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산업이 다시 '정책의 시장'으로 돌아왔다. 인공지능(AI) 확산과 데이터센터 증설은 메모리·로직 전반의 수요 기반을 넓히고 있지만, 동시에 미국발 관세·통상 압박이 기업의 투자 지도를 다시 그리게 만들고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마주한 문제는 단순하다. 투자를 멈추면 기술 경쟁에서 밀리지만, 투자를 어디에 하느냐에 따라 관세 리스크가 손익을 뒤흔든다. 성장의 선택이 아니라 상충하는 두 비용—투자 비용과 관세 비용—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구조가 K-반도체를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관세를 '가능성'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꺼내 들었다. 백악관은 2026년 1월 발표한 반도체 관련 조치에서 특정 '첨단 컴퓨팅 칩' 및 일부 파생 제품(Covered Products)에 대해 즉시 25%의 관세(부가세율, ad valorem duty)를 부과하되, 미국 내 데이터센터 사용·미국 내 R&D 등 일부 용도에는 예외를 두는 체계를 공표했다. 즉, 관세는 일괄 부과가 아니라 "미국 공급망 구축에 기여하는가"라는 기준 아래에서 산업 정책의 레버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기업들의 고민은 한 단계 더 깊어진다. 25%는 시작일 뿐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한국 정부와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지점은, 트럼프 행정부가 해외 생산 칩에 대해 '약 100%' 수준의 초고율 관세를 언급해 왔고, 미국 내 생산 또는 투자 약속 여부에 따라 예외를 둘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왔다는 대목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미국에 생산기반을 두지 않는 한국·대만 기업에 최대 100% 관세가 적용될 수 있다"는 취지의 경고성 발언도 보도됐다. 숫자 하나가 투자 수익률을 통째로 바꾸는 반도체 산업에서 '100%'는 협상 카드에 그치지 않는다. 시장은 그것을 가격의 절반이 아니라, 거래의 성립 여부를 가르는 변수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투자냐 관세냐'라는 질문은 현실에서 이렇게 구체화된다. 한국에 설비를 더 얹어 효율을 극대화하면, 수출 단계에서 25% 또는 그 이상이 비용으로 붙을 가능성을 짊어져야 한다. 반대로 미국으로 공장을 옮기거나 증설하면, 관세 리스크는 낮출 수 있지만 인건비·운영비·인력 수급·공급망 재구축 비용이 수익성을 갉아먹는다.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쪽에서 비용이 터지는 구조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를 늘릴수록 관세 리스크가 커지고, 관세를 피하려 할수록 투자 효율이 떨어지는" 모순을 관리해야 한다.
더욱이 반도체는 투자를 늦추기 어렵다. AI 반도체·HBM·첨단 공정 경쟁에서 설비 투자 공백은 곧 기술 공백이 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축으로 한 K-반도체가 '투자 보류'라는 선택지를 갖기 어려운 이유다.
다만 지금의 투자는 과거처럼 "얼마나 더 짓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어떤 조건으로 짓느냐"로 평가된다. 투자 결정이 사업 전략을 넘어 통상 전략이 되고, 통상 전략은 다시 수익 구조를 바꾼다.
이 지점에서 정부의 역할도 분명해진다. 기업이 투자와 관세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받지 않도록, 산업 정책은 세제·전력·인력 지원을 넘어 통상 협상력과 예외·유예 조건 확보로 이어져야 한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미국의 칩 관세와 관련해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협의하겠다"는 취지로 대응에 나섰다. 관세가 현실화된 국면에서 기업의 고민을 '개별 회사의 판단'으로만 돌려놓으면, 투자는 보수화되고, 그 공백은 경쟁국이 차지한다.
결국 K-반도체가 서 있는 곳은 성장의 교차로가 아니라 비용의 교차로다. 25%는 이미 시행 체계로 들어왔고, 100%는 '가능한 최악의 시나리오'로 기업의 의사결정을 압박한다. 이 숫자들이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이제 반도체 경쟁력은 기술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투자와 관세, 공장과 외교가 하나의 손익계산서에서 만나는 시대다. K-반도체가 이 딜레마를 어떻게 설계하고 돌파하느냐가, 다음 10년의 주도권을 가를 것이다.
[폴리뉴스 정철우 기자]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