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존재를 향한 자각
지난 일요일, 눈에 들어간 작은 나무 조각 때문에 병원 문이 열릴 때까지 누워 지내야 했다. 한쪽 눈의 불편암으로 인해 일상의 모든 활동이 제한되는 시간을 보내며 새삼 깨달았다. 필자는 그동안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특권을 당연하게 여겨온 '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 2024)였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된 질서 속에서 장애인을 '부담을 주는 존재'로 치부하기 쉽듯, 우리는 때때로 '선주민' 중심으로 짜인 세상의 틀 안에서만 이주민을 바라보곤 한다. 우리 곁에서 함께 일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마치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대하며, 우리 중심의 질서에 적응하는 것만을 당연시해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안팎을 아우르는 1000만의 상상력
통계청은 지난해 말 최초로 이주배경인구 통계를 발표하며, 그 수가 2024년 11월 기준 약 272만 명(총인구의 5.2%)에 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숫자는 등록 외국인, 귀화자, 이민자 2세만을 집계한 기록이다. 여기에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약 40만 명의 미등록 노동자, 56만 명의 단기체류 외국인, 그리고 우리 사회와 긴밀히 연결된 약 700만 명의 재외동포(재외국민, 외국국적동포)를 합산하면, 우리 사회와 관계 맺은 인구는 약 1,000만 명에 육박한다. 이는 대한민국 총인구의 5분의1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이 거대한 숫자를 공동체의 일원인 '이주배경인구'로 상상해 본다면 어떨까? 그것은 약 700만 명의 재외동포들 역시 각자의 거주지에서 우리 곁의 이주민들과 닮은 일상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타국에서 이민 행정 절차에 마음을 졸이거나 사회적 편견을 견디는 동포들의 삶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주민들의 현실과 궤를 같이한다. 이처럼 '나가는 이주'와 '들어오는 이민'을 동시에 바라보는 '틀 너머의 상상'을 통해, 우리는 국경이라는 칸막이를 넘어 삶을 지탱하려 분투하는 모든 이의 고충을 보편적인 인간의 언어로 이해할 수 있다.
상호의존적 관계: 돌봄 제공자의 취약성을 직시하다
이 1,000만 명의 사람들은 먹거리를 생산하고 건물을 지으며, 특히 누군가의 부모와 아이를 돌보는 우리 사회의 실질적인 지지대이다. 특히 1980년대 후반 조선족 여성들부터 2024년 이후 필리핀 노동자들까지, 비공식 및 공식 노동자로, 이들은 한국 사회의 돌봄을 묵묵히 담당해 왔다. 하지만 돌봄이 노동자-수혜자-고용주가 얽힌 '상호의존적 관계'라는 사실은 종종 간과된다. 돌봄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관계 속에서 이뤄지며, 이들 중 어느 하나라도 무너지면 돌봄의 체계는 유지될 수 없다. 돌봄을 제공하는 이주민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은, 이주민 개인의 적응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재생산 체계를 더욱 견고하게 지키는 일과 직결된다.
막힌 순환과 예견된 죽음들
그러나 현실의 선순환 체계는 바퀴는 곳곳에서 차갑게 멈춰 서 있다. 2024년 6월 아리셀 참사 사망자 23명 중 18명(78%)이 중국 동포를 포함한 이주 노동자였으며, 이들의 사고재해율(2020년 0.87%)은 전체 노동자(0.49%)의 약 2배에 달한다. 지난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생을 마감한 네팔 청년, 폭염 속 건설 현장에서 숨진 베트남 청년, 그리고 강압 단속 과정에서 사망한 25세 베트남 청년 뚜안까지, 이들의 죽음은 대개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지곤 한다. 자신과 가족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떠나온 이들의 소중한 생명이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은, 생로병사의 순환이 원활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드러낸다.
혐오를 넘어서는 환대의 힘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서 나타나는 혐오 정서는 계급적 분할이 인종적 분할로 전이되는 위험한 징후를 보여준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은 『랭스로 되돌아가다』(2021)에서, 과거 노동자 계층을 대변하던 정치 세력이 계급적 언어를 폐기하고 사회적 고통에 침묵할 때, 그 공백을 인종적 분할이 채우게 된 과정을 분석했다. 즉, 자신의 처지를 설명할 '계급적 언어'를 잃어버린 이들이 그 좌절감을 이주민이라는 외부 대상을 향한 적대감으로 표출하며 극우적 성향으로 선회했다는 것이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명동, 대림동, 안산 등지에서 확산된 혐중 시위는 이러한 사회적 분열의 위기감이 우리 사회에서도 현실화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하지만 희망은 현장에 있었다. 2025년 9월, 대림동의 중국동포 단체, 지역 주민, 교사, 노동조합의 공동기자회견에서, 대림동 상인회, 주민, 교사들은 중국동포 이웃들은 "우리 지역사회의 소중한 구성원"임을 천명했다. 한 재직 교사는 아이들이 "다름에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낯선 이웃을 환대하는 것이 미래의 나를 그리고 우리를 환대하는 것"임을 배워가고 있다고 전했다. 선주민이 일방적으로 적응을 요구하기보다 자신의 공간을 내어주고 상호 존중을 실천하는 이러한 작은 환대와 일상적 관계를 통한 변화의 경험의 공유야말로, 혐오의 언어를 이기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
이주배경인구 1000만 명에 대한 상상: 함께 만드는 선순환
뉴욕 시장 조란 맘다니는 취임 연설에서, "누군가에게는 '난데없는 곳'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다 ( ⋯ ) '아무데도 아닌 곳'이나 '아무도 아닌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뉴욕이 있고, 뉴욕 시민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대림동과 안산은 '난데없는 곳'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며, 1,000만 명의 이주배경인구는 '아무도 아닌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사회를 재생산하는 동료 시민이다.
이제는 이주민에게 우리 사회에 적응하라고만 말하기보다, 선주민 중심의 사회적 지형을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6조 2항이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해 외국인의 지위를 보장하듯, 선주민과 이주민 모두가 생애주기의 변화를 서로 예측하고 돌볼 수 있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선순환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선주민 중심의 설계와 특권을 성찰하며, 이주민들이 우리 사회의 온전한 주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는 실천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 실천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동력은 바로 우리 공동체의 범위를 확장하여 바라보는 '이주배경인구 1,000만 명에 대한 상상'에서 나올 수 있다. 이 상상이 현실의 변화로 이어질 때, 비로소 선주민, 이주민, 모든 이의 존엄한 삶의 재생산은 멈춤 없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김지혜. (2024). <선량한 차별주의자>. 파주: 창비.
에리봉, 디디에 저, 이상길 역. (2021). <랭스로 되돌아가다>. 서울: 문학과지성사. (원제: Retour à Reims,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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