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보기관으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포섭돼 국군 정보요원의 신원을 외부로 넘긴 군 내부 간첩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중형을 확정했다. 해외에서 신분을 숨기고 활동하는 이른바 ‘블랙요원’ 명단이 외국 정보기관에 유출된 중대 안보 사건이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는 군형법상 일반이적 등 혐의로 기소된 전직 국군정보사령부 군무원 천모(51) 씨에게 징역 20년과 벌금 10억원, 추징금 1억6205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연령과 성행, 범행 동기와 수단, 그 결과와 범행 이후의 정황 등을 종합할 때 원심의 형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천씨는 1990년대 국군정보사령부 부사관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대 중반 군무원으로 전환됐다. 범행 당시에는 정보사 팀장급 실무 책임자로 근무했고, 기소 시점 기준 5급 군무원 신분이었다.
군 검찰 조사에 따르면 천씨는 2017년 4월 자신이 구축한 현지 공작망 접촉을 위해 중국 옌지를 방문했다가 공항에서 중국 측에 체포돼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포섭 제의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약 2년간 접촉이 이어졌고, 2019년부터 실제 군사기밀 유출이 시작됐다.
천씨가 중국 측에 넘긴 자료는 문서 형태 12건, 음성 메시지 형태 18건 등 총 30건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에는 해외에서 신분을 위장한 채 활동하는 정보요원의 실명·인적 사항·공작 관련 정보가 포함돼 있었다.
1심 재판부는 “유출된 군사기밀에는 파견 정보관들의 인적 정보가 포함돼 있었고, 이 정보가 노출될 경우 정보관의 생명과 신체의 자유에 명백한 위험이 발생한다”고 판단했다. 또 “장기간에 걸쳐 구축된 정보망과 정보 수집 노력이 더 이상 활용될 수 없게 되는 중대한 손실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천씨는 기밀을 넘기는 대가로 중국 측에 약 40차례에 걸쳐 금전을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총 요구액은 4억원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 실제로 수수한 금액은 1억6205만원으로 확인됐다. 자금은 지인 명의 차명계좌 등을 통해 전달됐다.
1심은 징역 20년과 벌금 12억원, 추징금 1억6205만원을 선고했다. 2심은 뇌물 요구액 산정 과정에서 일부 중복 계산을 바로잡아 요구액을 2억7852만원으로 조정했고, 이에 따라 벌금도 10억원으로 감액했다. 징역형과 추징금은 유지됐다. 천씨는 재판 과정에서 중국 측의 가족 협박 때문에 범행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체포와 조사를 받았더라도 귀국 후 부대에 보고하고 보호 조치를 요청하는 등 합법적인 해결 수단이 존재했다”며 “피고인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강압 상황에 있었다고 볼 객관적 자료는 없다”고 판단했다. 또 기밀 유출 이후의 금전 수수 행위가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일반이적죄와 뇌물죄는 보호 법익이 서로 다르다”며 배척했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장은 “이번 사건은 정보전 환경에서 내부 인력에 대한 통제가 무너질 경우, 국가 안보의 최전선이 단숨에 붕괴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며 “해외 정보기관의 포섭 방식이 고도화되는 만큼, 인적 검증과 보안 관리, 위기 발생 시 보고 체계까지 전반적인 정보보호 구조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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