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이 12·3 비상계엄 사태를 형법상 내란으로 명확히 규정하며, 국무총리의 형사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재판장 이진관)는 21일 내란 중요임무 종사, 내란 우두머리 방조, 허위공문서 작성, 위증 등의 혐의로 기소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내란 특별검사팀이 구형한 징역 15년보다 8년 높은 형량이다.
12·3 비상계엄이 형법 제87조의 내란에 해당한다는 첫 사법 판단이자, 계엄 선포에 관여한 국무위원 가운데 내려진 첫 실형 판결이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을 “위로부터의 내란이자 친위 쿠데타”로 규정하며, 기존 내란 판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형식적 국무회의가 내란 실행 출발점”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계엄 실행에 필요한 절차적 외관 형성에 핵심적으로 관여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한 전 총리는 2024년 12월 3일 계엄 선포 당일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상계엄 추진 의사를 보고받은 뒤,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하고 일부 국무위원들에게 출석을 독촉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피고인(한덕수)은 윤석열의 의사가 확고하다는 점을 인식한 상태에서, 비상계엄 선포에 필요한 국무회의 심의라는 절차적 요건을 형식적으로나마 갖추도록 했다”며 “이는 내란 행위에 있어 중요임무에 종사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특히 대통령실에 원격 영상회의 시스템이 구축돼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종시 등지에 있던 국무위원 전원을 소집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만류 목적이었다면 원격회의 방식으로 모든 국무위원의 참석을 보장하는 것이 합리적이었으나, 피고인은 그러한 제안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 전 총리는 공판 과정에서 “국무총리에게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통제할 헌법·법률상 권한과 의무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국무총리는 민주적 정당성과 책임을 부여받은 헌법기관으로서 대통령의 자의적 권한 행사를 견제할 작위 의무를 부담한다”고 했다. 이어 “피고인이 그 의무를 이행했더라면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라는 내란 결과를 쉽게 방지할 수 있었다”며 "부작위 자체가 내란 가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한 전 총리의 행위가 “구체적 상황에서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어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경우”라고 지적했다.
▲“국헌 문란 목적과 고의 모두 인정”
재판부는 "한 전 총리에게 국헌 문란 목적과 내란 고의가 모두 인정된다"고 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계엄 이전부터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윤 전 대통령이 군경을 동원해 국회의 권한 행사를 제한할 가능성이 거론돼 왔고, 한 전 총리 역시 이를 인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계엄 당일 오후 8시45분경, 한 전 총리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취지를 직접 보고받았고, 이후 대접견실에서 군 병력이 대기 중이라는 설명이 오가는 상황을 지켜봤다.
재판부는 “이러한 정황을 종합하면 국헌 문란이 발생할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며 “그럼에도 이를 용인했으므로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단전·단수 논의·사후 계엄 문건도 유죄
재판부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단전·단수 조치 이행 논의와 관련해서도 한 전 총리의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단전·단수 지시 이행과 근거 방안을 논의하면서 이를 제지하거나 만류하지 않았고, 오히려 지시 이행을 독려한 정황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 비상계엄 해제 이후 작성된 사후 계엄 선포문에 대해서는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작성일을 소급한 문서가 허위임을 인식한 상태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과 순차적·암묵적으로 공모해 서명했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의 증언 역시 모두 위증으로 판단됐다.
▲“아래로부터의 내란과는 차원 달라”
재판부는 양형 사유에서 이번 사건을 기존 내란 사건과 명확히 구분했다.
재판부는 “12·3 내란은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가 국가 권력을 동원해 헌법 질서를 파괴하려 한 ‘위로부터의 내란’”이라며 “그 위험성은 기존의 아래로부터 발생한 내란과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세계사적으로 친위 쿠데타는 성공할 경우 독재로 이어지고 국가 전체가 회복 불가능한 혼란에 빠지는 사례가 반복돼 왔다”고 했다.
재판부는 “대한민국과 같은 선진 민주국가에서 발생한 친위 쿠데타가 초래한 정치·경제적 충격은 기존 내란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과거 내란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례는 이번 사건의 양형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반성·회복 노력 없어”… 법정구속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약 50년간 공직에 몸담았고 다수의 훈장을 받았으며 고령이고 전과가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고, 자신의 범죄로 국가와 국민이 입은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확인되지 않는다”며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선고 직후 재판부는 증거인멸 우려를 이유로 법정구속을 결정했다.
한 전 총리는 “재판부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말한 뒤 구치소로 이송됐다. 이번 판결은 비상계엄 사태를 내란으로 규정한 첫 사법 판단이자,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견제해야 할 국무총리의 헌법적 책임이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음을 명확히 한 판결로 역사에 기록됐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내란은 결과 이전에 차단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가담자에 대한 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 12·3 비상계엄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이제 시작 단계에 들어섰다. 이 판결은 향후 이어질 관련 재판의 기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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