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의 하나로 '중국 혐오'를 끌어들였다. 근거 없는 부정선거 음모론의 배후로 중국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 내에서 혐중 정서가 본격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극우세력은 대림과 명동 등 중국인 밀집 지역을 들쑤시며 이주민들을 위협했고, 일부 극우 정치인들은 지지율을 높일 목적으로 혐오 확산에 앞장섰다. '내란 청산'이 이뤄지고 있는 지금도 중국계 이주민들은 혐중 정서에 시름하고 있다. <프레시안>은 이들을 만나 그들이 현재 바라보는 한국은 어떠한지, 그리고 이들과 연대하는 이들과 전문가들을 만나 현재의 혐중 정서의 실태와 문제점, 그리고 해결점은 무엇인지를 들어보았다. 기획은 세 편으로 발행된다. 편집자
새해 첫 주말을 맞은 지난 3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역 6번 출구 앞에 패딩과 귀마개, 털모자 등으로 단단히 무장한 중장년 30여 명이 무리를 지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사진을 찍는 등 대림을 생경하게 여기는 모습이 이곳 주민은 아닌 듯했다.
이들은 서로 이어폰과 송신기를 주고 받더니, 옷가지에 마이크를 차고 계단에 올라 발언을 시작하는 청년을 주목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청년 남성이 앞장서 혐오를 선동하면 중장년층이 호응하는 혐중 시위의 형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계단에 오른 청년, 박동찬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소장이 말한 모임의 취지는 혐중 시위와 정반대였다.
"뉴스로 접하셨겠지만, 이곳 대림은 여러 가지 차별과 혐오의 문제에 노출돼 있죠. 저희 연구소는 이주민들의 인권 보호 활동을 펼치고 있는 비영리 단체인데, 사업 중 하나로 선주민, 한국 시민들에게 이주민 밀집 지역인 대림동을 소개하는 일들을 해오고 있습니다. 3년 전부터 꾸준히 진행해 총 2500여 분이 참여하셨고요. 오늘 또 새해부터 좋은 지향을 가진 단체와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돼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날 모임은 참여자들이 대림동을 돌아다니며 이곳에 터를 잡은 이주민들의 삶과 문화를 체험하는 프로그램 '대림동 걷기'의 올해 첫 행사였다. 영화, 유튜브 등 미디어는 조선족과 재한중국인 등 이주민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대림을 온갖 범죄가 벌어지는 무법지대로 묘사해 왔다. 난데없이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은 대림 주민들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혐중 정서가 더욱 강해지면서 잠재적 보균자 취급까지 받았다. 대림동 걷기는 이런 왜곡된 인식을 넘으려는 시민들이 모여 이주민들의 터전과 일상을 직접 마주하는 프로그램이다.
선주민들이 처음 향한 곳은 주거밀집 지역. 낡고 허름한 주택 한 채에 계량기 여섯 대가 달려 있다. 주거비가 부담되는 이주민들이 옥탑방, 반지하, 단칸방 등으로 주택을 쪼개 살고 있어서다. 그런데 바로 옆 직업소개소에는 월 300~400만 원, 많게는 700만 원을 주겠다는 구인 광고가 나열돼 있다. 언뜻 적지 않아 보이는 임금을 두고 박 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대림에 사는 이주노동자들은 주로 건설현장이나 돌봄노동에 종사합니다. 직업소개소 보면 페이(월급)가 한 300~400만 원 정도로 적혀 있어요. 700만 원은 부부 동반일 겁니다. 나름 괜찮아보이죠? 그런데 여기에는 함정이 하나 있어요. 노동시간이 주 10시간 이상, 휴무일은 월 2회입니다. 굉장한 고강도 노동인데 시간을 따지면 최저임금이에요. 결코 임금이 많은 게 아닙니다."
주거밀집 지역을 벗어나 상권, 그중에서도 중앙시장에 들어서자 걷기 참여자들의 눈과 귀가 한층 바빠졌다. 간체자로 쓰여 읽기 어려운 간판, 한국어보다 크게 들리는 중국어 호객 행위, 리어카에 실려 있는 중국 간식, 요즈음 한국에서는 잘 먹지 않는 개구리 고기 등 주민들이 만들어 낸 고유문화를 처음 경험했기 때문이다.
