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지 않는 정의⑮] 자유언론 투쟁, 평범한 사람이 내릴 수 있는 가장 비범한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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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지 않는 정의⑮] 자유언론 투쟁, 평범한 사람이 내릴 수 있는 가장 비범한 결단

투데이신문 2026-01-17 17:29:4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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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일단의 기자들이 있었다. 권력에 맞서다 강제 해직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와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 소속 기자·PD·아나운서. 그들은 유신 독재의 탄압 속에서도 언론 자유를 향한 외침과 진실의 기록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대가는 가혹했다. 자유언론실천선언 이후 권력에 맞선 그들에게 돌아온 건 강제 해직의 칼날이었다. 펜은 칼에 꺾였지만 그들의 자유에 대한 의지와 신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렇게 동아투위와 조선투위의 투쟁은 한국 언론사에 ‘자유’를 새긴 상징적 사건으로 남았다.

그러나 승리의 역사가 기록되는 동안, 정작 그 주역들의 삶은 잊히고 외면받았다. 그들은 그렇게, ‘흑백의 시간’ 속에 남겨졌다. 투데이신문은 기획연재 [시들지 않는 정의]를 통해 동아투위, 조선투위의 과거를 되짚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의 언론과 시민사회가 지고 있는 ‘자유의 부채(負債)’를 묻고 지연된 정의 앞에 고개 숙여 용서를 구하고자 한다. 

이번 기획은 인물의 심연까지 포착해내는 한국 사진계의 거장 서대호 작가와 함께했다. 그의 사진 속에 담긴 주름진 얼굴과 한 송이의 꽃은 야만의 시대를 견뎌낸 그들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참회의 ‘헌화’다. 투데이신문이 만난 ‘노병’들의 여전히 날 선 눈빛은 시들지 않는 정의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되묻고 있다.

동아투위 원로들의 과거와 내밀한 표정을 담아낸 흑백 프로필 사진.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부영 위원장, 김동현 부위원장, 양한수 위원, 조선투위 신홍범 위원, 김학천 위원, 이영록 위원. ⓒ서대호 작가
동아투위 원로들의 과거와 내밀한 표정을 담아낸 흑백 프로필 사진.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부영 위원장, 김동현 부위원장, 양한수 위원, 조선투위 신홍범 위원, 김학천 위원, 이영록 위원. ⓒ서대호 작가

【투데이신문 강지혜 권신영 기자】만개한 꽃처럼 환했던 젊음을 다 바치고 이제는 백발의 노인이 된 노병들을 다시 마주했다. 투데이신문은 기획연재 [시들지 않는 정의]를 통해 지난 14회에 걸쳐 동아투위·조선투위 원로들의 모습과 내면을 기록하고 가족의 증언을 통해 50여 년의 시간을 되짚어봤다. 그들이 외친 ‘자유언론’은 결코 허공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후배 언론인들에게 귀감이 됐고 ‘언론이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오늘의 우리에게 되돌려 놓았다.

비록 그들은 끝내 편집국으로 돌아가지 못했지만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겨레·뉴스타파 등 독립언론의 탄생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된 언론장악 시도, 공영방송의 독립과 공정을 둘러싼 파업의 현장마다 ‘자유언론실천선언’은 계속 소환됐다. 민주주의의 위기 국면마다 다시 환기된 이유는 분명하다. 권력과 자본이 언론을 길들이려는 욕망이 형태만 바꾼 채 되풀이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아·조선투위의 후예들, 오늘도 일선의 현장에서 펜과 마이크를 쥐고 있는 기자들은 권력 앞에서 침묵하지 않겠다는 그 다짐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을까. 동아투위 안종필 평전을 쓴 김성후 한국기자협회 선임기자, MBC 해직 PD로 파업을 이끈 뒤 해직 이후 독립언론을 설립한 이근행 뉴스타파 초대 대표, 그리고 현장 최전선에서 ‘공정방송’을 외치며 연대를 이어가고 있는 화강윤 전국언론노조 SBS본부 공정방송실천위원장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자유언론은 과거의 훈장이 아니라 지금도 매일 다시 세워야 할 원칙이며 그 대가를 치른 선배들에게 우리는 여전히 ‘빚’을 지고 있다고.

