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뉴스에서는 유난히 ‘선고’라는 단어가 자주 들린다. 한때 권력의 정점에 서 있던 이들이 구속되고 법정에 서는 장면이 반복되고 그들의 운명에 대한 결말이 하나둘 이달에 내려지고 있다. 시계를 불과 1년1개월 전으로만 되돌려 봐도 그들은 오늘과 같은 상황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권력, 언제나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 믿었던 지위는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진다.
권력을 그토록 유지하고자 했던 것은 과연 행복을 위한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묻게 된다. 권력을 갖는다는 것은 과연 행복한 일일까. 권력을 누린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고대 그리스는 이미 오래전에 깊은 성찰을 남겨뒀다. 시칠리아 섬 시라쿠사에 살던 다모클레스의 이야기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왕 디오니시우스를 부러워하며 말한다. 왕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와 권력, 영광을 모두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왕은 하루 동안 자신의 자리를 직접 체험해 보라고 제안한다. 보석으로 장식된 옷, 진귀한 음식이 가득한 연회, 분주히 오가는 하인들. 다모클레스는 처음에는 황홀함에 취한다. 그러나 왕좌에 앉아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순간, 그는 숨이 멎을 듯한 공포를 느낀다. 자신의 머리 위에는 날카로운 칼이 단 한 가닥의 말총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언제라도 끊어질 수 있는 위태로운 상태였다. 그 순간부터 왕의 자리는 더 이상 축복이 아니었다. 다모클레스는 단 한순간도 안심할 수 없었고 결국 공포에 질려 권좌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다시는 그 자리를 탐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 일화는 권력이란 달콤함과 동시에 늘 파멸의 가능성을 머리에 이고 있는 자리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 다른 이야기는 소아시아 리디아 왕국의 크로이소스 왕에 관한 것이다. 그는 막대한 부와 군사력을 거머쥔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다.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간이라 확신하던 그는 현자 솔론에게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묻는다. 당연히 자신의 이름이 나오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솔론은 조국을 위해 싸우다 명예롭게 죽은 사람, 부모를 위해 헌신하다 평온한 죽음을 맞이한 형제를 행복한 사람으로 꼽는다. 불쾌해진 크로이소스가 항의하자 솔론은 이렇게 답한다. “어떤 인간도 죽기 전까지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운명은 언제든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모욕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10여년 뒤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왕국이 멸망하고 처형대에 선 크로이소스는 그제야 솔론의 말을 떠올리며 그의 이름을 외쳤다고 전해진다.
다모클레스와 크로이소스는 모두 왕이라는 자리가 곧 행복의 조건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이 누렸던 것은 영원한 행복이 아니라 잠시 반짝이다 사라지는 권력의 달콤함에 불과했다. 오히려 솔론의 말처럼 공동체를 위해 책임을 다한 삶, 사랑을 실천하며 마무리된 인생이 더 행복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높이 올라갈수록 위험은 커지고 휘두른 힘만큼 반드시 책임이 뒤따른다. 권력은 누리는 대상이 아니다. 선택의 무게, 판단의 결과, 그로 인해 영향을 받는 수많은 사람의 삶까지 함께 짊어져야 하는 자리다. 즉, 짐을 짊어진 자리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특권으로 착각하는 순간 다모클레스의 칼은 이미 머리 위까지 내려와 있을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는가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책임을 다했는가에 의해 비로소 판단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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