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잃지 않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다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나를 잃지 않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다

나만아는상담소 2026-01-19 12:03:00 신고

연애가 시작되면 누군가는 습관처럼 자신의 색깔을 지운다.

상대가 재즈를 좋아하면 힙합을 듣던 이어폰을 내려놓고 재즈 앨범을 사 모은다. 상대가 매운 음식을 못 먹으면 캡사이신 중독자였던 자신의 위장을 순한 맛으로 개조한다. 주말의 스케줄, 옷 입는 스타일, 심지어 말투까지 상대의 취향에 맞춰 재배열한다.

우리는 이것을 ‘배려’나 ‘사랑’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정말 잘 맞아”라며 영혼의 쌍둥이를 찾았다고 기뻐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것은 일치(Harmony)가 아니라 소거(Erasure)다.

상대에게 맞추기 위해 나를 지우는 과정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거울 속에는 낯선 타인이 서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상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이 은밀한 자기 소멸은 관계의 끝에서 가장 큰 청구서를 내민다. 이별 후 남겨진 당신은 연인을 잃은 슬픔보다, 증발해버린 자기 자신을 찾아야 하는 막막함에 압도당한다.

병리적 순응, 생존을 위한 지우개

심리학에서는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억누르고 상대에게 전적으로 맞추는 행위를 ‘병리적 순응(Pathological Accommodation)’이라 부른다.

이것은 단순히 착한 성품 때문이 아니다. 생존 본능이다. 어린 시절, 양육자의 기분을 살피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했거나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꼈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 패턴을 반복한다.

“내 의견을 주장하면 너는 나를 떠날 거야.” 이 무의식적인 공포가 관계의 핸들을 상대에게 넘겨버리게 만든다.

당신은 갈등을 피하기 위해 “나는 다 좋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다. 평화는 유지된다. 하지만 그 평화는 당신의 자아를 제물로 바쳐 얻은 가짜 평화다.

상대방은 처음에는 당신의 순종적인 태도를 좋아할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는 당신을 존중하지 않게 된다. 자기 색깔이 없는 사람, 주관이 없는 사람은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맞췄음에도, 그가 “너는 너무 재미없어”라며 떠나는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다. 당신은 그에게 맞추느라, 정작 그가 사랑했던 ‘당신’을 없애버렸다.

두 개의 고독이 만나 서로를 지키는 것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사랑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사랑이란 두 개의 고독이 만나 서로를 보호하고,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이 ‘하나가 되는 것(Fusion)’이라고 착각한다. 너와 내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뒤엉키는 상태를 친밀감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그것은 ‘융합(Enmeshment)’이라 불리는 병리적 상태다.

융합된 관계에서는 한 사람이 기침하면 다른 한 사람이 열병을 앓는다. 경계가 무너져 서로의 감정이 쓰레기통처럼 뒤섞인다.

건강한 사랑은 합집합이 아니라 교집합이다. 나의 원과 너의 원이 겹치는 부분은 공유하되, 겹치지 않는 나머지 부분, 즉 ‘나만의 고독’은 온전히 지켜져야 한다.

나를 잃지 않는다는 것은, 연인이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성역(Sanctuary)을 남겨두는 일이다. 그가 싫어해도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계속하고, 그가 없어도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친구들을 만나고, 주말 하루쯤은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 이 독립성이야말로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산소다.

떨어져 있을 때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사람만이, 함께 있을 때 건강한 ‘우리’가 될 수 있다.

그림자를 끌어안는 용기

나를 잃지 않으려면, 내가 외면했던 나의 ‘그림자(Shadow)’를 되찾아야 한다. 융 심리학에서 그림자는 우리가 사회적으로 용납받지 못할까 봐 무의식 속에 억눌러둔 모습들이다. 이기심, 분노, 질투, 거절하고 싶은 욕구 같은 것들이다.

착한 연인이 되기 위해 억눌렀던 그 ‘못된 마음’들이 사실은 당신을 지켜주는 파수꾼이었다. “싫어”, “그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 “나는 지금 화가 났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공격성이야말로 당신의 경계를 지키는 힘이다.

상대에게 사랑받기 위해 연기하는 것을 멈춰라. 당신의 날카로운 면, 예민한 면, 이기적인 면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 모습까지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진짜 인연이고, 그 모습에 도망가는 사람이라면 어차피 떠날 사람이었다. 나를 잃으면서까지 지켜야 할 관계는 세상에 없다.

타인의 우주에 흡수되지 않는 법

사랑은 거대한 중력이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타인의 우주로 빨려 들어간다. 그 중력에 저항하며 내 궤도를 지키는 일은 피로하고 외로운 싸움이다. 하지만 그 싸움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사랑을 하는 주체가 아니라 사랑의 부속품으로 전락한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서 “나는 이 관계에서 어떤 기분을 느끼는가?”로.

상대의 눈치를 보는 대신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상대의 인정이 없어도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 자립심을 길러라. 혼자서도 꼿꼿이 설 수 있는 두 나무만이 서로에게 그늘을 만들어줄 수 있다. 덩굴식물처럼 엉겨 붙어서는 누구도 쉴 수 없다.

나를 잃지 않고 사랑한다는 건, 사랑하는 중에도 기꺼이 고독해질 용기를 갖는 것이다. 그 서늘한 거리감 속에서, 당신의 사랑은 비로소 질식하지 않고 숨을 쉬게 될 것이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나만 아는 상담소 프리미엄 콘텐츠 에서 더 깊이 있는 심리학적 조언을 확인하세요.

또한, 나만 아는 상담소 네이버 블로그 에서도 다양한 주제의 심리 칼럼을 만나보세요.




운명이라는 착각 책 표지

추천 도서

운명이란 착각

상처받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법

나르시시스트가 끌리는 당신의 심리에 대하여

관계의 덫에서 벗어나 일상의 행복을 만드는 방법

황규진 소장 저 | 북스고

The post 나를 잃지 않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다 appeared first on 나만 아는 상담소.

Copyright ⓒ 나만아는상담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