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 병합 야욕으로 촉발된 미국·유럽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 14일(이하 현지시간) 그린란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미국과 덴마크, 그린란드의 3자 회담이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나자 덴마크와 프랑스와 독일, 영국,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 유럽 주요국이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이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견하면서 사상 초유의 동맹국간 군사 대치 양상이 벌어졌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8개 국가를 상대로 내달 1일부터 10%, 오는 6월 1일부터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고, 이에 유럽이 즉각적인 보복 조치를 준비하면서 무역 전쟁으로 확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美-덴마크·그린란드, 백악관 회동 결렬…"근본적 이견"
미국과 덴마크·그린란드는 14일 백악관에서 약 1시간 동안 고위급 협상을 진행했다. 미국에선 JD 밴스 부통령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참석했고,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외무장관과 비비안 모츠펠트 그린란드 외무장관이 자리했다.
이날 회동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미국의 그린란드 확보 방안에 대해 각자 입장을 교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라스무센 장관은 회동 후 기자들에게 그린란드를 둘러싼 "근본적인 이견"이 남아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견을 해소하기 위한 실무 그룹 구성에는 합의했다.
라스무센 장관은 기자들에게 "우리 관점에서 그 실무 그룹은 미국의 안보 우려를 어떻게 해소할지에 초점을 맞추되 덴마크 왕국의 레드라인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덴마크의 '레드라인'이란 미국에 대한 그린란드 영유권 이양을 가리킨 것으로 풀이된다.
모츠펠트 장관은 그린란드가 미국과의 협력 강화를 바라지만 미국령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어떻게 될지 두고 보겠지만, 우리는 그것(그린란드)이 필요하다"며 "뭔가 해법이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러시아나 중국이 그린란드를 점령하려고 하면 덴마크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지만, 우리는 뭐든지 할 수 있다"며 "지난주 베네수엘라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에 앞서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도 미국이 아니면 러시아나 중국이 그린란드를 차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덴마크·유럽 8개국, 협상 결렬 후 그린란드에 파병…美 vs 나토 대치 국면
협상이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나자 덴마크는 곧바로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견했다. 그린란드 주요 시설 방어를 위한 '북극의 인내 작전'(Operation Arctic Endurance) 훈련 목적의 병력 파견이라고 설명했지만 미국에 대한 방어 조치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특히 트뢸스 룬 포울센 덴마크 국방장관은 현지 공영방송 DR에 "목표는 그린란드에 보다 상시적인 병력을 구축하는 데 있다"고 말해 이번 병력이 단발성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훈련은 필수 기반 시설 경비, 현지 경찰 등 자치 정부 지원, 동맹 병력 수용, 그린란드 안팎 전투기 배치 및 해상 작전 수행 등을 포함한다고 덴마크군은 설명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북극 인내 작전'에 참여할 정찰 병력 13명을 이날 오전 그린란드로 보냈고, 프랑스는 15명의 산악 전문 병력을 그린란드에 파견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독일, 영국,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 덴마크와 인접한 유럽 주요국이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도 파병에 동참하면서 미국과 나토가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프랑스 군 선발대가 그린란드로 향하고 있으면 추가 병력도 뒤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스웨덴은 장교 3명, 노르웨이는 장교 2명을 파견했고, 영국 장교 1명도 정찰 임무에 합류했다.
트럼프 "8개국에 10% 관세" vs EU "159조 보복관세 검토"
미국과 유럽의 대치는 경제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 8개국을 상대로 내달 1일부터 10%, 오는 6월 1일부터 25%의 대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자 유럽이 보복관세를 천명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프랑스, 독일, 영국, 네덜란드, 핀란드 등 그린란드에 소규모 병력을 파견한 8개국을 거론하며 "매우 위험한 게임을 벌이는 국가들은 감당할 수 없고 지속 불가능한 수준의 위험을 초래했다"며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이어 "강력한 조치를 취해 이 잠재적 위험 상황이 의문의 여지 없이 신속히 종결되게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면서 "2026년 2월 1일부터 위에 언급된 모든 국가는 미국으로 수출하는 모든 상품에 10% 관세가 부과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2026년 6월 1일에는 관세가 25%로 인상된다"며 "이 관세는 그린란드의 완전하고 총체적인 매입(purchase)에 관한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부과된다"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해 영국, EU와 각각 체결한 무역협정을 통해 영국 수입품에는 10%, EU에는 15%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 발표한 관세는 여기에 추가되는 관세일 것으로 추정된다.
