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중학생 사망 사건…1심에서 계부 징역 22년 받고 항소
항소심에서 계부 자백 번복…'피해자의 친형'을 진범 지목
계부와 친형의 사건 당일 기억 상반…이르면 2월 초 선고
(전주=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그날 누가 어린 중학생의 목숨을 빼앗았을까?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인 2025년 1월 31일 전북 익산시의 한 주택에서 중학생인 A군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이때 집에 있었던 사람은 계부와 A군의 친형 단 2명이었다.
계부는 쓰러진 의붓아들을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갔으나 A군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짧은 생을 마감했다. 작은 몸 곳곳에서는 심하게 구타당한 듯 멍 자국이 발견됐다.
경찰은 곧장 계부와 형을 추궁했고 이 둘은 모두 "내가 때렸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하루 만에 형은 "나는 때리지 않았다"고 말을 바꿔 계부만 1심 법정에서 징역 22년을 선고받았다.
이대로 끝나는 듯했던 사건은 항소심 재판에서 처음 나온 계부의 말 한마디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섰다. 계부가 돌연 "큰아들이 진범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 엇갈린 진술…그날의 진실은?
항소심 법정에서 나온 계부와 형의 진술을 종합해보면 A군이 쓰러진 시간은 사건 당일인 2025년 1월 31일 오후 6∼7시 무렵이다.
A군이 쓰러진 경위에 대한 진술은 상반되는데, 계부는 "그날 담배를 피우고 집에 올라와 보니 불이 꺼진 방 안에서 첫째는 씩씩대며 서 있었고, 둘째는 몸을 웅크린 채 쓰러져 있었다. 형이 동생을 때렸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반면 고등학생인 A군의 형은 "아빠가 동생을 여러 차례 밟고 나서 나한테도 동생을 밟으라고 시켜서 그렇게 했다. 10번 정도 동생을 밟은 것 같다"라고 매우 다른 말을 했다.
쓰러진 A군은 계부에게 업혀 때마침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친모와 함께 병원으로 갔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의붓아들이 숨질 무렵 계부는 병원을 찾아온 경찰에게 긴급 체포된다.
동생이 경찰에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은 계부의 친형이자 A군의 큰아버지는 사건 장소인 익산시 주택을 찾아왔다. 집에서 또 다른 어린 동생을 돌보고 있던 A군의 형은 이때 큰아버지에게 "아빠는 때리지 말라고 했는데…제가 (A군을) 때렸다"라고 털어놨다.
계부의 친형은 이때 가족 간의 대화를 녹음한 이유로 "조카의 말을 듣다 보니까 무언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 도중에 혹시 몰라서 휴대전화 녹음 버튼을 눌렀다"고 밝혔다.
사건 당일 큰아버지와 조카의 이 대화는 항소심 법정에서 재생됐지만, A군의 형은 "아빠가 시켜서 밟았다"라는 진술을 바꾸지 않았다.
◇ 계부는 왜 진술을 바꿨나?
계부는 사건 당일 경찰서에서 형사들이 묻는 말에 제대로 답하지 않고 계속 흐느끼기만 했다고 한다. 이후 조금 진정되고 나서는 "제가 아들의 머리를 때렸다"라고 털어놨다.
같은 날 A군의 형은 계부와 분리된 상태로 받은 경찰 조사에서 "동생을 10번 정도 밟았다"라며 이전과 마찬가지로 범행을 자백했다.
이후 형사들은 A군의 머리가 아닌 몸에 멍 자국이 집중된 점 등을 근거로 계부에게 "진짜 당신이 아들을 죽였느냐"고 재차 물었는데, 이때도 계부는 범행을 인정하면서도 울먹였다.
반면 A군의 형은 이후 조사에서는 "나는 때리지 않았다"라고 진술을 바꿨고, 계부는 모두 7차례에 걸친 경찰과 검찰의 조사에서 범행을 자백했다.
당초 경찰은 '아동학대 치사' 혐의로 사건을 송치했지만, 검찰은 이보다 무거운 '아동학대 살해' 혐의를 적용해 계부를 법정에 세웠다.
아동학대 치사와 살해 혐의는 고의성 여부로 구분되는데 '아동이 죽을 수 있다'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학대 행위를 반복했다면 살해, 그렇지 않으면 치사 혐의를 적용한다.
일반적으로 치사죄보다는 살해죄가 훨씬 무겁게 처벌되기 때문에 계부는 지난해 8월 1심에서 징역 22년을 받았다.
A군의 친모는 남편에 대한 선처를 바란다는 탄원서와 처벌불원서를 제출했으나 재판부의 판단은 중형 선고였다.
계부는 사건 당일 경찰에 체포되기 전에 A군의 친모이자 자기 아내에게 "내가 다 떠안을 테니, 첫째랑 셋째를 잘 부탁한다"라며 휴대전화와 차 키를 건넸다고 법정에서 말했다.
계부는 항소심에 와서야 말을 바꾼 이유로 "첫째를 대신해서 제가 처벌받는 게 가정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1심 선고 이후 아내와 연락이 닿지 않았고…이제 돌아갈 가정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진실을 덮는 게 (숨진) 둘째에게 못 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A군의 친모는 남편이 병원에서 했던 말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자기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법정에 선 남편에게 처벌불원서와 탄원서를 써준 이유에 대해서는 "그땐 제정신이 아니었다"라고 했다.
◇ 둘만 아는 진실…재판부의 판단은?
이 사건에서 진실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A군이 쓰러질 당시 바로 옆에 있던 계부와 형 뿐이다.
이 둘의 증언은 항소심에서 명확히 갈렸기 때문에 어느 쪽의 진술에 더 신빙성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게 재판부의 과제다.
물론 사건 당일 큰아버지와 조카가 나눈 대화 녹음, 과거 아동학대 전력이 있는 계부의 강압적인 훈육 방식, 피해자 친모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 사건 관계인의 증언 태도 등도 재판부의 판단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공소장 변경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검찰은 항소심 재판부가 아동학대 살해의 고의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추가하는 예비적 공소사실로 아동학대 치사죄를 넣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항소심 법정에서 새로운 증거와 증언이 나온 이상 1심 때와는 다른 판단이 나올 수 있다는 법조계 견해도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17일 "재판부가 계부와 친형 중 한쪽의 진술만을 신빙성 있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니면 둘 다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며 "둘의 증언이 상반되기 때문에 둘 다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계부의 증언에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면 아동학대 살해 혐의는 인정되기 어려울 것 같다"며 "이와 반대 상황이라면 1심에서는 공소사실을 인정했던 피고인이 항소심에서는 부인하는 게 되므로 범행을 진지하게 반성하지 않는다고 봐서 재판부가 더 무거운 처벌을 내릴 수도 있다"고 전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오는 19일 이 사건에 대한 결심 공판을 열고 변론을 매듭짓기로 했다. 검찰은 앞선 1심에서는 계부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었다.
다음 달 법관 정기인사가 예정돼 있어 항소심 재판부는 선고 공판을 최대한 앞당겨 2월 초나 중순에 이 사건의 판단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jay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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