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광의 고대 이집트 미술과 신화 #13] 고대 이집트 여성과 평등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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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광의 고대 이집트 미술과 신화 #13] 고대 이집트 여성과 평등의 미학

문화매거진 2026-01-21 10:44:3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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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후세계인 천국(아루)에서도 부부가 함께하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 배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는 벽화. 죽음조차 갈라놓을 수 없는 영원한 동반자로서의 약속과 평등한 가치를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사후세계인 천국(아루)에서도 부부가 함께하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 배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는 벽화. 죽음조차 갈라놓을 수 없는 영원한 동반자로서의 약속과 평등한 가치를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문화매거진(이집트)=한민광 작가] 수천 년 전 모래바람 속에 묻혀 있던 고대 문명들을 들여다보면 현대인조차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대개 ‘고대’라고 하면 남성 중심적인 사회와 억압받는 여성을 떠올리기 쉽지만, 나일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고대 이집트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그곳의 여성들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봐도 놀라울 만큼 상당한 자율성과 권한을 누렸다.

이집트 여성들은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었고, 삶의 방향이 맞지 않는다면 스스로 이혼을 선택할 권리도 있었다. 당대 다른 문명권의 여성들이 집안에 갇혀 지내야 했던 것과 달리, 이집트 여성들은 당당히 토지와 재산을 소유했다. 시장을 오가며 거래를 했고,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으며,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가질 수도 있었다.

▲ 고대 이집트의 벽화로, 신과 파라오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여왕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화려한 장신구와 의복을 갖춘 인물들의 배치를 통해 당시 왕실 여성의 높은 지위와 종교적 위상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고대 이집트의 벽화로, 신과 파라오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여왕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화려한 장신구와 의복을 갖춘 인물들의 배치를 통해 당시 왕실 여성의 높은 지위와 종교적 위상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그들이 믿었던 신화에서부터 비롯된다. 이집트 종교 속 여신들은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었다. 지혜의 여신, 마법의 여신, 수호의 여신 등 그들은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적인 책임을 맡아 관리했다. 신들의 세계에서부터 여성이 주체적인 역할을 수행했기에 현실 세계의 여성들 또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집트의 이러한 문화적 토양이 인류의 오랜 고전인 성경 속 기록과도 묘하게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다. 성경의 창세기를 보면 신이 남자의 갈비뼈를 취해 여자를 만들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성경 독자들은 흔히 이를 두고 ‘남자의 부속물’이라 오해하곤 하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의 생사관을 대입해 보면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해진다.

▲ 사후세계에서 죽은 자의 심장 무게를 정의의 깃털과 비교하여 심판하는 '심장의 무게 재기' 장면을 묘사한 부조 / 사진: 한민광 제공
▲ 사후세계에서 죽은 자의 심장 무게를 정의의 깃털과 비교하여 심판하는 '심장의 무게 재기' 장면을 묘사한 부조 / 사진: 한민광 제공


이집트인들에게 ‘심장’은 단순한 장기가 아니라 생명과 영혼의 본질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사후세계에서 심장의 무게를 깃털과 비교해 천국과 지옥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그런 소중한 심장을 감싸고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바로 ‘갈비뼈’다. 즉, 신이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지었다는 기록은 여자가 남자의 한 부분이라는 뜻을 넘어, 남자의 생명인 심장을 온전하게 존재하게 만드는 ‘보호자’이자 ‘동반자’였다는 의미로 읽힌다.

▲ 신이 잠든 남자의 갈비뼈에서 여성을 이끌어내어 창조하는 장면을 묘사한 조각품
▲ 신이 잠든 남자의 갈비뼈에서 여성을 이끌어내어 창조하는 장면을 묘사한 조각품


실제로 한 조각품을 보면 신이 잠든 남자의 옆구리에서 여성을 이끌어 내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흙으로 빚어진 두 존재가 서로를 마주 보는 찰나의 순간은, 남녀가 상하관계가 아닌 서로의 생명을 완성하는 필수적인 짝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이집트인들에게 여성은 보조적인 존재가 아니라, 남성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완벽하게 보호하고 완성하는 존재였다.

▲ 거대한 파라오 석상의 발치에 왕비가 함께 조각된 모습. 이는 강력한 통치자의 곁을 지키는 배우자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당시 왕실 여성이 지녔던 당당한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거대한 파라오 석상의 발치에 왕비가 함께 조각된 모습. 이는 강력한 통치자의 곁을 지키는 배우자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당시 왕실 여성이 지녔던 당당한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때때로 이집트 유적지를 걷다 보면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파라오의 거대한 석상이나 화려한 황금 가면을 마주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이름 모를 부부의 다정한 모습을 발견할 때 더 감동스럽다.

대표적인 예로 카르낙 신전이나 아부심벨에서 볼 수 있는 람세스 2세의 거대한 석상을 들 수 있다. 고대 이집트 역사상 가장 강력한 통치자 중 한 명이었던 그는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거대한 석상을 남겼으나 그 위엄 있는 석상의 발치에는 그가 생전 가장 사랑했던 네페르테리 왕비가 항상 함께 조각되어 있다. 비록 왕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석상의 크기 자체는 다를지언정, 왕의 다리 곁을 든든히 지키는 그녀의 당당한 존재감은 수천 년의 세월을 뚫고 오늘날까지 그들의 사랑을 증언한다.

