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길고 길었던 의정사태는 전공의 복귀로 일단락되는 듯 보였지만, 수련 현장의 불안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논의가 다시 속도를 내는 가운데, 의료계 안팎에서는 이번 갈등이 ‘미래 인력 전망’이 아닌 이미 현실화된 ‘의사 배출·수련 공백’이라는 비용을 남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대 정원 확대 여부와 무관하게 국시–수련–전문의로 이어지는 의사 양성의 중간 파이프라인이 한 차례 단절됐다는 점에서 구조적 성격을 띤다는 평가다.
의사인력 수급 추계를 근거로 정부가 설 연휴 이전 2027학년도 의대 증원 규모를 확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의료계는 계산 방식과 정책 시점에 문제를 제기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 추계가 의사 수를 ‘단순 인원 기준’으로 산정하고 과거 의료이용 증가 추세를 그대로 연장 적용한 방식이라고 언급. 의대 정원 결정 결과에 따라 의정 갈등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논쟁 배경에는 의사 수급 전망을 둘러싼 큰 간극이 있다.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의사가 부족할 수 있다는 추계를 내놨지만, 의료계는 오히려 과잉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가 인구구조 변화와 의료 이용 증가를 기준으로 추계를 산정한 반면, 의료계는 실제 근무시간과 진료 강도를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측의 견해 차이는 좁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수치 공방과는 별개로 이미 다른 형태의 변화가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올해 의사국가시험 응시자 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상반기 치러진 90차 의사 국시 응시자는 1010명에 그쳤고, 접수 대비 취소·결시자는 200명을 넘었다. 예년에는 결시자(접수 취소·미응시자 포함)가 한 자릿수에 그치거나 많아야 60명 안팎이었지만, 올해는 이보다 세 배 이상 많은 규모의 응시 포기가 발생했다. 기존 합격률을 적용하면 상반기 합격자는 900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정부가 한시적으로 의사 국시를 두 차례 실시하기로 했지만, 연간 신규 의사 배출 규모는 2000~2200명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매년 3000명 이상 의사 면허가 배출되던 과거와 비교하면 약 3분의 2 수준이다. 정원 확대 효과가 가시화되기까지는 최소 10년 이상이 걸리지만, 인력 감소는 이미 올해부터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여파는 수련 현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공의 복귀 이후에도 상급 연차 미복귀자가 적지 않아 진료와 교육의 공백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필수의료 전공과에서는 중도 포기 사례도 잇따르고 있어 단기 인력 부족을 넘어 향후 해당 전문과의 전문의 공급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투입됐던 PA 간호사와의 업무 중복, 느슨해진 사제(師弟) 관계 역시 수련 질과 교육 연속성을 동시에 흔드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박중신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은 “전공의들이 복귀했지만 수련 현장은 여전히 미봉합 상태”라며 “유례없는 수련 공백의 후유증을 단기간에 정상화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의정사태가 교육과 수련의 연속성을 동시에 흔들었다는 현장의 평가다.
전공의 단체 역시 정원 확대 논의의 ‘속도’와 ‘시점’을 문제 삼고 있다. 한성존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우리 사회에 의사가 더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얼마나 필요한지는 과학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면서도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속도와 시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과 2년 전 총선을 앞두고 강행된 의대 증원이 교육 파행과 수련병원 마비로 이어졌던 경험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의대 교육 체계 자체는 공식 평가에서 유지 판정을 받았다. 최근 의학교육 평가인증에서 초·중대형 의대들이 모두 인증을 유지. 다만 평가는 교육과정 구성과 운영, 교수·시설 등 형식적 요건 충족 여부를 점검하는 절차로, 의정사태 이후 졸업생이 제때 국가시험을 치르고 수련으로 연계되는 과정까지를 직접 검증하는 구조는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 인력 배출 경로의 연속성은 별도 문제로 남아 있다는 해석이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갈등의 재연을 경계하는 목소리와 함께 강경 대응 가능성을 동시에 언급하고 있다.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의정사태가 재현되길 바라지 않는다”면서도 “추계의 흠결이 명백한데도 개선 없이 정책을 강행한다면 수긍하기 어렵다”고 입장을 전했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도 “파업까지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불합리한 결정 과정이 반복된다면 그런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의협은 오는 31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전국의사대표자대회를 열고 정부의 의사인력 추계와 의대 정원 논의에 대한 의료계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증원 규모와 결정 방식에 대한 의료계의 공동 입장을 정리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의료계 안팎에서는 이 회의 결과가 향후 의대 증원 논의의 수위와 방향을 가늠할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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