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1980년대 6400억원대 어음 사기 사건으로 ‘희대의 금융사기범’으로 불린 장영자(82)씨가 또다시 사기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전문가들은 장씨 사건이 권력·인맥과 확인 불가능한 증빙을 앞세운 전형적 사기 수법이 지금도 통하는 현실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4단독은 지난 14일 장씨에게 사기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장씨는 2022년 10월 경북 경주에서 지인을 통해 알게 된 피해자에게 “비영리 종교 사업을 위한 사찰 인수 계약금 5억5000만원을 냈다”고 속이고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며 1억원을 빌려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장씨는 4번째 사기 사건으로 2018년 징역을 4년 선고받아 복역하고 출소한 직후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장씨는 인수대금 5억5000만원을 일시 지급하겠다며 피해자에게 수표를 제시했지만 만기가 지난 부도수표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장씨가 인수 의사나 능력이 없었음에도 피해자를 속여 1억원을 편취했다고 판단했다. 또 범행 당시 장씨가 별다른 재산이나 소득원 없이 국세·지방세 등 약 21억원을 체납하고 있었던 점도 양형에 불리한 요소로 들었다.
지난해 1월 154억원대 위조 수표 사건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이달 말 출소할 예정이던 장씨는 이번 사건이 유죄로 확정되면 6번째로 복역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장씨 사건이 ‘오래된 수법이 여전히 통하는 구조’를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피해자들이 빠지기 쉬운 심리로는 ‘나는 당하지 않는다’는 과신, 전과가 있는 유명인에 대한 역설적 신뢰(이미 죄를 저질렀으니 반성했을 것이라는 인식), ‘권력층과 가깝다’는 말에 기대는 사회적 증거가 거론된다.
실제로 장씨는 과거에도 위조 수표·어음 같은 ‘증빙을 앞세운 접근’과 함께 권력과 인맥을 내세우는 사기 수법을 반복해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인척으로 1983년 남편 이철희 전 중앙정보부 차장과 함께 6400억원대 어음 사기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이 금액은 당시 정부 1년 예산의 10%에 가까운 금액으로 ‘단군 이래 최대 금융 사기’ 사건으로 알려졌다.
장씨는 이후에도 1994년 140억원대 2차 어음 사기 사건, 2000년 220억원대 구권 화폐 사기 사건 등으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여러 차례 복역했다.
현대사회가 AI와 딥페이크 등을 통해 위조가 가능해 사기가 더 쉬워진 환경인 만큼 유명인·권력 배경을 앞세운 금융사기를 피하려면 ‘너무 좋은 제안은 멈추는 것’이 출발점이라는 조언도 있다.
경찰대 서준배 행정학과 교수는 본보에 “‘대통령을 안다, 검사·정치인을 안다’는 식의 말은 오히려 의심 신호로 받아들이고 거래 전 상대의 변제 능력과 신용을 확인하는 절차를 두는 게 안전하다”면서 “당사자 동의를 받아 안전한 기관에서 신용정보를 확인하는 방식이 사기 예방에 실질적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장씨에 대한 선고가 10개월로 비교적 약하다는 평가를 두고 서 교수는 “국내 사기 범죄에 대한 처벌이 관대하다는 논란은 꾸준히 존재했다. 이에 지난해 3월 사기죄 법정형을 높이는 형법 개정도 이뤄졌다”면서 “피고인이 고령인 점이 참작됐을 가능성이 크고, 2022년 위조 사건으로 이미 구속 상태였던 상황에서 이번 사건이 경합범으로 추가된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면서도 “전과가 누적된 누범인데도 낮은 형량이 선고되면 사회적으로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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