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를 꿈꾸는 만년필쟁이 박종진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세계 최고를 꿈꾸는 만년필쟁이 박종진

더 네이버 2026-01-20 10:22:07 신고

3줄요약

한국의 만년필 애호가라면 이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박종진 또는 파카51. 그는 취미로 만년필을 수리해온 ‘박종진 만년필연구소’의 소장이자, 국내 최대 만년필 커뮤니티 ‘펜후드’의 회장이다. 만년필 동호인 사이에서는 ‘파카51’이라는 닉네임으로 더 잘 통한다. 


두 살 무렵부터 길쭉한 나무 막대기에 집착하던 아이의 관심은 초등학생이 되자 아버지의 만년필로 옮겨갔고, 그렇게 만년필을 향한 평생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이후 직장 생활을 하며 더 많은 만년필을 모은 그는 동호회를 만들어 만년필 이야기를 나누었다. 2007년에는 지금의 만년필연구소를 열어 평일에는 회사로, 주말에는 연구소로 향했다. 전국에서 의뢰한 만년필을 무료로 수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제 전업으로 만년필에 몰두하고 있다. 팟캐스트 <월말 김어준> 출연을 계기로 만년필 제작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그렇게 탄생한 만년필이 신안 앞바다에서 인양된 보물선 속 고려청자 유물에서 영감을 얻은 ‘베개’다. 


온종일 루페로 만년필을 들여다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는 그를 연구소에서 만났다.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무수한 만년필을 구경하는 사이에도 만년필을 의뢰하려는 손님들의 노크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1 박종진 소장의 수리 도구. 2 루페로 만년필 펜촉을 들여다보는 박종진 소장.

유년 시절부터 나무 막대를 쥐고 다녔다고 들었다. 어쩌다 만년필에 빠졌는지 궁금하다.아주 어릴 적부터 좋아했다. 돌잡이 때도 만년필을 집었다고 하더라.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아버지가 쓰는 만년필을 보고 꼭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처음 만년필을 산 건 열 살 때였다. 용돈을 모아 동네 문구점에서 파카45 카피 제품을 샀다. 길고 뾰족한 물건을 워낙 좋아해 주삿바늘마저 좋아할 정도였다. 만년필도 끝이 뾰족하고 곧으니 하염없이 보기만 해도 좋다.


얼마나 많은 만년필을 모았나? 본격적으로 수집한 건 20대부터다. 30~40대에 한창 모을 때는 일주일에 두 자루씩 들였다. 사진으로만 봐서는 알 수 없으니 궁금한 만년필을 계속 사서 분해하고 공부했다. 1,000자루 넘게 소장했는데 지금은 주변에 거의 넘겼다. 만년필은 아무리 모아도 끝이 없더라. 어느 순간 만년필을 좋아한다면 직접 갖고 있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음을 깨달았다. 만년필 연구에 몰두하다 보니 더 이상 소장 개수가 중요하지 않다.


어쩌다 소장 욕구를 초월했나? 지구에 있는 모든 만년필을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 소유가 별 의미 없다고 본다. 만년필연구소를 열어 남의 펜을 수천 개 고쳤는데, 워낙 많은 펜을 만지다 보니 더 이상 내 것과 남의 것 구분이 안 된다. 또 만년필이라는 물건이 나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결국 사람은 사는 동안 만년필을 잠시 빌려 쓰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소유는 의미가 없다. 내 곁에 둬야 한다는 생각을 버린 지 한참 됐다.

1 만년필 모형과 만년필 모양 조명, 빈티지 포스터 등이 곳곳에 놓여 있다. 2 파우치에 보관 중인 만년필. 3 만년필 닙을 세척하는 모습. 

쭉 직장 생활과 연구소 운영을 병행했다고. 만년필이 너무 좋아서 직업으로 삼지 못할 정도였다. 직업이 되면 순수한 애정이 깨질 것 같았다. 그러다 작년에 퇴직했다. 직원이 있으니 운영에 신경 써야 하지 않나. 막상 해보니 시간과 관계없이 끝까지 고쳐서 보내달라는 고객이 많았다. 내 뜻을 헤아리는 사람들이 찾아오니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고심해 수리할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 전업으로 전환하니 더 많은 의뢰가 오고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계속해서 성장하고 싶다. 그리하여 역사상 최고의 ‘만년필쟁이’가 되고 싶다. 파카51을 만든 케네스 파카와 쉐퍼의 창립자인 월터 쉐퍼가 역사적으로 뛰어넘어야 할 인물이다.


