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전시현 기자 | 우리나라 원화 기반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누가 주도할지를 두고 정부와 여당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시장의 신뢰성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은행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여당과 핀테크 기업은 혁신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어 최종안에 관심이 높아진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등 특정 자산의 가치에 연동된 가상자산이다. 이에 다른 가상자산과 달리 가치 변동이 크지 않기 때문에 화폐처럼 송금, 결제, 환전에 활용할 수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은 은행이 과반(50%+1) 지분을 보유한 컨소시엄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도록 하는 이른바 '51%룰'을 추진 중이다. 반면 지난 16일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TF) 주최 토론회에서는 은행 중심 구조가 굳어지면 시장이 소수 컨소시엄으로 쏠려 독과점이 생기고 경쟁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공개적으로 제기됐다.
◆ '신뢰 vs 혁신' 당정 충돌
스테이블코인은 원화 같은 법정통화 가치에 연동돼 가격 변동을 줄인 디지털 자산이다. 결제·송금에 쓰일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화 논쟁이 커졌다. 정부는 시장 초기에는 안정성과 신뢰를 우선해야 한다는 취지로 은행 중심 모델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TF 토론회에서는 "은행이 컨소시엄 지분을 절반 이상 확보하면 독과점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은행법상 각 은행은 다른 기업의 의결권 있는 지분을 15% 초과 보유할 수 없어 '50% 이상'을 맞추려면 최소 4곳 이상 은행이 한 컨소시엄에 참여해야 한다. 그 결과 컨소시엄 수가 1~2개로 제한돼 경쟁이 위축될 수 있다는 논리다.
시장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하나금융은 BNK금융·iM금융·SC제일은행·OK저축은행 등과 스테이블코인 발행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전국적인 스테이블코인 유통망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BNK금융은 부산, iM금융은 대구·경북, OK저축은행은 충청에 거점을 두고 있다. '은행 과반 컨소시엄 우선'이 제도 설계로 굳어지면 경쟁의 초점은 인가에서 유통·지갑·가맹점 네트워크로 옮겨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기업이 급여를 원화 스테이블코인 형태로 지급하면 월급의 '첫 착지점'이 통장(예금)에서 지갑(잔액)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결제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이 확산되면 소비자는 카드 대신 지갑 결제를 선택할 수 있고 자영업자는 정산 주기·환불 방식·수수료 구조 등 거래 프로세스를 다시 맞춰야 할 수 있다.
다만 세금·공과금·대출 상환처럼 은행 시스템에 묶인 지출이 유지되면 지갑에 쌓인 잔액이 다시 은행으로 환류할 가능성도 있다. 근로기준법상 임금 지급 방식과 노동자 동의 절차, 원천징수·회계 처리 등 제도적 장벽도 변수로 꼽힌다.
◆ 김형중 교수 "예금 기반 흔들린다" 경고
김형중 국민대 가상자산 센터장은 링크드인 글에서 "급여가 지갑으로 들어오면 예금 규모가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급여가 단순 예금이 아니라 매달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현금 흐름'이어서 이것이 약해지면 은행의 장기 대출 계획과 자금 조달 구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봤다.
급여 계좌가 카드 결제·이체·공과금 자동납부 등 거래의 중심이 돼 왔는데 블록체인 기반 결제가 은행을 거치지 않고 직접 이뤄지면 결제 수수료 수입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스테이블코인 급여 지급은 단순 결제 방식 변화가 아니라 은행 중심 금융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라며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고 했다.
은행권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예금 기능 일부를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 금융지주 회장은 신년사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 얼마나 큰 물결이 밀려올지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고 했으며 다른 금융지주 회장 역시 "예금·대출·송금 등에서 기존 금융사의 영향력이 줄 수 있다"는 전망을 언급했다.
김형중 센터장은 "일부 은행이 자체 스테이블코인 발행이나 디지털 자산 커스터디 서비스를 시작했다"며 "단순히 돈을 보관하고 이체하는 역할을 넘어 금융 설계·투자 자문·위험 관리 같은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김 센터장은 "제도 설계가 어떤 형태로 확정되든 시장은 발행권을 넘어 유통망과 사용처를 두고 다시 경쟁할 것"이라며 "소비자가 체감하는 비용과 편의가 실제로 개선되지 않으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제도권 신상품으로만 남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결제·송금 비용이 낮아지고 정산이 매끄러워지면 이번 논쟁은 '누가 발행하느냐'에서 '누가 생활의 관문을 잡느냐'로 무게중심이 이동할 것"이라며 "결제 인프라의 판을 흔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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