50여년 전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잊지 않는다는 것은 ‘시들지 않는 정의’를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기획 마지막 편에서는 이들의 목소리를 따라 자유언론실천선언이 오늘의 언론 현장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후배 언론인들이 선배들에게 전하는 존경과 다짐의 메시지를 담았다.

 

“그들은 상식을 가진 평범한 기자들이었다”

한국기자협회 김성후 선임기자(동아투위 안종필 평전 저자)가 본보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한국기자협회 김성후 선임기자(동아투위 안종필 평전 저자)가 본보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김성후 한국기자협회 선임기자    <동아투위 안종필 평전> 집필의 시작은 우연히 사무실에 꽂혀 있던 오래된 신문을 보면서였다.  ‘안종필 자유언론상’을 통해 선생의 이름 석 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환자복을 입고 암 투병 중이던 그의 사진을 보고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자유언론을 향한 집념을 가질 수 있었을까’, ‘도대체 이분은 어떤 분일까’ 하는 강한 끌림이 생겼다. 책은 안종필 선생이 1977년 동아투위 2대 위원장을 맡을 무렵의 이야기다. 해직된 지 2~3년이 지나 다들 생계로 흩어지고 유신 정권의 끝은 보이지 않던 암울한 시기였다.

집필하면서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장면은 안 선생이 병상에서 ‘하루만 더 살고 싶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마흔셋이었다. 어린 자녀들의 결혼식은 보고 가고 싶다는 그 평범하고도 간절한 소망을 마주할 때 가슴이 저릿했다. 또 하나는 해직 이후 기자들의 삶이다. 기자라는 자부심 하나로 살던 이들이 일터에서 쫓겨난 뒤 생계를 위해 책 외판원을 하거나 옷 장사를 하며 겪어야 했던 생활고와 좌절감. 투쟁의 기록 뒤에 가려진 ‘가장으로서의 무게’가 깊이 와닿았다.

동아투위 안종필 평전 표지.​​​​​​​[사진제공=자유언론실천재단]
동아투위 안종필 평전 표지.
[사진제공=자유언론실천재단]

‘내가 그 시대에 놓여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라고 질문한다면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제 자신과 앞날과 가족을 생각하면 그 길을 피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 동료들이 눈앞에서 쫓겨나는 상황이었다면 침묵할 수는 없었기에 제작 거부나 농성에는 참여했을 것 같다. 안종필 선생이나 투위 위원들도 특별한 투사가 아니라 상식을 가진 평범한 기자들이었기에 그런 비범한 선택을 짊어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동아·조선투위 선배들의 50여 년의 투쟁에 지금 와서 거창한 보상을 바라는 게 아니다.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다. 그리고 본인들의 청춘을 바쳤던 그 편집국을 단 한 번이라도 밟아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이다. 북한 땅도 아닌데 반세기 넘게 발도 못 붙인다는 게 말이 되는가. 동아일보 사주가 지금이라도 원로들을 초청해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것,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묻고 싶다.

50년 전 선배들이 남긴 유산은 ‘부끄럽지 않은 기사’를 쓰려는 태도다. 지금은 언론의 적들이 더 많아지고 교묘해졌다. 과거엔 기관원이라는 명확한 대상이 있었지만 지금은 자본과 광고주, 거대 플랫폼의 알고리즘, 정치적 진영 논리가 언론을 겹겹이 포위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뼈아픈 건 대중의 무관심과 불신, 그리고 혐오다. 기자가 기레기로 불리는 시대, 어쩌면 지금의 후배 기자들이 보이지 않는 손들과 싸우느라 더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안종필 선생은 “겁이 난다고 그만둘 순 없잖아. 싸워 멍들어도 용서해서 이기자”라고 말한 바 있다. 그 암울한 시대에 ‘그래도 같이 가보자’고 설득했던 그 마음, 평범한 사람이 내릴 수 있는 가장 비범한 결단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고결한 가치와 정신, 역사 속에 영원히 살아 있어”