▲ 귀족의 무덤 내부에 조성된 부부의 좌상으로,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영원을 함께하는 모습이다. 사후세계에서도 끊어지지 않는 부부의 깊은 유대감과 대등한 동반자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귀족의 무덤 내부에 조성된 부부의 좌상으로,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영원을 함께하는 모습이다. 사후세계에서도 끊어지지 않는 부부의 깊은 유대감과 대등한 동반자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이러한 부부의 깊은 유대감은 비단 왕족뿐만 아니라 귀족과 일반 민중의 삶 속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이집트 전역에 흩어져 있는 귀족들의 무덤 입구에서 부부의 다정한 모습은 가장 흔하면서도 중요한 예술적 주제로 다루어졌다. 돌을 깎아 정교하게 만든 부부상이나 벽면에 그려진 화려한 채색 벽화를 보면, 부부는 항상 나란히 앉아 서로를 따뜻하게 응시하거나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다. 이는 여성을 남성의 뒤편에 숨기거나 아예 기록에서 지워버렸던 다른 문명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대목이다. 이집트인들에게 아내는 단순히 가사를 돌보는 남편의 종속물이 아니라, 가문을 함께 지탱하고 사후세계까지 동행하는 완전한 인생의 동등자였다.

▲ 부부가 서로 마주 앉아 다정하게 손을 맞잡고 교감을 나누는 모습을 묘사한 고대 이집트의 벽화. 아내의 손길이 남편에게 닿아 있는 섬세한 표현을 통해 이들이 공유했던 깊은 신뢰와 애정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부부가 서로 마주 앉아 다정하게 손을 맞잡고 교감을 나누는 모습을 묘사한 고대 이집트의 벽화. 아내의 손길이 남편에게 닿아 있는 섬세한 표현을 통해 이들이 공유했던 깊은 신뢰와 애정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특히 한 무덤의 벽화 속에서 부부가 다정하게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마치 어제 찍은 스냅사진처럼 생생한 현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여인의 섬세한 손길이 남편의 팔과 손 살며시 닿아 있는 묘사는 이들이 서로를 얼마나 깊이 신뢰하고 의지했는지를 시각적으로 웅변한다. 당시의 화려한 장신구와 정교하게 묘사된 옷 주름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들의 표정 속에 깃든 평온함과 깊은 애정의 표현이다. 고대 이집트의 예술가들은 단순히 인물의 외형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들 사이에 흐르는 정서적 교감과 보이지 않는 사랑의 끈을 영구히 보존하고자 노력했다.

▲ 사후세계인 천국(아루)에서도 부부가 함께하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 배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는 벽화. 죽음조차 갈라놓을 수 없는 영원한 동반자로서의 약속과 평등한 가치를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사후세계인 천국(아루)에서도 부부가 함께하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 배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는 벽화. 죽음조차 갈라놓을 수 없는 영원한 동반자로서의 약속과 평등한 가치를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나아가 이집트인들에게 죽음은 모든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자 영속적인 삶으로의 이행이었다. 그들이 꿈꿨던 영원한 사후세계인 ‘아루(Aaru)’에서도 여성의 자리는 항상 남편의 곁으로 약속되어 있었다. 천국으로 향하는 배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가는 장면을 묘사한 벽화를 보면, 부부는 비좁은 배 위에서도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은 채 나란히 앉아 앞을 향한다. 그들은 사후세계의 심판관 앞에서 심장의 무게를 재는 두려운 순간조차 혼자가 아닌 함께 이겨내고자 했으며, 신들에게 자신들의 결합이 영원함을 인정받고자 했다.

이 그림들이 주는 예술적, 철학적 울림은 실로 대단하다. 삶의 모든 고단함과 기쁨을 함께 이겨낸 부부가 죽음이라는 거대한 강을 건널 때도 결코 서로의 손을 놓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이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는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현대 서구식 맹세를 뛰어넘어, “죽어서도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는 이집트인들만의 독특하고도 낭만적인 생사관을 보여준다. 당시 이집트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얼마나 귀한 존재였으며, 현생과 내생을 통틀어 영원토록 함께하고 싶은 유일한 동반자였는지를 다시 한번 명확히 증명하는 대목이다.

결론적으로 고대 이집트 미술 속에 투영된 여성의 모습은 결코 단순한 장식이나 보조적 역할에 머물지 않았다. 여성은 한 사회를 지탱하는 든든한 축이었고, 남성의 생명을 근원적으로 보호하는 갈비뼈였으며, 영원을 함께 여행하고 싶은 유일한 동반자의 모습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진정한 평등과 사랑의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금 고민한다면, 수천 년 전 뜨거운 태양 아래 모래 속에 새겨진 이들의 다정한 뒷모습과 따스한 손길에서 그 시대를 초월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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