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관세 부과 계획의 윤곽을 드러내면서 한국도 다시 협상 테이블로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미국이 대만과의 무역 합의를 통해 반도체 관세 면제 원칙을 구체화한 만큼, 한국이 경쟁국인 대만에 준하는 우대 조건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향후 한미 통상 협상의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반도체 전반에 품목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다만 관세 수준과 면제 범위는 주요 반도체 생산국 및 기업들과의 협상을 통해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 내 반도체 생산과 공급망 투자에 나서는 기업에는 ‘관세 상쇄 프로그램’을 적용해 관세를 면제하거나 우대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같은 기조는 15일(현지 시각) 발표된 미국과 대만의 무역 합의를 통해 구체화됐다. 미국은 대만 반도체 기업이 미국에 신규 생산시설을 건설할 경우, 건설 기간 해당 생산능력의 2.5배까지 무관세 수입을 허용, 시설 완공 이후에도 신규 생산능력의 1.5배까지 관세를 면제하기로 했다.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 대해서도 우대 관세를 적용한다는 조건이다. 사실상 대미 투자 규모와 반도체 관세 혜택을 직접 연동한 셈이다.
이 조건은 향후 한미 협상의 기준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지난해 미국과 무역 협상을 타결했지만, 당시 미국의 반도체 관세 정책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여서 세부 조건을 논의하지 못했다. 대신 ‘반도체 교역 규모가 한국 이상인 국가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적용한다’는 원칙적 합의에 그쳤다. 이는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의미하지만, 구체적 방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문제는 대미 투자 구조의 차이다. 미국은 대만이 반도체 분야에만 2500억달러를 투자하고, 대만 정부가 동일한 규모의 신용보증을 제공한다고 전했다. 반면 한국은 총 3500억달러 투자 약속 가운데 조선업 전용 1500억달러를 제외한 2000억달러가 정부 차원의 포괄적 투자로, 반도체에 한정되지 않는다.
민간 차원에서는 삼성전자가 텍사스 테일러 공장 투자를 기존 170억달러에서 370억달러로 확대했고,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에 약 39억달러 규모의 AI 메모리 패키징 공장 투자를 발표했지만, 규모와 구조 면에서 대만과는 차이가 있다.
여기에 미국의 관세 정책이 아직 1단계에 불과하다는 점도 불확실성을 키운다. 백악관 관계자는 15일 “현재 발표된 반도체 관세는 1단계 조치에 불과하며, 협상 경과에 따라 더 광범위한 관세 발표가 있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수입 반도체에 최대 100% 관세 가능성을 언급한 점도 다시 거론됐다.
미국 상무부 역시 관세 우대의 전제 조건으로 ‘미국이 만족할 수준의 투자’를 명확히 요구하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은 “상무부가 투자 계획을 승인해야 관세 면제 혜택이 적용된다”고 설명, 관세 협상의 주도권이 미국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관세 부과 시점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지만, 미국이 대만과 합의한 조건이 사실상 기준선이 된 만큼 한국 역시 반도체 투자 규모와 범위를 둘러싼 전략적 선택을 요구받게 될 전망이다. 향후 한미 협상은 단순한 관세율 논의를 넘어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한국 기업이 어느 수준으로 참여할 것인지가 핵심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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