이근행 MBC 해직PD(뉴스타파 초대 대표)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2010년 MBC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김재철 사장 퇴진 등을 요구하는 파업을 이끌다 해직됐고 이후 해직 언론인들과 함께 독립언론 ‘뉴스타파’를 설립해 초대 대표를 지냈다. ⓒ투데이신문
이근행 MBC 해직PD(뉴스타파 초대 대표)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2010년 MBC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김재철 사장 퇴진 등을 요구하는 파업을 이끌다 해직됐고 이후 해직 언론인들과 함께 독립언론 ‘뉴스타파’를 설립해 초대 대표를 지냈다. ⓒ투데이신문

이근행 MBC 해직PD·뉴스타파 초대대표 2010년, 당시 MBC 노조위원장으로서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39일간 파업을 이끌었고 그 대가로 해고됐다. 해고 기간 동안 해직 언론인들과 함께 ‘뉴스타파’라는 독립언론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시민들의 엄청난 성원으로 단기간에 성장했다. 이후 촛불 혁명과 정권 교체 후 복직해 MBC 정상화 과정을 함께했고 지금은 언론개혁정책 집단 ‘세움’에서 활동하며 언론 개혁을 위한 정책적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

사실 투쟁 전에는 선배님들의 존재를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우리가 싸움을 시작하니 백발이 성성한 선배님들이 파업 현장에 오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집회 때마다 찾아와 격려해 주셨다. 정동익, 김종철, 신홍범 선생님 같은 분들이 오셔서 당신들이 겪은 고난을 이야기하며 “우리는 쫓겨나서 돌아가지 못했지만 너희는 반드시 이겨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분들이 몸으로 보여주시는 지지와 격려 덕분에 우리는 게으르거나 나태해질 수 없었다. 

과거엔 언론인이라는 직업이 단순한 밥벌이를 넘어 강력한 소명 의식을 요구했다. 지금은 미디어 환경이 바뀌어 개인의 삶과 직업적 성취가 더 중요시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은 다르지 않다. 시대가 변해도 언론인 내면에는 불의에 맞서고 진실을 추구하고자 하는 ‘직업적 양심’이 존재한다. 평소엔 잘 드러나지 않아도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언론 노동자들은 본분을 찾아 싸우게 된다. 선배님들도 처음에는 평범한 직장인이었겠지만 최소한의 양심과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에 동의할 수 없어서 버티다 보니 50년의 투쟁이 된 것이다. 저 역시 불의한 상황을 방관하며 사는 삶에는 의미를 느끼지 못했을 거다. 자기 직업에 충실한 것, 그것이 곧 투쟁의 시작이다. 개인은 나약하지만 뜻을 함께하는 동지(同志)가 있다면 어떤 불의한 상황이 닥쳐도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다.

 2017년 언론장악 국정원 문건 피해자 보고대회에<br>참석한 (왼쪽에서 다섯번째) 이근행 MBC 해직PD.<br>[사진제공=뉴시스]
 2017년 언론장악 국정원 문건 피해자 보고대회에
참석한 (왼쪽에서 다섯번째) 이근행 MBC 해직PD.
[사진제공=뉴시스]

선배님들을 쓰러지지 않게 해주었던 힘은 결국 국민들의 성원이었다. 뉴스타파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배님들의 투쟁이 역사적 맥락 속에 있었기에 시민들 또한 그 뜻을 이어 저희를 지지해 줬다고 본다. 선배님들은 언론을 넘어 한국 사회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전선에 계셨고 그런 흐름이 있었기에 뉴스타파 같은 독립언론도 탄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싸움이었다. 진짜 고통은 싸움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간 뒤에 찾아왔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독감이 밀려왔다. 불면의 밤이 이어졌고 거실 어둠 속에 앉아 창밖이 밝아올 때까지 뜬눈으로 지새운 날도 많았다. 무엇보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선배님들 역시 늘 “가족에게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미안함은 가장을 일터에서 내쫓은 가해자들이 느껴야 할 감정이다. 