많은 만년필 중 파카51을 닉네임으로 삼을 정도로 특별한 애정을 품고 있는데. 어딜 가든 파카51 두 자루를 챙긴다. 각각 1950년대, 1960년대 생산된 제품인데 어제 만든 것처럼 쌩쌩하다. 두 만년필에 잉크를 채우면 안심이 된다. 만년필이라면 잘 써져야 하는 건 당연하다. 거기에 고가품인 만큼 내구성이 중요하다. 내구성에서는 어떤 만년필도 파카51을 따라올 수 없다. 이 만년필에는 내구의 균형이 존재한다. 만년필은 어느 한 부분이 먼저 약해지기 쉬운데, 파카51은 뚜껑, 몸통, 펜촉의 내구성이 동등하게 균형을 이룬다. 


가장 좋아하는 만년필도 파카51이겠다. 지금 좋아하는 만년필을 고르자면 오노토 매그나, 워터맨 패트리션, 워터맨 58이다. 먼저 오노토 매그나는 부드러운 필기감 덕에 글씨가 잘 써진다. 워터맨 패트리션은 1930년대 워터맨이 업계 최고였던 시절을 지나 하락하는 시기에 개발된 제품이다. 워터맨이 모든 역량을 투입해서 제작했으나 당시에는 사랑받지 못했다. 비운의 귀족이랄까. 시대를 잘못 만난 불운한 천재 같은 펜인데, 오히려 현대에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워터맨 58은 희귀 만년필 도감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 펜인데, 1년 넘게 수리 중이다. 어떻게 고쳐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

고려청자 베개 형태로 그립을 디자인한 만년필 ‘베개’. 2 부드러운 필기감을 자랑하는 오노토 매그나. 3 옛 만년필 광고판이 공간에 생기를 더한다.


만년필을 오래 사용하는 노하우가 궁금하다. 관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매일 쓰는 것이다. 만년필은 잉크가 몸통으로 들어온 뒤 글씨를 쓰면 펜촉으로 나가며 순환하는 구조다. 순환이 계속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이 음식을 먹고 배설하는 이치와 같다. 만년필을 쓰지 않을 때는 무조건 잉크를 빼야 한다. 음식을 먹고 소화를 못 시키면 문제가 생기듯 그냥 두면 잉크가 굳거나 썩는다. 


만년필 수리를 넘어 제작에도 참여했다.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보물선에서 건져 올린 보물 가운데 ‘청자 상감 모란 구름 학 무늬 베개가 있다. ‘베개’는 그 유물의 형태에서 착안해 그립을 사각형으로 디자인하고 청자 문양을 넣은 만년필이다. 한글을 쓰기에는 매끄러운 것보다 사각거리는 필기감이 적합한데, 무게중심을 낮게 설계하고 펜촉 끝을 다듬어 사각사각한 필기감을 구현했다. 


2026년 새로운 만년필 ‘세종’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세종대왕은 역사상 다방면의 천재 아닌가. 이처럼 기존 만년필의 우수한 요소를 합쳐보자는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예컨대 몸체는 ‘가장 완벽한 물질’이라 하는 금속으로, 잉크 주입 방식이나 펜촉도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타입으로 제작할 계획이다.


새해를 맞아 새출발하는 이에게 선물할 만년필을 추천한다면? 늘 좋은 만년필을 사라고 권한다. 중요한 일을 시작할 때 좋은 구두를 신고 나가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제법 괜찮은 만년필을 선물 받으면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펠리칸 M400, 파카 소네트, 워터맨 엑스퍼트 정도를 추천한다. 그래야 갖췄을 때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까. 그리고 각인은 절대 하지 말 것. 만년필 자체로 완벽하기에 무엇을 더할 필요 없이 그대로 주는 것이 가장 좋다.


평생을 애호한 만년필은 인생에 어떤 의미인가? 만년필은 무당의 방울이다. 나는 만년필을 통해 접신한다. 모든 것을 이루어주는 신을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 만년필을 통해 여행을 떠날 수도, 몰랐던 역사를 알 수도 있고 행복을 느낄 수도 있으니 접신의 도구 아닌가.    

더네이버, 피플, 수집가

Copyright ⓒ 더 네이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