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대한 21일 법원 판결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재판에 법적 구속력을 갖는 선례는 아니다. 재판부도 다르고, 적용된 사실관계와 사건 구조 역시 동일하지 않다. 다만 현실 법정에서는 하나의 1심 판결이 다음 재판의 공기를 바꾸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이번 판결은 12·3 비상계엄을 형법상 ‘내란’으로 규정하며, 내란의 구성요건을 어떤 논리와 문장으로 연결해 유죄 판단에 이르렀는지를 사실상 드러냈다. 윤 전 대통령 사건은 이제 그 문장 하나하나를 부수느냐, 아니면 더 촘촘히 쌓느냐의 싸움으로 접어들게 됐다.
첫째, ‘내란의 실체’에 관한 법원의 서술이 구체적이다. 재판부는 계엄 선포 이후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에 군과 경찰이 동원돼 점거와 압수수색이 이뤄졌고, 포고령 역시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르지 않았다는 점을 밝혔다. 병력, 즉 무장 군인과 경찰의 동원 규모까지 언급하며, 이 일련의 행위를 형법 제87조가 규정한 ‘내란 행위’로 연결했다. 윤 전 대통령 재판에서 가장 큰 쟁점은 이 사태가 단순한 위헌·위법을 넘어 내란에 해당하느냐는 점인데, 이번 판결은 법원이 그 질문에 어떤 논리 구조로 접근하는지를 미리 드러낸 셈이다.
둘째, 재판부는 ‘폭동’의 문턱을 총격이나 유혈 사태가 아니라 '조직적 유형력 행사'로 설정했다. 내란죄의 기술적 쟁점인 폭동성과 관련해, 다수 인원의 결합, 국가기관에 대한 유형력 행사, 국회·선관위 점거와 기능 마비를 핵심 판단 요소로 삼았다. 이 기준이 유지될 경우 윤 전 대통령 측의 방어 논리는 ‘유혈 사태가 없었다’는 주장보다, ‘실질적인 유형력 행사가 있었는지’, ‘국회의 권한 행사를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할 정도였는지’라는 문제로 한층 정교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특검은 병력 이동 경로와 지휘 체계, 점거 목적과 지속 시간, 차단 효과 등을 구체적인 숫자와 동선으로 입증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셋째, 이번 판결은 내란 사건의 공범 구조를 넓히는 논리를 제시했다. 총리 사건의 핵심 쟁점은 방조에 그치는지, 아니면 내란 중요임무 종사에 해당하는지였는데, 재판부는 국무회의 심의라는 ‘절차적 외관’을 형성하는 행위 자체를 중요임무로 판단했다. 윤 전 대통령 재판에서는 수괴로서의 기획과 지시, 통제가 중심 쟁점이 되겠지만, 동시에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는 ‘실행의 문을 열어 준 자’, ‘국가 권력이 작동하는 외관을 만들어 준 자’에게 책임을 묻는 법리가 그대로 확장될 수 있다. 본안과는 별도로, 관련자들의 방어 공간이 좁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넷째, 양형의 방향 역시 사실상 예고됐다. 재판부가 이번 사건을 “위로부터의 내란”, “친위 쿠데타”로 규정한 것은 형량 판단의 기준 자체를 새로 세우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윤 전 대통령 사건은 국가 권력의 정점에 있던 인물이 직접 중심에 선 구조다. 법원이 동일한 관점, 즉 권력자가 헌정 질서를 내부에서 붕괴시킨 위험성을 중대하게 본다면, 윤 전 대통령 재판의 형량 논쟁은 과거 내란 판례의 틀을 넘어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다만 최종 형량은 범죄사실의 확정 범위와 죄수 관계, 책임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즉, 이번 한 전 총리에 대한 판결의 파장은 “내란죄 성립 요건이 완화됐다”는 데 있지 않다. 법원이 내란 성립을 어떤 문장과 논리로 구성하는지가 처음으로 구체화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 윤 전 대통령 재판은 이제 그 문장 속 빈칸을 지시와 통제, 인식과 고의로 채우느냐를 놓고 다투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한 전 총리 사건이 ‘절차의 외관’을 다룬 재판이었다면, 윤 전 대통령 재판은 그 절차를 왜 만들었고, 무엇을 하려 했는지를 묻는 '목적과 권력 통제'의 재판으로 향하고 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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