선배님들의 삶은 결코 실패하거나 잊힌 삶이 아니다. 세속적인 부와 권력은 죽음과 함께 사라지지만 선배님들이 지켜낸 고결한 가치와 정신은 역사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선배님들은 딱 한 번뿐인 삶을 너무도 잘 사셨기 때문에 영원히 사시는 거다. 후배들, 그리고 다음 세대는 그 흔적을 끊임없이 읽어내고 기억할 것이다. 부디 회한보다는 긍지를 가지셨으면 한다. 

역사는 진보한다고 믿지만 불행하게도 권력의 언론 장악 시도는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그래서 희생 또한 불가피할지 모른다. 하지만 동아·조선투위 선배님들의 50년 투쟁이 역사의 자양분이 되었듯 우리의 싸움도 그럴 것이다. 동아투위 선배님들은 자유언론실천선언 50주년을 맞아 “이제 역사에 맡기겠다”며 한 발 물러선 듯한 태도를 보였지만 국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이분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그 희생에 합당한 책임과 보상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의롭게 살아도 된다’는 증거가 남는다. 그것이 반복되는 비극의 고리를 끊고 건강한 언론 환경을 만드는 길이다.

 

“ 역사의 반복 앞에서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유일한 길”

전국언론노조 SBS본부 화강윤 공정방송실천위원장이 서울 양천구 SBS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자유언론실천선언’ 문구가 적힌 족자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전국언론노조 SBS본부 화강윤 공정방송실천위원장이 서울 양천구 SBS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자유언론실천선언’ 문구가 적힌 족자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화강윤 전국언론노조 SBS본부 공정방송실천위원장 동아·조선투위 선배님들의 분투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자유로운 언론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권력이 언론을 억누르고 통제하려 한 욕망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게 현실이다.

과거에는 정치 권력이 언론인의 ‘밥줄’을 끊는 방식으로 굴복을 강요했다면 지금은 대기업이 광고를 빌미로 재갈을 물리는 등 그 양상이 다르지 않다. 수법은 더욱 정교해졌다. 권력이나 자본에 불리한 보도가 나오면 기자 개인을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제기해 압박하는 방식이 늘어나고 있고 이는 언론 자유를 위축시키는 하나의 통제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다. 권력은 본능적으로 여론을 통제하고 싶어 한다. 그 과정에서 언론은 도구로 활용되거나 타깃이 되는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여기에 미디어 산업의 전반적 위축과 무한 경쟁, 경영 악화까지 겹치면서 권력과 자본을 견제하기는 갈수록 어려운 환경이 됐다. 그렇기에 중앙정보부가 활개치던 시절 선배님들이 겪었던 수난과 투쟁을 오늘의 현실 속에서 다시 떠올리게 된다.

