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毛澤東)은 “만리장성에 가보지 않은 자는 사내대장부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만리장성은 동쪽의 산해관(山海關)에서 서쪽 끝 가욕관(嘉峪關)까지 이어진다. 하서주랑(河西走廊, Hexi Corridor)은 동쪽 오초령(烏鞘嶺)의 농문관(隴門關)에서 서쪽 가욕관(嘉峪关)까지 동서로 900㎞ 폭 50~100㎞에 달한다. 남쪽은 기련산(祁連山)과 아미금산(阿爾金山), 북쪽은 마종산(馬鬃山)·합려산(合黎山)·용수산(龍首山) 등으로 둘러싸인 복도 모양의 긴 평지다. 황허(黃河)의 서쪽에 있어 하서주랑이라 불린다.
장액(張掖)은 하서주랑의 두 번째 주요 도시로 황허의 서쪽 기슭을 따라 이어진 좁고 긴 지대다. 오색 단하(丹霞)가 작은 산맥을 이루고 있으며 변방의 성채(城寨)와 불교 예술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기원전(BC) 121년 한나라 영토로 편입됐다. 장액이라는 지명은 “장국비액, 이통서역(張國臂掖, 以通西域 : 나라의 팔과 겨드랑이를 뻗쳐 서역까지 통하게 한다)”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풍부한 수자원과 비옥한 토양, 단하의 칠채산(七彩山) 등 물산이 풍부해 오늘날에는 “금(金)의 장액, 은(銀)의 무위” 혹은 “금과 은 같은 장액과 무위”라고 표현한다. 즉 단하와 풍부한 물산, 역사 문화적 자원을 가진 장액은 ‘황금 같은 도시’로 비유된다. 서역 교통의 중심지이자 하서사군(河西四郡) 설치의 군사적·역사적 가치를 ‘은’에 비유한 것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는 “장액은 하서의 인후(咽喉, 목구멍)이며 서역을 제어하고 통제한다”고 기록돼 있다. 서역을 제어하는 관문이라는 뜻이다. 한서(漢書)>
최근 중국 내 여행 열풍이 불면서 서역에 대한 재평가도 활발하다. 장액시의 공식 관광 슬로건은 “실크로드의 도시, 단하의 성(城) - 매혹적인 금(金)의 장액”이다. 하서주랑의 네 도시뿐만 아니라 주변 도시들에 대한 관심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고난의 역사가 빚어낸 변방의 시정
서역의 광활한 사막과 거대한 산맥은 중국 역사에서 두려움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반대로 서역의 유목 민족에게 중원의 대규모 사회와 문화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서로에게 상부상조하는 선린(善隣) 관계로 진행되지 않았다.
전쟁은 징발된 병사들에게는 죽음의 길이자 가족과의 애절한 이별이었으나 전공(戰功)에 눈먼 위정자들에게는 부귀영화의 기회였다. 왕창령(王昌齡, 698~757)의 시 <종군행(從軍行)> 제4수에는 그러한 시대상이 잘 나타나 있다. 종군행(從軍行)>
청해장운암설산(靑海長雲暗雪山) 청해호(靑海湖)로 길게 드리운 구름 속으로 설산이 희미한데
고성요망옥문관(孤城遙望玉門關) 외로운 군성(軍城)에 올라 멀리 옥문관(玉門關)을 바라보네!
황사백전천금갑(黃沙百戰穿金甲) 거친 사막의 수 없는 전투에 갑옷은 해졌지만
불파누란종불환(不破樓蘭終不還) 누란(樓蘭, 티베트)을 물리치지 않고는 끝내 돌아가지 않으리
왕창령이 활동하던 성당(盛唐) 시기, 토번국(티베트)이 청해호와 둔황(敦煌) 등을 평정했다. 왕창령은 토번국과의 전쟁에 종군했으며 마지막 구절의 누란은 토번국을 낮추어 부른 표현이다. 우루무치(烏魯木齊) 박물관에는 ‘누란의 미녀’라 불리는 미라가 소장돼 있다. 장액의 대표적 자연환경으로는 칠채산의 단하지질공원, 장액호위호(갈대 호수) 등이 있으며 문화유적으로는 동아시아 최대 목조 와불상이 있는 대불사(大佛寺)가 유명하다.
기련산 만년설이 빚은 오아시스 도시 주천
발길을 주천(酒泉)으로 돌린다. 주천은 북쪽의 고비사막과 하밀사막(哈密沙漠), 남쪽의 기련산맥으로 둘러싸여 있다. 기련산의 만년설과 지하수가 분출해 형성된 대형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했다. 수원이 풍부해 포도 재배 등 농경이 성행하며 사계절 맑은 날씨 덕분에 풍력과 태양광 발전도 활발하다.
주천에서 100㎞ 떨어진 내몽골 자치구에는 중국 최초의 우주발사기지인 주천 위성발사센터가 있다. 고대의 육로 교역로가 현대 과학기술의 중심지이자 우주로 향하는 관문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2003년 10월 15일 중국 최초의 유인 우주선 선저우(神舟) 5호가 이곳에서 발사됐다. 이백(李白)은 <월하독작(月下獨酌)> 에서 주천을 노래했다. 월하독작(月下獨酌)>
월하독작(月下獨酌)-이백(李白)
천약불애주(天若不愛酒) 하늘이 만약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주성부재천(酒星不在天) 주성(酒星)이 하늘에 없을 것이다
지약불애주(地若不愛酒) 땅이 만약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지응무주천(地應無酒泉) 땅엔 응당 주천이 없을 것이다
천지기애주(天地旣愛酒) 하늘과 땅이 이미 술을 좋아하였으니
애주불괴천(愛酒不愧天) 술을 좋아함이 하늘에 부끄럽지 않도다.
이문청비성(已聞淸比聖) 나는 이미 들었다네 청주는 성인에 비견하고
복도탁여현(復道濁如賢) 다시 탁주는 현인이라고 말하는 것을
성현기이음(聖賢期已飮) 성인과 현인이 이미 마셨으니
하필구신선(何必求神仙) 어찌 반드시 신선이 되기를 바랄까
삼배통대도(三杯通大道) 석 잔 술로 대도(大道)와 통하고
일두합자연(一斗合自然) 한 말 술을 마시면 자연으로 돌아가리니
구득취중취(俱得醉中趣) 이 모두가 술에 취한 가운데 얻는 것이니
물위성자전(勿謂醒者傳) 술 깬 사람들은 전하지 말지어다
만리장성 서단 끝자락 아름다운 요새 가욕관
주천에서 서쪽으로 60㎞를 달리면 만리장성의 서쪽 끝 가욕관에 닿는다. ‘아름다운 협곡의 요새’라는 의미를 지닌 이 관문은 1372년 명 태조 주원장이 북방 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건설했다. 이후 서역으로 향하는 모든 이는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했기에 ‘천하제일웅관(天下第一雄關)’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관문 주변에는 회족(回族)과 위구르족(維吾爾, Uyghur)의 전통 민속 마을이 형성돼 있어 다양한 문화와 음식을 체험할 수 있다. 다만 가욕관은 교통수단이 변하면서 예전에 비해 퇴락한 느낌을 준다. 기차역과 도로가 멀리 떨어져 있어 여행객들의 발길도 예전만 못하다. 이제 하서주랑의 마지막 도시, 사막의 신기루 둔황으로 향한다.
여성경제신문 손흥철 전 안양대 교수·중국 태산학술원 객좌교수
chonwangko@naver.com
Copyright ⓒ 여성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