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8월 11일 러시아군이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에서 불길과 함께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텔레그램 캡처
총성과 가스관이 만난 전쟁
2022년 2월, 탱크가 국경을 넘는 순간 세계는 오래된 지도 위에 새로운 균열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뉴스 화면 속에서 포연과 함께 번졌고, 국제 유가는 로켓처럼 솟아올랐으며, 유럽의 가스관은 갑자기 전장의 전략 자산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전쟁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비극으로만 이해했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넓히면, 이 전쟁은 훨씬 거대한 장기판 위에서 벌어지는 경기라는 사실이 보인다.
이 전쟁의 진짜 무대는 키이우가 아니라 워싱턴과 베이징, 그리고 모스크바다.
전쟁의 진짜 병기는 포탄이 아니라 달러와 에너지, 반도체와 위성이다.
전쟁의 진짜 목적은 영토가 아니라 세계 질서의 주도권이다.
우크라이나는 지금, 미·중 신냉전의 유럽 전선이다.
그리고 이 전선은 단지 총과 탱크만 오가는 전장이 아니라, 가스관과 금융망, 군수 공장과 반도체 공장이 동시에 맞붙는 복합 전장이다.
냉전은 끝난 적이 없다.
다만 무대와 배우, 무기만 바뀌었을 뿐이다.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은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여러 도시와 지역에서 심각한 파괴와 인명 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러시아의 복귀, 미국의 포위, 중국의 계산
이 전쟁을 이해하려면 세 나라의 전략 지도를 동시에 펼쳐야 한다.
러시아는 왜 탱크를 몰고 들어왔는가.
미국은 왜 그토록 집요하게 나토를 동쪽으로 밀어붙였는가.
중국은 왜 침묵 속에서 러시아를 떠받치고 있는가.
이 질문은 모두 하나의 문장으로 이어진다.
21세기 패권 경쟁의 서막이 이미 울렸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소련 붕괴 이후 30년 동안 굴욕의 시간을 보냈다.
동유럽은 나토로 흡수되었고, 발트 3국마저 서방 진영에 편입되었다.
과거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완충 지대는 하나둘씩 사라졌다.
모스크바에서 바라본 지도는 점점 좁아졌다.
러시아의 전략 공간은 줄어들고, 나토의 미사일은 국경 가까이 다가왔다.
푸틴에게 우크라이나는 단순한 이웃 국가가 아니다.
러시아 제국의 기원이며, 소련 산업의 심장이었고, 흑해로 나가는 관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토가 넘어오면 절대 안 되는 최후의 방어선이었다.
러시아의 목표는 분명했다.
우크라이나의 서방 편입을 차단하고, 다시 한 번 동유럽에서 영향력을 회복하는 것.
소련 붕괴 이후 잃어버린 전략적 깊이를 되찾는 것.
반면 미국에게 우크라이나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미국은 냉전 이후 단극 체제를 유지해왔다.
달러는 세계 기축통화였고, 나토는 유럽의 안보를 장악했으며, 국제 금융 시스템은 워싱턴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중국의 부상은 이 구조를 흔들기 시작했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었고, 기술 패권에 도전했으며, 일대일로로 유라시아 대륙을 묶기 시작했다.
미국은 더 이상 태평양만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유럽 역시 다시 중요한 전장이 되었다.
나토 확장은 단순한 방어 전략이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을 동시에 압박하는 지정학적 포위망이다.
러시아를 동쪽에서 묶어두고, 중국과의 전략적 연대를 차단하는 구조다.
우크라이나는 그 포위망의 마지막 퍼즐이었다.
그리고 중국은 이 모든 상황을 매우 차분하게 바라보고 있다.
중국에게 러시아는 완벽한 전략적 완충국이다.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의 관심을 유럽 전선에 묶어두고, 중국은 태평양에서 숨을 고를 수 있다.
러시아는 에너지를 제공하고, 중국은 제조와 금융으로 이를 흡수한다.
두 나라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중국은 이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그러나 러시아를 고립시키지도 않는다.
침묵은 곧 전략이다.
▲ 역사적 관점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는 단순히 적대적인 이웃 국가의 관계가 아니라 복잡한 유대와 긴장을 동반한 긴 역사를 가진다. 약 300년에서 400년에 걸친 두 국가 간의 관계는 민족적, 문화적, 역사적 연결고리로 설명될 수 있다.