대림 중앙시장은 이런 이색 풍경 탓에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2020년, 중국이 코로나19 진원지로 지목되자 대림동은 중국계 이주민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 됐다. 당시 서울시와 영등포구는 "불법 식육제품 및 비식용 야생동물 등을 팔지도 먹지도 맙시다"라는 현수막을 시장 입구에 매달았다. 동시에 불법 식육제품 및 비식용 야생동물 유통 여부를 확인하는 민관 합동점검에 나섰다. 졸지에 대림 중앙시장은 비식용 야생동물을 유통하는 불법 시장으로, 주민들은 잠재적 보균자로 낙인찍혔다.
"대림동 주민들은 억울한 거예요. 나 여기서 20년 살았는데, 우한이라는 동네는 가보지도 않았는데. 단지 중국 여권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표적이 됐어요. 그리고 대림동에 야생동물 안 팝니다. 볼 수도 없고 먹지도 않아요. 그런데 허위 의혹에 근거해서 구청과 시청에서 '야생동물 팔지도 먹지도 말라'는 현수막을 달아준다는 거죠. 이 모든 게 우리 선입견을 보여주는 장면들이에요."
대림동 걷기를 마치고 저녁을 먹으려 식당에 모인 참여자들은 중국계 이주민들이 대림에 모인 이유도 궁금해했다. 박 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림 지역 인근은 '구로공단'이란 이름의 산업단지였어요. 많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구로공단에 모여 생활했고요. 그런데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가 되면서 공단이 거의 해체 수순을 밟습니다. 그렇게 빈집이 만들어진 시기가 한중수교, 중국계 이주민들이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들어온 시기와 겹쳐요. 대림에 빈집이 많으니 중국 동포들이 그 자리를 메운 거죠. 지금도 부평, 부천, 안산, 수원 등 상대적으로 집값이 싼 곳에는 차이나타운이 형성되고 있어요."
대림동 걷기 참여자들이 박 소장의 설명을 듣더니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떠올린 과거는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터전을 옮기던 20세기 한국사회였다. 참여자들 사이에서 "올챙이적 생각해야지. 우리도 일본 가서 돈 벌어올 때 있었잖아", "산업화 시대 때는 사우디아라비아, 독일, 미국 가서 살았었지" 등 과거 한국 사회가 대림에 모인 중국계 이주민들과 다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중국은 도둑질만 하는 나라라거나, 중국 관광객은 진상이라는 등 중국인들을 둘러싼 고정관념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반박이 나왔다. 대림동 걷기에 참여한 한종수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이 짝퉁 많이 만드는 거 맞죠. 근데 우리도 옛날에 일본, 미국 제품 많이 훔쳤거든요. 그리고 중국 관광객 추태 부린다 하지만 우린 동남아 가서 추태 안 부리나요? 20년, 30년 전에 우리도 똑같았어요. 물론 중국이 문제가 없다는 건 아닌데 우리도 올챙이적을 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과거 한국 사회와 닮았으니 이해하자는 걸까. 박 소장과 시민들은 대림 주민들을 비롯한 혐중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란 데 뜻을 모았다. 지금은 혐오의 대상이 중국인이지만, 언제든지 한국인, 그중에서도 자신이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자는 데에도 공감했다.
"조선족 등 중국계 이주민들이 문제시되기 전에 드라마나 영화에서 악역을 맡던 계층은 전라도 사람들이었어요. 북한 사람들은 아예 사람 취급도 안 했죠. 뿔 달린 괴물 취급했지 않았습니까? 계엄 선포 이후로 혐중이 갑작스럽게 불거졌죠. 다음에는 이미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자행되고 있는 장애인 혐오나 여성혐오, 소수자를 향한 혐오로 표적만 바뀐 채 반복될 수 있어요. 그래서 혐중에 대응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혐오라는 문제 자체를 한국 사회에서 뿌리째 뽑아야 한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박동찬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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