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외국산 반도체에 최고 100% 관세 부과 가능성을 공개하며 K-반도체에 대한 관세 압박으로 대미 투자 확대를 강화하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에 공장을 짓지 않는 외국 메모리 업체에는 100%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경고한 데 이어 백악관도 반도체 및 파생 제품에 대한 추가 관세와 ‘관세 상쇄 프로그램’을 공식 문서로 예고했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세금 조치가 아니라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옮기라”는 신호로 해석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전략적 선택의 기로에 섰다.
업계는 이번 조치가 통상 분쟁을 넘어 반도체 산업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입지 전쟁’ 성격이 강하다고 보고 있다. 한국으로선 기존 투자 프로젝트를 근거로 관세 충격을 최소화해야 하지만 미국이 원하는 ‘메모리 본라인(전공정)’을 현지에 세우라는 요구가 구체화하면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 “대만보다 불리하면 안돼”…협상 공식 다르다
정부는 대미 관세 협상의 원칙으로 ‘최혜국 대우’를 재확인하며 “대만보다 불리한 조건은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대만 TSMC는 2500억달러(약 368조원) 규모의 미국 투자 계획을 전면에 내세워 애리조나 첨단 팹을 가동하며 관세 완화와 보조금·세액공제 등 혜택을 패키지로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이 제시한 대가는 생산량에 따른 관세 차별화다. 미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을 지을 때는 생산 능력의 2.5배까지, 완공 후에는 1.5배까지 대만 본국에서 생산한 반도체에 무관세가 적용된다.
한국도 삼성전자 텍사스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과 SK하이닉스의 패키징·후공정 투자를 ‘미국 내 투자’로 폭넓게 인정받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협상 구조 자체가 TSMC와 동일 선상에서 출발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TSMC는 첨단 로직 칩을 미국에서 직접 찍어내는 반면 삼성·SK의 핵심인 D램·낸드·HBM은 미국 내 본라인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이 ‘동일 대우’를 요구하려면 “무엇을 투자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기준부터 재설정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 러트닉, 100% 관세 경고…세금이 아니라 '공장 위치' 요구
러트닉 장관의 발언은 이번 조치가 단순 관세 부과가 아니라 생산 거점을 재편하기 위한 압박 카드임을 보여준다. 러트닉 장관은 “메모리를 만들고 싶다면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라며 “미국에 와서 공장을 짓거나 100% 관세를 감수하라”고 말했다.
백악관 문건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엔비디아 H200, AMD MI325X 등 일부 고성능 AI 가속기에 25%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반도체 및 파생 제품 전반으로 관세를 확대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동시에 미국 내 생산에 투자하는 기업에는 ‘관세 상쇄 프로그램’을 적용해 부담을 보전하겠다는 방침을 명시하며 “관세로 압박하고 인센티브로 유인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업계에서는 관세 수치 자체보다도 “공급망을 미국 안으로 끌어들이는 속도전”이 더 위협적이라는 말이 나온다.
◆ AI 공급망 미국으로…한국 메모리·HBM 겨냥
이번 정책의 배경에는 AI 패권 경쟁과 공급망 재편 구상이 깔려 있다. 미국은 TSMC 애리조나 공장을 통해 차세대 GPU 생산을 ‘미국 내 제조’로 전환하는 흐름을 만들고 있으며 폭스콘·위스트론 등 서버 업체도 미국 내 조립·생산 거점을 늘리고 있다. 여기에 마이크론이 미국 내 메모리·HBM 생산 확대 계획을 꺼내면서 AI 서버의 핵심 반도체가 미국 안에서 완결되는 ‘국내 공급망’ 구상이 구체화되는 분위기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한국 메모리 기업의 기존 모델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한국과 중국 생산기지에서 D램·낸드·HBM을 만들어 글로벌 고객사에 공급해 왔다. 그러나 미국이 외국산 메모리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현지 생산분에 면제·보전을 제공하면 미국 데이터센터는 자연스럽게 ‘미국산 메모리’를 우선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HBM은 AI 가속기와 결합해 수익성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인 만큼 미국이 공급망 통제 대상으로 삼기에 효과적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HBM 시장은 당장 한국 기업이 공급자 우위를 쥐고 있어 미국이 즉각 100% 관세를 부과하면 오히려 미국 빅테크·클라우드에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며 “다만 100% 관세 카드를 협상용 지렛대로 활용해 메모리 본라인을 미국으로 끌어오는 압박이 현실화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 정부는 "한·미 무역 합의 사항 ‘반도체 최혜국 대우’ 조항을 근거로 최대한 우리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협의해 나갈 것”이라며 “미국과 대만 간 합의 사항을 면밀히 분석하고 업계와 소통을 통해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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