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임준혁 기자 | 국내 조선업계가 미국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 확대를 위한 함정정비협약(MSRA) 체결에 경쟁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등 특수선 양강뿐 아니라 방산 사업 부문이 없는 삼성중공업, SK오션플랜트 등 중형조선사까지 MSRA 취득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난 16일 HJ중공업은 미 해군으로부터 MSRA 체결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앞서 HJ중공업은 지난 5일 부산 영도조선소에서 진행된 미 해군 범죄수사국 보안전문가들의 항만보안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MSRA 체결을 위한 최종 관문을 통과하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HJ중공업은 미 해군 함정 MRO 사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됐다. 협약 유효기간은 오는 23일부터 2031년 1월 22일까지다.
MSRA는 미 해군 보급체계사령부가 민간 조선소의 수리 능력뿐 아니라 재무 건전성, 기술력, 품질 관리, 안전 관리, 보안체계 등을 종합 검증해 부여하는 자격이다. MSRA를 취득한 조선소는 5년간 미 해군의 군수지원함뿐 아니라 전투함과 호위함을 포함한 주요 함정의 MRO 사업 입찰에 공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군수지원함, 화물보급함 등 비전투함 MRO는 MSRA 라이선스를 취득하지 않아도 수행이 가능하다.
◆ 여수해양, HD현대重과 협력해 MRO 사업 추진
삼성중공업은 미국 사업 담당 부서를 중심으로 MSRA 취득 준비에 착수했다. 기본 자격 요건 증빙 서류를 확보해 빠른 시일 내 미 해군 보급체계사령부에 MSRA 취득을 신청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2017년 방산 기업으로 지정돼 2019년 옛 STX조선해양의 특수선(함정) 사업부를 인수한 SK오션플랜트도 지난해 MRO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MSRA 취득을 추진 중이다. 현재 최종 절차인 항만보안평가를 마친 상태이며 평가 결과에 따라 1분기 중 MSRA 취득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미 해군 함정 MRO 사업 진출은 선박 신조를 수행하지 않고 운항 중인 선박의 정비를 담당하는 수리조선소까지 추진하고 있다. 전남 여수에 위치한 수리조선소인 ‘여수해양’은 지난해 8월 미 해군 해상수송사령부(MSC) 소속 검사관 일행으로부터 MRO 사업 수행 가능성을 사전 점검받았다.
◆ 2029년 전세계 함정 MRO 시장 92조, 미국 20조 추산
당시 점검에는 HD현대중공업 관계자들도 동석했다. 여수해양은 HD현대중공업과의 협력을 통해 미 군함 MRO 사업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한편 국내 중대형 선박(상선)의 수리·개조 사업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취재 결과 HD현대중공업은 향후 미 해군 함정 MRO 수요 증가에 대비해 여수해양의 우수한 수리 역량과 시설을 활용하는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즉 MRO 물량을 HD현대중공업이 수주하면 여수해양에 위탁 정비(하청)를 맡기는 협력사의 개념으로 양사가 손을 맞잡았다는 설명이다.
현재 여수해양이 MSRA를 획득한 단계는 아니지만 (MSRA 취득을 위해) 계속 준비 중인 상태이며 전투함을 제외한 군수지원함에 한해 MRO가 가능한 상황이다.
◆ K-조선, 마스가 여세 몰아 日 요코스카 물량 ‘타깃’
이처럼 국내 조선업계가 미 해군 함정 MRO 시장 진출을 앞다퉈 시도하는 배경에는 시장의 성장 가능성과 전략적 가치가 동시에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모도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전 세계 해군 함정 MRO 시장 규모는 2024년 577억6000만달러(약 84조원)에서 2029년 636억2000만달러(약 92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 중 미국 시장만 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여기에 경기 변동에 관계 없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 조선사들에 매력으로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조선업계는 함정 MRO 사업이 보안·기술·품질 인증을 모두 충족해야 해 진입 장벽이 높은 시장이지만 일단 시장 진입에 성공하고 미 해군으로부터 한 번 신뢰를 확보하면 함정이 퇴역하기 전까지 장기간, 주기적인 거래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MRO는 새 선박 발주와 무관하게 운용 중인 함정이 존재하는 한 수요가 계속 발생하는 비사이클형 수익원”이라며 “국내 중형조선사들은 일회성 수주가 아닌 반복 수주가 가능해 안정적인 수익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MRO를 새로운 먹거리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 요코스카, 전투함·항모 MRO 수행...과제 산적
뿐만 아니라 미 해군 함정 MRO는 단순한 정비 사업을 넘어 조선사의 종합 역량을 검증하는 무대란 견해도 나온다. 미 해군은 MRO 과정에서 품질 관리, 납기 준수, 보안 체계, 프로젝트 관리 능력 등을 면밀히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업계에서는 MRO 실적이 향후 미국과의 대형 조선 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앞서 개별 조선사들의 ‘레벨 테스트’ 성격임과 동시에 미국 진출의 ‘성적표’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내 조선사들은 그동안 주로 일본이 가져갔던 인도·태평양 지역을 담당하는 미 7함대 소속 물량을 노리고 있다. 올해 ‘마스가(MASGA)’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한국 조선사의 기대감은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일본으로 갈 MRO 물량을 한국이 가져올 만큼 현실은 녹록지 않다는 견해도 엄연히 존재한다.
박현준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1951년 체결된 미일 안전보장조약의 일부 조항 개정과 방위력 강화 규정 추가를 위해 1960년 미일 양국이 ‘상호협력 및 안전보장조약(신미일안보조약)’을 맺은 후 지속돼 온 미일 안보협력과 SM-3 Block IIA, 극초음속 요격체 등 방산 공동개발 경험 등 오랜 기간 우호적으로 유지 중인 미일 관계를 고려할 때 현재 미 7함대 모항(母港)인 일본 요코스카에서 이뤄지는 MRO 물량을 한국이 가져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분석했다.
양종서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객원 교수도 “요코스카는 한국보다 훨씬 앞서 MRO를 수행해 왔다”며 “시기만 이른 것이 아니라 요코스카에서는 미 해군 전투함·항공모함(전투체계·전자전 시스템·핵추진 시스템 제외)의 MRO까지 수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 조선사가 일본처럼 전투함·항모에 대한 MRO를 수행하려면 미 해군의 까다롭고 엄격한 규정·지침을 적지 않게 손 봐야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Copyright ⓒ 한스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