나아가 양측이 합의한 무역협정을 무효화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1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만약 내가 유럽인이라면 가능한 한 이 문제를 분리해서 처리하려 할 것"이라며 "그들이 이 문제를 무역 협상에서 쟁점으로 삼고 싶다면, 그건 그들의 선택이지 우리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유럽연합(EU)을 비롯한 프랑스, 영국, 독일, 스웨덴 등 각국 정부는 일제히 비판 메시지를 내놓으며 대응 의지를 밝혔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성명에서 "EU는 덴마크, 그린란드 주민들과의 전폭적인 연대를 표명한다"며 "관세는 대서양 관계를 훼손하고 위험한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그린란드는 덴마크 왕국의 일부이며, 그 미래는 그린란드 주민과 덴마크 국민들의 문제"라며 "나토 동맹국의 집단 안보를 추구한다는 이유로 동맹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일"이라고 말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현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그린란드 '침공'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도를 정당화할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관세 위협에 맞서 공동 대응 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다.
EU 의장국을 맡고 있는 키프로스는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회의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현지시간 18일 오후 5시에 열린다.
지난해 대미 무역 협상 때 마련했던 160조원 규모의 보복관세를 다시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8일 유럽 주요국 정상과 접촉하고 있으며 ACI 발동을 공식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BBC 방송과 AFP·DPA 통신이 엘리제궁 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무역 바주카포'라고 불리는 ACI는 EU나 회원국을 경제적으로 위협하는 제3국에 서비스, 외국인 직접투자, 금융 시장, 공공 조달, 지식재산권 등의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다.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을 '용납할 수 없는 일'로 보고 유럽 차원의 대응을 조율 중이며, 지난해 7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타결한 미·EU 무역 합의의 유효성에도 의문을 제기한다고 보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전날 베른트 랑게 유럽의회 무역위원장도 ACI 발동을 EU 집행위원회에 요구했으며, 그린란드 문제와 무역협정의 유럽의회 승인을 연계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 주요 회원국들이 930억 유로(약 159조원) 규모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거나 EU 시장에서 미국 기업들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는 수십 년 만에 미·유럽 간 가장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물러가라" 그린란드·덴마크서 트럼프 규탄시위
한편, 그린란드와 덴마크에서는 17일 미국을 규탄하는 시위가 동시에 열렸다.
AFP·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후 그린란드 수도 누크에서 열린 시위에 옌스 프레데리크 닐센 총리를 비롯한 수천 명이 참가해 그린란드 국기를 들고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에 항의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미국 영사관을 향해 행진하며 그린란드어로 그린란드를 뜻하는 '칼랄리트 누나트'를 외치고 원주민인 이누이트족 전통 노래를 불렀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도 시청 앞 광장에 수천 명이 모여 '그린란드에서 손 떼라'라고 적은 팻말을 들고 덴마크와 그린란드 국기를 흔들었다.
일부 참가자는 트럼프의 정치 구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비틀어 '미국 물러가라'(Make America Go Away)라는 문구를 새긴 야구모자를 썼다.
집회는 오르후스·올보르·오덴세 등 덴마크 다른 도시에서도 동시에 열렸다.
이날 집회를 조직한 덴마크 내 그린란드인협회 우아구트는 "그린란드의 민주주의와 기본적 인권을 존중하라는 뚜렷하고 통일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목적"이라고 밝혔다.
덴마크를 지지 방문 중인 미국 여야 의원들은 집회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어 그린란드 병합에 반대한다는 뜻을 거듭 확인했다.
크리스 쿤스 민주당 상원의원은 "그린란드는 덴마크의 일부고 덴마크는 우리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이라며 "이 논의는 여기서 끝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쿤스 의원은 "미국에 덴마크보다 더 나은 동맹국은 거의 없다"며 "덴마크인들에게 나토 동맹국으로서 의지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하는 행동을 한다면 어느 나라가 우리와 동맹을 맺거나 우리 약속을 믿겠는가"라고 했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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