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관세 리스크가 올해 들어 재점화되면서 모처럼 찾아온 '슈퍼 사이클(초호황)'에 찬물을 끼얹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예측불허인 트럼프식(式) 통상 전략에 대처하기 위해선 정부 간 협상이라는 정공법에만 기대지 말고 틈새를 비집는 실질적 전략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6일(현지시간)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고 싶은 모두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100% 관세를 내거나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이라고 밝히자 국내 반도체 업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러트닉 장관이 특정 국가나 기업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발언 당일 미국과 대만이 15% 관세율의 상호관세 협정에 합의했기 때문에 사실상 한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지목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한·미 통상협상에서 도출된 '타국에 비해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는다'는 반도체 관세 합의도 미국이 '국가별 합의'로 선회하면서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지난해 관세 없이 슈퍼 사이클에 올라탄 국내 반도체 업계는 올해부터 본격적인 관세 리스크 영향권에 들게 됐다. 실질적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당장은 고부가가치·첨단 공정 중심의 수출 구조 확대가 거론된다. 관세는 범용·중저가 제품에 더 큰 부담을 준다. 고대역폭메모리(HBM), DDR5 등 첨단 D램, 3나노미터(㎚) 이하 반도체 위탁 생산(파운드리) 초미세 공정은 대체가 불가능해 관세가 붙어도 미국 고객사를 상대로 '프라이싱 파워(가격 전가력)'를 발휘할 수 있다.
다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시대를 대비해 이미 대미 수출에서 첨단 반도체 비중을 높인 터라 극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엔비디아, 애플, 퀄컴 등 주요 고객사와 장기 계약을 맺거나 관세 리스크를 함께 부담하는 '리스크 공유 계약(RSA)'을 체결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공급사는 관세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고 고객사도 향후 품귀 현상에 따른 메모리값 폭등 등 업황 변동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미국 현지 시설을 생산·후공정 중심으로 구축해 전략적으로 '미국산 반도체' 자격을 획득하면서 최대한 시간을 끄는 방안도 거론된다. 삼성전자가 짓고 있는 텍사스주 파운드리 팹, SK하이닉스의 인디애나주 AI 메모리 패키징 공장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같은 전략을 통해 원천 기술 유출을 최소화하면서 4년 남은 트럼프 행정부 임기 동안 지연 전략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 경쟁을 의식해 한국 기업들에 (현지 투자 확대를) 요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너무 급하게 합의하는 것보다 줄다리기를 하며 실익을 챙기고 특히 고객사를 상대로 (관세 관련) 선제적인 약속이나 계약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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