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외 통상 기조가 다시 한 번 글로벌 에너지·원자재 시장을 흔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과 거래하는 국가를 상대로 대미 수출품에 25%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예고하면서,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 교역 흐름 전반에 불확실성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단순한 제재 강화 차원을 넘어, 제3국 기업까지 압박하는 '세컨더리 관세' 성격이 짙다는 점에서 업계는 긴장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에너지·원자재 업계가 특히 주목하는 대목은 이번 조치가 중동 지정학 리스크와 미국 통상 정책이 결합된 형태라는 점이다. 이란은 글로벌 원유·가스 공급망에서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다. 여기에 이란산 원유·석유화학 제품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국가들까지 제재 대상이 될 경우, 원유·LNG·석유화학 원료 등 주요 에너지 원자재의 공급 차질 가능성이 동시에 거론된다. 시장에서는 이미 "정책 리스크 프리미엄이 가격에 선반영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는 가격 변동성 확대보다 교역 위축과 금융 리스크 전이를 더 우려하는 분위기다. 에너지 원자재는 실물 거래뿐 아니라 장기 계약, 해상 운송, 금융 조달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관세 부과 가능성이 현실화할 경우, 미국 시장 비중이 높은 기업일수록 이란 관련 거래를 전면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 한 에너지 기업 관계자는 "이란과의 직접 거래 여부보다, 공급망 어딘가에 이란이 연결돼 있는지만으로도 미국 수출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며 "계약 구조와 원산지, 운송 루트를 다시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에너지·원자재 기업들도 '탈(脫)이란 리스크' 전략을 가속화하는 모습이다. 중동 내 공급선을 다변화하거나, 미국·호주·아프리카 등 비교적 정치 리스크가 낮은 지역으로 원료 조달처를 옮기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동시에 중장기 계약 비중을 줄이고, 스폿 거래와 재고 운용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정책 리스크에 대한 유연성을 높이려는 시도도 늘고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조달 비용 상승과 수익성 저하가 불가피하다는 점은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시장 영향도 변수다. 관세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 에너지·원자재 가격 급등 가능성과 함께 글로벌 위험자산 선호 위축이 동반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는 원자재 관련 기업의 투자 결정과 프로젝트 파이낸싱에도 영향을 미친다. 업계에서는 "가격 상승 자체보다, 정책 방향이 자주 바뀔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투자 심리를 더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을 단기 이벤트가 아닌 구조적 리스크로 보고 있다. 미국의 대이란 압박이 강화될수록 에너지·원자재 시장은 지정학과 통상이 결합된 '정책 변수의 상수화' 국면에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한 원자재 시장 전문가는 "향후 관세 수위나 적용 범위가 확대될 경우, 에너지 가격 변동성은 물론 글로벌 교역 둔화 압력도 커질 수 있다"며 "기업들은 가격 예측보다 정책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번 조치는 에너지·원자재 업계에 공급망 재편, 거래 구조 점검, 투자 전략 재설계를 동시에 요구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정학 리스크와 미국 통상 정책이라는 두 축이 맞물린 상황에서, 업계의 대응 속도와 전략적 유연성이 향후 실적과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은 가장 빠르고 강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란의 최대 교역 파트너로서, 미국이 예고한 25% 보복관세가 현실화되면 중국의 대미 수출 전반에 추가 부담이 얹힐 수 있다는 계산이 작동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중국 외교부는 정례 브리핑에서 "관세전쟁에는 승자가 없다"는 취지로 미국의 일방적 조치를 비판하며 자국의 권익을 "단호히 수호"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로이터는 중국 정부가 미국의 '일방주의'에 반대하며 **필요한 대응 조치(카운터메저)**를 경고했다고 전했다.
인도는 정부·공식 라인과 업계 체감이 엇갈리는 대표 사례다. 인도 매체들은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이란과의 교역 비중이 크지 않아 25% 관세의 직접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취지로 전했다.
반면, 로이터는 인도산 바스마티 쌀의 대이란 수출이 대금 회수 불안과 관세 우려로 사실상 멈칫하고 있으며, 인도 수출업체들이 신규 계약을 주저하는 분위기를 전했다.
한국은 공개 메시지의 톤이 가장 조심스럽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구체 계획이 확인될 때까지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세부안이 나오면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내 보도에서도 정부의 대응이 비교적 '로우키'로 전개되는 가운데, 외교 당국이 이란 체류 국민 관련 컨틴전시 플랜을 점검하는 흐름이 언급됐다.
거래 규모 측면에서 한국의 대이란 교역은 제재 환경 속에서 이미 축소돼 왔다. 국제 무역 데이터 기반 집계(UN Comtrade 기반)에서는 한국의 대이란 수출이 2024년 약 1억5천만 달러 수준으로 제시된다.
[폴리뉴스 정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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