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손성은 기자]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입법 논의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은행권은 공개 발언을 자제한 채 물밑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은행권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한 수익 사업이 아니라 금융 질서 재편의 출발점으로 인식하고 있다. 코인 발행 컨소시엄에서 지분 과반(51%) 확보와 이자 지급 허용을 핵심 조건으로 보는 이유다. 특히 ‘발행 주도권과 고객 유치 수단을 확보하지 못하면 새로운 금융 질서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민주당,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 작업 착수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TF)는 지난 20일 ‘디지털자산 기본법(2단계 입법)’ 여당안을 마련하기 위한 비공개 회의를 열었다. 금융위원회가 한국은행과 협의를 거쳐 내놓기로 한 정부 단일안이 지연되자, 국회 차원 입법 작업에 착수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둘러싸고 여당과 금융위원회·한국은행 간 힘겨루기도 이어지고 있다. 여당은 발행 주체 제한에 반대하는 반면, 금융당국과 한국은행은 통화·금융 안정을 이유로 ‘은행 지분 51% 이상 컨소시엄’에만 발행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당은 이달 말까지 쟁점을 정리한 뒤 2월 최종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최소 방어선 ‘51%’…은행, 주도권 이탈 경계
은행권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수익 사업이 아닌 시장 주도권을 가르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공식 발언은 자제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은행 중심 발행 구조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은행권이 우려하는 대목은 빅테크나 플랫폼 중심으로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구축이다. 이 경우 지급결제와 함께 축적되는 거래 데이터와 자금 흐름이 은행 외부로 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급결제는 고객의 소비 패턴과 자금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핵심”이라며 “데이터가 플랫폼에 쌓이면 대출·자산관리 등 전통 은행업 전반에서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51%룰’은 주도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 방어선에 가깝다. 이 구조가 무너지면 은행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에서 단순 자금 공급자나 결제 인프라 제공자 등 사실상 ‘하청’ 역할로 밀려날 수 있다.
◇이자 지급 허용 요구…수익 아닌 고객·자금 선점 수단
은행권은 51%룰과 함께 이자 지급 허용도 핵심 요건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예치금에 대한 “이자 지급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은행권은 고객 선점과 유동성 확보 조치라고 강조한다.
시중은행 다른 관계자는 “이자 유인이 없으면 결제·대기성 자금이 플랫폼이나 다른 영역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며 “이자 지급은 수익 창출이 아니라, 자금 흐름을 은행 시스템 안에 묶어두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은행이 과반 지분을 전제로 한 발행 구조를 강조하는 이유 역시, 책임과 통제권의 분리를 경계하는 데 있다. 시중은행 또 다른 관계자는 “발행 주체로서 책임을 지게 된다면, 통제권도 함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금융 질서 재편 분기점
이 같은 위기의식에도 불구하고 은행권은 공개 발언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여당 주도 입법 국면에서 전면에 나서면 ‘기득권 방어’ 논란에 휘말릴 수 있어서다.
은행권도 장기적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당장 효과를 거둘 수는 없어도 흐름 자체를 거스를 수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변화의 방향과 파급력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며 “지금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하면 향후 재편될 금융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자산 기본법 논의 방향에 따라 은행의 위상은 달라질 전망이다. 은행권이 새롭게 재편될 금융 질서에서 주도권을 지킬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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