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고등학교 부지로 계획된 땅이 '학생 수 부족'을 이유로 비워진 채 남았다. 경기 고양 지축지구 유보지 논란은 단순한 지역 민원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학령인구 감소' 통계가 도시계획과 교육정책을 가로지르며, 신도시 한복판에 '학교 없는 공간'을 만드는 구조적 문제가 전국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공공택지와 신도시 중심으로 학교 부지가 취소된 뒤 유보지로 남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교육부 중앙투자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학교 설립 계획이 철회되고, 해당 토지는 용도가 확정되지 않은 채 남는 구조다. 행정적으로는 인구 전망에 근거한 합리적 판단으로 볼 수 있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수도권 중심으로 주택 공급 부족 문제가 지속되면서 이들 유보지를 '주택·상업시설 등 다른 용도로 활용해야 한다'라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공공택지의 경우 사업 준공과 토지 활용 효율성이라는 현실적 이유로 유보지 '용도 전환 가능성'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교육 인프라와 주거 공급 논리가 충돌하며 갈등의 씨앗이 만들어진다.
지축지구 유보지 논란 역시 이런 흐름 위에 놓였다. '학교를 지을 수 없다'라는 판단으로 남겨진 빈 땅이 주택 공급의 잠재 후보지로 언급되자 주민 불안과 정책적 긴장이 동시에 커지는 구조다.
◆"왜 비어 있어야 하나" 지축지구 간담회에 모인 목소리
이런 문제의식은 지난 15일 열린 지축지구 유보지 관련 간담회에서 집약적으로 드러났다.
LH 고양사업본부 회의실에 모인 주민과 학부모, 국토교통부·LH 관계자들은 특정 개발에 대한 찬반을 넘어, 유보지가 만들어진 배경과 향후 용도 결정 기준을 놓고 각자 입장을 주고받았다.
LH 고양사업본부. Ⓒ 프라임경제
박정만 LH 고양사업본부장은 이 자리에서 "현재 유보지를 특정 용도로 변경하기로 확정된 바는 없다"라면서도 "2단계 사업 준공 목표를 2027년 6월로 잡고 있는 만큼 사업 준공을 위해서는 유보지 용도 결정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유보지가 장기간 미확정 상태로 남을 경우 사업 준공 자체가 지연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주민들은 고등학교 설립이 학생 수 부족으로 무산된 경위는 이해하면서도, 입주 이후 현실화된 통학 불편과 생활 문제 역시 행정 판단에 함께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주민은 "계획 단계에서 산정된 학생 수와 실제 입주 이후 수요는 다를 수밖에 없다"라며 행정 판단과 생활 현실 사이 간극을 지적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참석한 최승원 국토교통부 장관 정책보좌관은 "지축 유보지는 정부의 주택 공급 확대 정책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다"라며 유보지를 일괄적으로 주택 공급 대상으로 해석하는 시각에 대해 선을 그었다.
다만 그는 주민들이 제기한 "향후 학교 등 공공용도로 되돌릴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달라"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정책 건의로서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체적인 간담회 분위기는 격앙되기보단 차분했다. 주민 질문 대부분은 개발 반대가 아니라 "어떤 논리로 유보지가 됐고, 앞으로 어떤 기준으로 채워질 것인가"에 집중됐다. 감정적 반발보다는 제도와 기준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문제 제기에 가까웠다.
◆지축만의 문제가 아니다…전국으로 확산되는 유보지 딜레마
지축지구 사례는 예외가 아니다. 최근 수도권 공공택지와 3기 신도시, 지방 혁신도시 등에서도 학교 부지가 학생 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유보지나 공원, 기타 용지로 전환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라는 국가적 흐름 속에서 교육당국은 학교 신설에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고, 그 결과 도시계획 단계에서 예정됐던 교육 인프라가 현실화되지 못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학령인구 부족에 의해 고교 설립 계획이 철회된 지축지구 유보지. Ⓒ 프라임경제
문제는 이들 유보지가 주택 공급 논리와 맞물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수도권 중심으로 주택 공급 압박이 커지자 '학교 부지 유보지를 활용해야 한다'라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다만 주택이나 상업시설로 개발이 이뤄질 경우 향후 교육 수요가 증가하더라도 다시 학교 부지로 되돌릴 수 없다는 비가역성 문제가 남는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를 '인구 감소 시대의 제도적 충돌'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토 정책은 주택 공급 확대를 요구받고, 교육 정책은 학생 수 감소를 이유로 시설 확충을 억제하는 상황에서 유보지는 이들 정책이 정면으로 맞닿는 지점"이라며 "주택은 지어지지만 학교는 들어서지 않는 '반쪽짜리 신도시'가 구조적으로 양산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런 이유로 학교 부지 관리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 평가다. 계획 단계의 수요 예측만으로 학교 부지 폐기 여부를 결정하기보다는 △입주 이후 실제 수요를 재검증하는 '단계적 확정 방식' △학교와 공공시설을 복합 활용하는 '탄력적 기준'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지축지구 유보지 논란은 하나의 지역 현안에 불과할 수 있다. 다만 그 이면에는 "학령인구 감소라는 흐름 속에서 도시계획과 교육정책이 어떻게 조율돼야 하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사회적 과제가 놓여 있다.
학생 수 감소를 이유로 '학교를 지을 수 없다'는 판단이 계획 단계에서는 합리적일 수 있다. 다만 도시가 완성된 이후에도 동일한 기준이 유지되는 게 바람직한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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