유럽은 왜 다시 전장이 되었나
20세기 유럽은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초토화되었다.
그리고 냉전 동안에는 철의 장막 아래에서 긴장 속에 숨을 죽였다.
냉전이 끝난 뒤, 유럽은 평화의 대륙이 되었다고 믿었다.
전쟁은 역사책 속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럽은 지정학적으로 너무 중요한 땅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관문이며, 세계 금융과 기술의 중심지다.
그리고 무엇보다 러시아와 중동,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교차로다.
유럽의 안보는 곧 세계 질서의 안정과 직결된다.
미국은 유럽을 통해 러시아를 봉쇄하고, 중동과 아프리카로 영향력을 확장한다.
중국은 유럽을 통해 일대일로의 종착지를 완성하고, 글로벌 시장을 장악한다.
러시아는 유럽을 통해 에너지를 수출하고, 외화를 벌어들인다.
유럽은 모두가 탐내는 체스판이다.
우크라이나는 그 체스판의 중앙에 놓인 퀸이었다.
흑해를 끼고 있고, 러시아와 유럽을 잇는 통로이며, 곡물과 에너지 수송의 허브다.
군사적으로는 러시아 남부를 향한 관문이자, 나토의 전진 기지로 활용될 수 있는 요충지다.
이 땅의 방향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느냐에 따라 유럽의 안보 지형 전체가 달라진다.
균형이 깨진 순간, 전쟁은 불가피해졌다.
▲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대규모 파괴 이후,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논의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이러한 재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에너지와 무기가 만드는 새로운 질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총알보다 가스가 더 많은 사람의 삶을 바꿨다.
유럽은 오랫동안 러시아 가스에 의존해왔다.
저렴하고 안정적인 공급망은 독일 산업의 경쟁력을 떠받쳤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동유럽 국가들 역시 러시아 에너지에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자 이 구조는 무기가 되었다.
러시아는 가스를 조절했고, 유럽은 에너지 공포에 빠졌다.
가격은 폭등했고, 산업은 흔들렸으며, 시민들의 난방비는 정치 문제가 되었다.
그 빈자리를 미국 LNG가 채웠다.
미국은 세계 최대 에너지 수출국으로 변신했다.
셰일 혁명으로 생산된 가스는 대서양을 건너 유럽 항구로 들어갔다.
이 전쟁은 에너지 시장의 지도를 다시 그렸다.
유럽은 러시아를 끊고 미국에 연결되었다.
러시아는 유럽을 잃고 중국과 인도로 방향을 틀었다.
중국은 러시아 에너지를 할인 가격으로 흡수하며 제조 경쟁력을 강화했다.
전쟁은 군수 산업도 깨웠다.
냉전 이후 축소되었던 군수 공장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전차, 포탄, 미사일 생산 라인은 풀가동에 들어갔다.
독일은 재무장을 선언했고, 일본은 방위비 증액에 나섰다.
한국의 방산 수출은 유럽으로 뻗어 나갔다.
무기는 다시 세계 경제의 핵심 산업이 되었다.
전쟁은 단지 파괴가 아니라 산업 재편이다.
▲ 러시아 시베리아의 가스개발사업
세계는 이미 다음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그 이후의 세계는 준비되고 있다.
미국은 유럽 전선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태평양 전선에 집중하고 있다.
대만 해협, 남중국해, 필리핀 기지는 새로운 화약고가 되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와 인공지능, 우주 산업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전쟁은 이제 알고리즘과 위성, 데이터 센터에서 먼저 시작된다.
러시아는 전쟁을 통해 제재 경제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달러 없는 무역, 위안화 결제, 에너지 외교는 새로운 생존 전략이 되었다.
세계는 다시 블록화되고 있다.
자유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이라는 오래된 구도가
디지털과 에너지, 군사와 금융이라는 새로운 무기로 재편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첫 번째 균열이었다.
그리고 이 균열은 더 넓어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교과서에 실릴 시대를 살고 있다.
미래의 학생들은 이 전쟁을 이렇게 배울 것이다.
21세기 신냉전의 첫 번째 포성이 유럽에서 울렸다.
그리고 세계는 다시 한번,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총성과 가스관, 위성과 알고리즘이 함께 움직이는 시대.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새로운 풍경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질서가 무너질 때, 역사는 가장 빠르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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