선배님들이 가졌던 고민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기에 우리 역시 그만큼의 치열함으로 싸워야 한다는 필요성을 매일 되새긴다. 50여 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이 싸움은 끝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선배들의 다짐을 기억하고 이어가는 일이 중요하다. 스스로 사명감을 잃지 않기 위해 또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싸운다. 당장의 광고 수익이나 사익을 위해 권력에 영합한다면 결국 언론으로서의 존재 가치는 사라진다. 언론이 권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생존하는 유일한 길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해 9월 3일<br>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br>인근에서 언론자유 수비대 선포식을 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2024년 9월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인근에서 언론자유 수비대 선포식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또한 동아·조선투위 선배들은 당시 싸우지 않고서는 더 이상 기자로 살아갈 수 없다는 절박함 속에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대’가 있었다. 같은 마음으로 싸우는 동료들이 있었고 시민들의 지지가 있었다. 70년대 동아투위 현장에 시민들이 없었다면 언론인들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시민의 힘은 결국 언론을 지탱하는 가장 큰 버팀목이다. 최근 계엄 사태 당시 시민들이 국회로 달려가고 SNS를 통해 상황을 알리며 언론을 지켜냈던 것처럼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공론장에 참여할 때 언론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강 작가의 “죽은 자가 산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선배님들의 과거가 지금의 우리를 끌고 가고 있다. 우리는 선배들이 쌓아 올린 역사와 경험 위에 돌 하나를 더 얹는다는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다. 갈 길이 멀다고 절망하거나 멈추는 순간, 모든 것은 그대로 끝난다. 비록 50년 전 선배들이 전원 복직이라는 꿈을 이루진 못했을지라도 그들의 싸움이 있었기에 87년 체제와 지금의 대한민국이 가능했다. 우리는 분명히 선배들의 역사에 빚을 지고 있고 지금도 배우고 있다. 선배들의 싸움은 과거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가 그 정신에 기대어 현재를 살아가고 또 하나의 돌을 쌓아 민주주의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선배님들의 싸움은 결코 헛되지 않았고 그 효용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지난 12월 17일 서울시 중구 동아투위 사무실에서 자유언론을 위해 투쟁한 동아투위 위원들이 꽃을 나눠들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조선투위 이기중 위원, 신홍범, 성한표 위원. 동아투위 임부섭 위원, 윤석봉 위원, 김동현 부위원장, 이명순 위원, 양한수 위원, 이종대 위원, 김학천 위원, 허육 위원, 정연주 위원, 이영록 위원, 박지동 위원, 이부영 위원장. 언론계 원로들이 손에 든 분홍색 카네이션에는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투데이신문 
지난 12월 17일 서울시 중구 동아투위 사무실에서 자유언론을 위해 투쟁한 동아투위 위원들이 꽃을 나눠들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조선투위 이기중 위원, 신홍범, 성한표 위원. 동아투위 임부섭 위원, 윤석봉 위원, 김동현 부위원장, 이명순 위원, 양한수 위원, 이종대 위원, 김학천 위원, 허육 위원, 정연주 위원, 이영록 위원, 박지동 위원, 이부영 위원장. 언론계 원로들이 손에 든 분홍색 카네이션에는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투데이신문 

동아·조선투위의 후예들의 고백처럼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결코 갚을 수 없는 무한한 빚을 지고 있다. 언론의 자유는 처음부터 모두에게 주어진 권리가 아닌 누군가의 삶 전체로 지불된 것이었다. 그들이 온몸과 신념으로 폭압의 시대를 뚫고 지나온 덕분에 우리는 그들이 닦아놓은 토대 위에서 비로소 자유를 호흡한다. 이 빚을 잊지 않는 것, 그리고 같은 희생을 되풀이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남은 우리의 몫이다.

속절없이 5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사이 만개한 꽃처럼 환했던 젊음을 바친 이들은 어느새 백발이 됐다. 대부분 팔순을 넘겼고 병마와 노환은 ‘투사(鬪士)’라는 이름표를 단 이들에게도 예외 없이 찾아왔다. 동아투위 위원 113명 중 43명이, 조선투위 위원 32명 중 16명이 이미 유명을 달리했다. 이제 남은 생존자는 동아투위 70명, 조선투위 16명뿐이다. 역사의 산증인들이 우리 곁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러나 기억과 다짐이 이어지는 한, 멈춘 듯 보였던 정의의 시계바늘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또한, 정의의 꽃도 시들지 않을 것이다.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 실천을 선언한 장소를 알리는 표지석이 서울 중구 동아일보 앞 인도에 설치돼 있다. ⓒ투데이신문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 실천을 선언한 장소를 알리는 표지석이 서울 중구 동아일보 앞 인도에 설치돼 있다.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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