기는커녕 사후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이 사건 비상계엄 관련 문건을 은닉하고, 비상계엄 선포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진 것처럼 보이기 위해 허위 공문서를 작성했다가 폐기했으며, 헌법재판소에서 위증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재판 과정에서도 허위로 진술을 번복하고, 대통령실 CCTV와 같은 객관적인 증거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등 진실을 은폐하고 책임을 벗어나고자 할 뿐"이라며 "피고인이 진실을 은폐하고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한 행위들로 인해 우리 사회의 정치적 분열과 갈등이 더욱 심화됐고, 앞으로도 이러한 상처와 갈등이 쉽사리 봉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한 전 총리의 사과 진정성도 인정받지 못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제2회 공판 기일에서 12·3 내란에 관해 여러 가지 법적인 검토가 필요해 공개적으로 제지하지 못했다는 취지로만 진술했다가 이 법원의 요구에 따라 내란중요임무종사 공소 사실이 택일적으로 추가되고, 대통령실 CCTV 영상 재생 및 증인 신문 등 증거 조사를 거쳐 자신의 범죄 사실이 탄로나 형사처벌의 기로에 서자 마지못해 최후 진술에 이르러서야 국민이 겪은 고통과 혼란에 대해 가슴 깊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는 취지로 진술했지만, 그 사과의 진정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달리 피고인이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다거나 자신의 범죄 행위로 인해 국가와 국민이 입은 피해를 회복시키기 위한 어떠한 노력을 했다고 볼 아무런 자료가 없다"고 했다.
한 전 총리는 약 50년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국무조정실장,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국무총리 등을 역임하며 다수의 훈장과 포장을 받았고, 만 79세의 고령임에도 벌금형을 포함해 형사처벌 전력이 없었다. 최근 경도 인지 장애와 우울증을 진단받아 치료가 필요하고, 배우자의 독립적 거동이 어려워 돌봄과 간호가 필요하다는 자료도 제출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일단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의 폭동이 발생하면 이로 인해 막대한 인명과 재산상 피해, 사회적 혼란이 초래될 것은 분명하고, 혹시라도 내란이 성공해 국민적 합의로 성립한 현재의 헌법 질서가 폭력에 의해 무너지게 되면 이를 원래대로 회복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며 "따라서 그러한 내란 행위를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고,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내란 행위에 가담한 사람들을 무겁게 처벌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날 선고 직후 법정 구속 여부를 가리기 위한 심문을 진행했다. 재판부가 '구속 여부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라고 묻자, 한 전 총리는 "재판장님 결정에 겸허하게 따르도록 하겠다"고만 답했다. 한 전 총리 변호인은 한 전 총리가 도주 가능성이 없고, 증거 인멸 우려도 없다며 구속 사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며 한 전 총리의 법정구속을 결정했다.
한 전 총리는 대통령의 자의적 권한 행사를 사전에 견제·통제할 수 있는 국무회의 부의장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불법 비상계엄 선포를 방조한 혐의로 기소됐다. 2024년 12월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이 비상계엄 후 절차적 하자를 은폐하기 위해 허위로 작성한 계엄 선포 문건에 윤 전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과 각각 서명하고 이를 폐기하도록 요청한 혐의도 있다. 지난해 2월 20일 윤 전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의 증인으로 나와 '계엄 선포문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위증한 혐의도 적용됐다. 한 전 총리는 당초 윤 전 대통령 내란 우두머리 범행의 방조범으로 기소됐으나 재판부 요청에 따른 특검의 공소장 변경으로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가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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