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발(發) 관세 리스크가 글로벌 자본시장을 뒤흔들었다. 군사력과 관세를 결합한 트럼프식 압박 외교에 유럽연합(EU)이 반발하면서 환율과 증시, 채권, 원자재 등 주요 자산 가격 변동성이 극도로 커졌다.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셀 아메리카' 움직임이 확산 조짐을 보이는 등 '자본 전쟁' 우려가 커지면서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급속도록 확산됐다.
2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주간거래 내내 롤러코스터를 탔다. 10원 넘게 오르내린 끝에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 주간거래 종가는 전일 대비 6.8원 내린 1471.3원을 기록했다. 이날 환율은 미-EU 갈등 확산 때문에 1480.4원으로 출발한 뒤 장중 1481.3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환율이 장중 148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달 24일 이후 한 달여 만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관세 위협이 ‘셀 아메리카(미국 자산 매도)'를 촉발하며 환율 상승 압력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다만 원·달러 환율은 이재명 대통령의 환율 관련 발언이 나온 직후 1460원대로 떨어졌다. 엔·달러 환율이 안정세를 보인 것도 원화 환율에 일부 영향을 미쳤다.
글로벌 증시도 온종일 급격한 변동 장세를 보였다. 미국 증시는 ‘셀 아메리카’ 흐름 때문에 급락했다.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1.76% 하락했고 S&P500은 2.06%, 나스닥지수는 2.39% 떨어졌다. 나스닥지수 낙폭은 지난해 10월 이후 최대 수준이다. 일명 ‘공포지수’로 불리는 미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지수(VIX)는 뉴욕 증시 마감 무렵 20.09까지 올라 지난해 11월 이후 약 두 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국내 증시도 장 초반 4800선까지 급락하는 등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지만 상승으로 마무리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전일 대비 24.18포인트(0.49%) 오른 4909.93으로 마감했다. 코스피는 장 초반 76.81포인트(1.57%) 하락한 4808.94로 출발했지만 이후 낙폭을 만회하며 상승 전환했다. 코스닥은 전 거래일 대비 1.88% 내린 958.05로 출발해 2.57% 하락한 951.29로 마감하며 낙폭을 키웠다. 연초 이후 가팔랐던 상승 흐름 속에서 관세 리스크와 지정학적 충격이 겹치며 한국 증시도 변동성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고평가 논란을 이어온 미국 증시에 이어 연초 이후 급등세를 보인 코스피 역시 상승 속도 조절 국면에 진입했다”며 “당분간 과열 해소와 매물 소화 과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글로벌 주식시장의 급격한 조정은 미국 채권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관세 충격에 일본 국채 금리 변동성까지 겹치며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4.29%로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30년물 역시 4.92%까지 치솟으며 미 국채 전반에 매도 압력이 커졌다. 그린란드 갈등이 미·유럽 간 긴장을 자극하면서 미국 채권시장 변동성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덴마크 연기금 아카데미커펜션은 미국 국채 약 1억 달러 규모를 이달 말까지 전량 매각하기로 했다. 미·유럽 갈등이 이 같은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유럽 국가들이 보유한 미국 주식과 채권 규모가 약 8조 달러에 달한다는 점에서 시장에 경계심도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안전자산 선호심리는 더욱 뚜렷해졌다. 금과 은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또 경신했다. 전 거래일(20일) 국제 금값은 온스당 4712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다시 경신했고 은 가격 역시 94달러대에 거래되며 역사적 고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창업자인 레이 달리오는 세계경제포럼 기간 중 CNBC 인터뷰에서 “자본전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금처럼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가치가 안정된 자산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갈등이 단순 외교 마찰을 넘어 금융시장으로 전이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최악에는 유럽 주요국의 미국 자산 매도와 유럽 은행들의 달러 노출 축소가 맞물리며 변동성을 증폭시키는 악순환이 형성될 수 있다는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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