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단 작가] 병오년 새해가 왔다. 올해는 특히나 기상 알람처럼 갑작스럽게 맞이한 느낌이다. 시간이 빠르다. 작년 연말 개업 후 곧 자리가 잡혀가는 것 같아 시름을 놓으려던 찰나, 주문량이 줄었다. 신년 목표를 건강으로 세우는 사람이 많으므로 헬스장에는 사람이 몰리고, 배달 음식 주문은 자제하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다. 씁쓸한 기분이 들어 새 프로모션을 시도하지만 당장의 뾰족한 타개점은 없다. 잠깐의 바람이라면 곧 지나갈 것이다. 커피 한 잔 놓고 OTT 서비스가 제공하는 안락함을 누려보도록 한다.
영화 ‘얼굴’을 봤다. 얼굴은 웹툰 원작으로, 독립영화 수준의 초저예산으로 제작비가 편성되었다. 주연배우가 출연료까지 고사하며 찍었다는데, 비하인드 스토리를 접하니 영화의 메시지가 더욱 궁금해졌다. 빛바랜 색감의 포스터엔 서스펜스를 암시하는 표정들이 담겨있다. 러닝타임은 1시간 40분으로 길게 느껴지진 않았는데, 사회적 약자, 특히 여성이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 한 당시의 시대상을 음각하며 사회적 낙인과 혐오를 초상하고 있었다. 자세한 설명은 스포일러가 될 것 같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했다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과거다. 실화 기반이라니 섬찟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수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기존의 불편한 위계질서와 권력 구조를 해체하고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나 잔해 위에 터전을 올린 일상은 위태롭다. 바이러스처럼 대기 중에 권위와 불평등한 사회 규범이 내포되어 삶을 위협하고 있는 것 같다. 종종 매체는 현실을 고스란히 고증한 역사가 된다. 감상을 통해 과오가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를 돕는다. 시사점이 비슷하지만 전달하는 방식이 다른 전시를 한 편 소개하고 싶다.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전개되고 있는 장파 작가의 개인전, ‘GORE DECO’다. 미의 기준에 관한 고정된 개념을 유머러스하게 비틀어 보인 회화 연작이 전시장을 밀도 있게 채우고 있다. 강렬한 색채를 띤 장기의 민낯 위로 키치한 실크스크린, 천이나 플라스틱 따위의 다양한 매체가 장식되어 존재감을 드러낸다. 전시는 타자화된 감각에 갇혀 사는 우리의 인식 가운데로 정확하게 안내한다.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바가 확실한 전시다. 작가의 의도대로 사유하고 있음을 체감했다. 시각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그저 편안한 경험은 아님에 공감하는 한편, 오늘날 꼭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고정된 미의 관념은 아름다움을 깎는 통제에 불과하다. 타인에게 받은 무시나 폭력 자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에 동조해 끊임없이 비교하며, 검열하고, 곱씹으며 무의미하게 소비한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자체를 나쁘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그걸 위해 무의식적인 차별과 합리화, 자기 비하로 일상을 채운다면 아름다움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전시의 메시지를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보는 경험을 넘어 아름다움의 진짜 의미를 지키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자신으로부터 출발해 확장된 미의 기준 안에서 서로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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