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첫사랑의 설렘은 언제나 영화의 중심에 놓이지만, 어떤 작품들은 그보다 오래 남는 감정으로 관객을 붙잡는다. 영화 ‘나만의 비밀’이 그러하다. 작품은 두근거리는 로맨스를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십대 소녀들이 만들어가는 우정의 결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청춘의 또 다른 얼굴을 비춘다. 사랑과 우정, 그 경계가 가장 모호한 시기의 감정들을 판타지라는 장르 안에서 조심스럽게 풀어낸다.
‘나만의 비밀’은 각자의 방식으로 타인의 감정을 볼 수 있는 다섯 명의 청춘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마음의 기울기, 감정의 파동, 심장의 박동 같은 보이지 않는 신호들이 시각화되는 설정은 이 작품을 감성 판타지로 규정짓는 핵심 장치다. 그러나 영화가 진정으로 집중하는 지점은 능력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능력으로 인해 더 복잡해지는 관계의 온도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여성 캐릭터들 사이의 관계성이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 미키, 통통 튀는 에너지와 리더십을 지닌 파라, 그리고 조용하지만 깊은 시선을 가진 엘. 이 세 인물은 전형적인 우정의 도식을 따르지 않는다.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도, 감정을 드러내는 속도도 다르지만, 그렇기에 이들의 관계는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미키와 파라는 친구라는 단어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친밀함을 보여준다. 미키의 마음 기울기를 읽는 파라와, 파라의 감정 파동을 감지하는 미키는 말보다 먼저 상대의 상태를 알아차린다. 작은 표정 변화, 미묘한 침묵 하나에도 반응하는 이들의 모습은 흔한 로맨스보다 더 설레는 워맨스를 완성한다. 감정을 본다는 설정이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 관계의 정서가 지나치게 진실하기 때문이다.
엘의 존재는 이 우정의 스펙트럼을 한층 넓힌다. 적극적으로 앞에 나서지는 않지만, 파라의 흔들림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보는 인물이다. 파라가 강한 리더십 뒤에 숨긴 불안과 고민을 엘은 조용히 받아들인다. 말없이 곁에 머무르는 선택, 그 침묵의 배려는 관계를 깊게 만든다. 이들의 우정은 사건으로 증명되기보다 시간으로 축적된다.
입시와 진로, 첫사랑과 비교 속에서 흔들리는 십대의 일상은 영화 속에서도 녹록지 않다. 그러나 미키와 파라, 엘은 서로의 결핍을 메우며 성장해간다. 이 과정에서 우정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연대의 형태로 진화한다. 불안과 외로움을 혼자 견디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그 깨달음이 이 작품이 건네는 가장 따뜻한 메시지다.
원작 소설로 이미 수많은 독자의 공감을 얻은 스미노 요루의 세계관은 나카가와 슌 감독의 섬세한 연출을 만나 한층 부드럽게 확장된다. 감독은 캐릭터의 감정을 대사보다 시선과 몸의 방향으로 설명한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와, 친구를 바라볼 때의 자세는 다르다는 그의 해석은 영화 곳곳에서 감정의 밀도를 높인다.
‘나만의 비밀’은 화려한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 대신, 청춘이 겪는 보편적인 감정에 집중한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흔들리는 마음, 말하지 못한 진심으로 인해 생기는 거리감. 이 영화는 그런 감정들이 결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조용히 일러준다.
첫사랑만큼이나 각별한 여고생들의 우정. 사랑보다 깊고, 우정보다 로맨틱한 이 연결은 올겨울 극장가에 오래 남을 감정의 여운을 남길 것이다. 영화 ‘나만의 비밀’은 오는 21일, 관객과 만난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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