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 2025 도쿄 아트북페어에 다녀오다② 취향의 목록에 이어
[문화매거진=MIA 작가] ‘그렇게 고심해서, 감동해서, 작가의 본분을 놓지 않고 싶어서 혹은 순수한 설렘에 산 책들은 다 어디 있을까.’란 질문이 문득 떠올랐을 때 곧바로 끌려온 답은 ‘도처에’였다.
책들은 나의 작은 집에 여기저기 놓여 있다. 책장에는 물론이고 방바닥에, 작업대 위에, 소품 진열대 사이에, 회사 사무실 책상 위에, 핸드백에, 보조 가방 안에. 나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물건을 제자리에 놓지 못하는 내 성향 탓을 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남모를 전략이 숨어 있다. 책장 깊숙한 곳에 꽂아 둔 책은 점점 손이 가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부터, 일부러 생활의 동선 곳곳에 책을 두기 시작한 것이다. 그랬더니 확실히 전보다 몇 번은 더 책을 펼쳐 보게 되었다. 의지를 다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그럴 때는 환경을 바꾸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교훈도 함께 얻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아트북 감상의 ‘번거로움’을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해 왔는데, 미술 시장에서는 바로 이 지점이 약점처럼 작용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얼마 전에 들었다. 아트북이 대체로 회화 작품만큼 높은 가격에 거래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감상 방식 때문이라는 것이다. 회화가 벽에 걸린 채 즉각적으로 시야에 들어오는 매체라면, 책은 의식적으로 꺼내어 펼쳐야만 비로소 볼 수 있다는 점이 가격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도 있다고 한다. 이 외에 아트북은 대부분 에디션 형태로 제작되기 때문에 복제가 가능하다는 점은 가격을 제약하는 ‘당연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설명들은 충분히 설득력 있고 이상하지 않다. 그럼에도 누군가 ‘정말 그게 타당한가’라고 재차 묻는다면 그림으로 책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긴 힘들다. 아트북에는 여러 점의 그림이 들어가고 어떤 경우에는 바인딩과 제본 과정까지 작가의 손을 거친다. 그 공임과 기술, 시간과 노동을 떠올릴수록 아트북에 제값을 매기는 다른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아트북의 가격 설정을 회화의 논리와는 다른 기준으로 생각해 보는 방식도 가능하지 않을까. 유일본이 아니고 에디션으로 여러 권이 만들어진 책이라 하더라도, 한 권 한 권에 대해 작가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값을 매긴다는 일이 과연 지나치게 순수하거나 비현실적인 바람일지, 쉽게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비슷한 고민을 그림책 작가들과도 몇 번 나눈 적 있다. 문제는 단순하다. 예컨대 펼침면을 기준으로 그림책 한 권에는 적어도 열점 이상의 그림이 들어간다. 그러나 그 그림들은 개별적인 작품이 아니라 책이라는 매체 안에 묶인 이미지로 인식되며 전혀 다른 기준으로 값이 매겨진다. 작가들은 실제로 그 원화를 작업하기 위해 몇 년의 시간을 들이는데도 말이다. 어떤 기준에서는 그게 당연하지 않냐는 반응이 돌아올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서는, 혹은 어떤 차원에서는 이 작업량에 상응하는 만큼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 같은 보상이, 말이 안 된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다행일지도 모르겠는 사실은 난 그다지 크게 반박할 생각이나 에너지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남은 건 단지 일말의 의아함일 뿐. 애써 태연해지길 선택한 것은 아니고 단지 시장 논리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다시 처음의 질문과 답으로 돌아간다. 오래, 깊이 간직하고 싶어 산 여러 책들은 내 주변 곳곳에 있다. 벽에 걸려 있지는 않지만, 삶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놓여 있다. 눈과 손이 자주 닿는 곳에, 반복되는 일상에,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아트북과 그림책의 가치는 가격보다 몇 번이고 꺼내어 펼쳐지는 순간들 속에서 조금씩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방식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감동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만큼은 방해받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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