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최진승 기자] 국내 고미술 시장이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현대미술 시장이 수십억 원대 낙찰가를 기록하며 활기를 띠는 사이 우리 조상의 숨결이 담긴 고미술품은 ‘가짜 논란’과 ‘과도한 규제’에 묶여 대중의 외면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시장의 유통 구조를 혁신하고 낡은 법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가격 폭락과 시장 양극화… 경쟁력 잃은 우리 보물
고미술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 낙원동 일대 화랑가에서 거래되는 11~12세기 고려청자 중 일부는 점당 20~30만 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이는 현대미술품이 투자 가치를 인정받으며 수십억 원에 거래되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고미술상가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박미예 씨는 "코로나 시기에 골동품 시세가 반토막이 났다가 최근 예전 수준으로 겨우 회복했지만 여전히 녹록치 않다"라며 "매장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늘고 있지만 규제 때문에 실제 구매로 이어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고미술 시장의 침체 원인으로 ‘경제적 가치 하락’과 ‘이미지 고착화’를 꼽는다. 과거 한 집당 하나씩은 소장했던 고미술품이 주거 구조의 변화와 트렌드 변화로 밀려난 데다, 매스컴을 통해 ‘가짜’ 이슈만 부각되면서 시장 전체가 도매급으로 신뢰를 잃었다는 분석이다. 그간 정부의 지원 혜택 역시 현대미술에 대부분 쏠려 있어 고미술 시장의 자생력은 더욱 약화된 상태다.
◇ ‘해외 반출 금지’의 역설… 시장 고립과 가치 저하로 이어져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는 엄격한 ‘해외 반출 규제’다. 현행 법제도상 1945년 이전 제작된 문화유산은 원칙적으로 해외 반출이 금지돼 있다. 이는 문화유산 보호라는 명목 하에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고미술품의 유통을 막아 오히려 가치를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고미술상가에서 만난 장옥순 씨는 "6~7세기 가야토기의 경우 가치를 높이 평가받아야 하는 물건임에도 10~20만 원짜리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지난 2024년 국가유산청은 문화유산의 해외 반출 금지 기준을 '제작된 후 50년 이상'에서 '1945년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규제를 완화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냉랭하다. 업계 관계자는 제작 연도를 기준으로 무조건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국익을 위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어느 정도 가치와 효용성을 따져 선별적으로 해외 유통을 허용해야 세계적인 컬렉터들이 한국 고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고, 결과적으로 우리 문화유산의 위상이 높아진다는 논리다.
가까운 일본의 문화유산 관리 체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미술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경우 상인과 학자가 협력해 유물의 가치를 매기고 국가 매입 시에도 함께 참여하는 등 유연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낡은 제도적 기준에서 벗어나 고미술품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감정 체계 부재와 낡은 규제, 'K-헤리티지' 육성 걸림돌
공신력 있는 감정 체계의 부재도 시장 투명성을 가로막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론 중심의 학계와 실무 경험 중심의 상인이 이분화되어 대립하는 구조다. 국가 차원의 명확한 가치 평가 기준이 없다 보니 민간 감정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고, 이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2026년을 ‘K-헤리티지 세계화의 원년’으로 삼고 관련 산업을 향후 5년간 100조 원 규모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문화유산의 발굴, 보존, 글로벌 확산 등의 내용이 담겼다. AI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콘텐츠 제작과 국가유산 산업 육성법 제정 등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외형적 성장과 더불어 고미술 유통 시장의 체질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홍선호 한국전통미술융합진흥원 원장은 "이론과 현장 경험을 아우르는 전문 감정인 양성을 통해 문화재 산업의 내적 역량을 키우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면서 "문화유산의 선별적 해외 반출 허용 등 실질적인 법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만 우리 고미술이 박물관 유리 벽을 넘어 세계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뉴스컬처 최진승 newsculture@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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