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환율 불안 진정을 위해 가용한 수단을 하나둘씩 꺼내들었지만 외환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정부가 수급 관리부터 고강도 직접개입 카드까지 총동원해도 잠시 고개를 숙일 뿐 곧바로 저가 매수세가 밀려들며 이내 1500원을 위협하는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양상을 반복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정부 개입으로 환율이 눌릴 때가 달러를 싸게 사서 해외 투자에 나설 기회라는 냉소적인 분석마저 나온다. 결국 경제 개선이나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선진국 지수 편입 같은 근본적인 대안 마련 없이는 미국의 금리 인하나 일본 엔화 절상 등 대외 여건이 나아지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한계에 직면했다는 진단이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대규모 개입으로 일시적으로 1430원대까지 밀어냈던 환율은 새해 들어 고점을 1480원대까지 높이며 당국의 방어선을 무력화하고 있다. 다시 1500원 선을 위협하자 당국은 수출입 기업의 달러 환전을 유도하고, 미국 증시 투자를 부추기는 증권사를 압박하는 등에 나서지만 효과는 반짝에 그친 셈이다.
오히려 당국이 환율을 짓누르면 저가 매수를 위해 대기하고 있던 서학개미와 기업들이 무섭게 달러를 쓸어 담는 역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현재의 1480원대 환율은 우리나라 경제의 펀더멘털이나 대외 여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우려했다.
실제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12일까지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순매수액은 약 23억6739만 달러로 통계 집계 이후 동기 기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정부가 일시적으로 환율 값을 억누르면 시장 참가자들은 정부가 판을 깔아줬다고 평가하며 '역대급 저가 매수'를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15일 "새로운 거시건전성 규제를 도입하겠다"며 한층 강도 높은 압박에 나섰다. 기획재정부는 현재 국내에서의 환율 상승 기대 심리가 과도하다고 해석하며 과거 시행됐던 선물환 포지션 규제, 외환건전성 부담금,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제도 등의 거시건전성 조치가 가능한지 들여다보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시선은 회의적이다. 해외 투자가 시대적 흐름이자 거부할 수 없는 구조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정부가 깐깐하게 본다고 해도 강제로 막을 명분도,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장과 본격 싸움을 걸기도 어렵다는 견해도 나온다.
정부가 꺼내든 개입 카드 역시 결국 제 살 깎아먹기식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짙다. 지난달 외환보유액은 외환위기 이후 28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시장에서 한은이 환율 방어를 위해 약 40억 달러를 쏟아부은 것으로 추정한다. 계속된 개입은 오히려 외환보유고 고갈이라는 공포로 이어지며 원화 가치를 다시 위협할 수 있다.
그나마 위안거리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약달러' 유도 움직임이다. 최근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원화 약세는 한국의 견고한 경제 펀더멘털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우리 외환시장에 이례적인 경고성 메시지를 던졌다. 미국 재무장관의 직접적인 구두 개입에 환율이 10원 가까이 급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환율 하락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베선트 발언은 대미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미 재무부에 외환시장 불안이 커지면 대미 투자 이행을 제한할 수 있다는 조건에 따른 자국 우선주의 행보기 때문이다. 원화 가치가 높아지면 연간 200억 달러의 대미 투자에 대한 불안이 다시 원화값을 자극할 수 있다.
결국 전문가들은 환율 고공행진 구조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금리 인하 기조가 확실해지며 달러 가치가 하락하거나 일본이 금리를 인상해 엔저 현상이 해소되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란과 베네수엘라 및 그린란드를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의 해소 여부도 주요 변수로 꼽힌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종가 관리를 위해 낮춰놓은 환율이 되돌려지고 있다"면서 "한·미 금리 역전 장기화와 최근 유동성 증가에 1400원대 후반은 새로운 뉴노멀이 됐다"고 봤다. 그는 또 "결국 보다 장기적인 시계에서 국내 투자 매력을 높이고 성장률을 높이는 등의 거시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결국 장기적 시계의 '체질 개선'만이 답이라는 시각이다.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려 원화 자산의 투자 매력을 회복하고,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지수 편입 등을 통해 글로벌 자금이 안정적으로 머물 여건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본 문제 해결 없는 환율 방어는 결국 국가 자산 소진과 정책 여력만 갉아먹는 소모전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의 핵심 과제인 외환시장 구조 개선은 단순히 지수 산입을 넘어 시장의 기초 체력을 다지는 필수 행보로 꼽힌다. 현재의 폐쇄적이고 경직된 외환시장에 접근성을 높여 투기적 수요에 휘둘리지 않고 글로벌 장기 투자 자금이 유입되는 안정적인 방파제로 작용할 수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해외투자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각종 조치로 환율 방향성을 바꾸긴 쉽지 않다"면서 "결국 원화 가치는 우리 경제의 실력에서 결정되는 만큼 기업의 경영 체질을 개선하고, 국가 성장률을 높이는 등의 근본적인 처방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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