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춤의 호흡은 릴리즈(이완)의 미학이지만, '일무'는 달랐습니다. 40명의 무용수가 한 사람처럼 움직여야했죠. 개성을 지우고 전체의 질서에 녹아드는 과정, 그것은 무용수들에게 뼈를 깎는 고통이었습니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일무(佾舞, One Dance)'의 안무를 밭은 정혜진 안무가는 작품을 이렇게 설명했다. 전통 춤의 호흡을 과감히 비워내고, 집단의 질서와 규율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실험'이었다. 그 실험은 세계 무대의 주목으로 이어졌다.
서울시무용단 단장 겸 예술감독을 지낸 정혜진 안무가는 김성훈·김재덕과 함께 '일무'로 무용계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베시 어워드' 최우수 안무가·창작자 부문 후보에 올랐다. 41년 베시 어워드 역사상 한국 국공립예술단체 작품으로 한국인 안무가가 후보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는 20일(현지시간) 뉴욕 딕슨 플레이스에서 열리는 '베시 어워드' 시상식 참석을 앞두고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정 안무가는 베시 후보로 오른데 대해 "완전 서프라이즈였다. 처음엔 조작인가 싶을 정도였다"고 했다.
공연이 뒤늦게 올해 후보에 오른 것은 주최측 사정으로 2023년과 2024년 시즌을 통합해 심사했기 때문이다.
그는 "쟁쟁한 12개 팀들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 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했다. 그의 표현은 겸손했지만, 이는 한국 창작무용이 세계주류 무대에서 인정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일무'는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유산인 종묘제례악의 의식무(儀式舞)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군무의 정확성과 역동성, 집단의 에너지가 전면에 드러난다. 2022년 초연 이후 서울 재공연마다 매진을 기록했고, 2023년 7월 뉴욕 링컨센터 초청 공연에서도 전회차 매진을 달성했다.
하지만 해외 무대의 반응이 처음부터 우호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뉴욕 공연을 앞두고 현지에서는 중국 파룬궁의 션윈 예술단 공연과 비슷할거라는 예단도 나왔다.
"리허설을 보기 전까지는 반응이 상당히 차가웠어요. 그런데 막상 무대를 본 후 180도 태도가 달라졌어요.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치는데, 가슴에 손을 얹고 감동을 표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죠."
'일무'의 성공 요인으로 평단은 칼날 같은 군무와 압도적인 미장센을 꼽는다. 그러나 정 안무가는 화려한 결과보다 그 뒤에 놓인 과정을 강조했다. 그는 이를 '비움과 조율'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정 안무가는 "이 작품은 '내가 얼마나 잘 추느냐'를 보여주는 춤이 아니다"라며 "무용수들이 '이건 완전히 예도'라고 한다. 자기를 내려놓지 않으면 설 수 없는 무대"라고 말했다.
이어 "힘이 없으면 속도를 맞출 수 없고, 에너지가 없으면 끝까지 버틸 수 없다"며 "일무는 개인보다 전체를 먼저 생각하도록 요구하는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연습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간까지 쉬는 시간 없이 이어졌다. 그는 "1초, 2초 단위로 쪼개 연습했다"며 "전체의 한 템포가 '탁' 맞아떨어지고, 라인이 '착' 나오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 전통 장단의 느린 호흡 대신 서양식 비트(Beat)를 몸에 입력시켜 '칼각'을 만들어내는 훈련이었다.
정구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의 협업도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의 주선으로 만난 두 사람은 '전통과 현대적 감각의 융합'이라는 지점에서 의기투합했다.
정 안무가는 "정구호 연출은 처음 세운 콘셉트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대단하다"며 "무거운 의상 때문에 무용수들이 힘들어했지만, 그 무게감이 결국 춤을 넘어서는 웅장한 공간미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일무의 공동 안무가 김성훈·김재덕에 대해서는 "두 사람이 가져온 현대적인 움직임을 한국 춤의 문법 안에서 조율하는 작업이 중요했다"며 "제 판단을 믿고 쿨하게 받아들여 준 신뢰가 없었다면 지금의 '일무'는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안무가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이자 안무가·예술감독·교육자로서 현재 최현우리춤원 회장을 맡고 있다. 서울예술단 예술감독(2012~2015년), 서울시무용단 예술감독 겸 단장(2019~2024년) 등을 역임했다. 최근 안무작으로는 국립정동극장과 함께 제작한 '단심'(정구호 연출)이 지난해 '경주 APEC 정상회의' 연계 특별공연에 공식 초청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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