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금융의 간극①] 위험의 가격 ‘금리’, 선의의 제도와 충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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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금융의 간극①] 위험의 가격 ‘금리’, 선의의 제도와 충돌하다

투데이신문 2026-01-16 13:27:11 신고

3줄요약

포용금융은 연체로 흔들린 개인이 경제생활의 궤도로 다시 올라설 수 있도록 설계된 제도다. 금융의 문턱을 낮추려는 선의로 출발했지만, 성실상환자의 허탈감과 신용도별 금리 역전 같은 부작용도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고 연체를 단순히 ‘모럴 해저드’로만 볼 수도 없다. 개인의 상환 실패에는 경기, 소득 구조, 금융 접근성 등 다양한 요인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복잡한 맥락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채, 단순한 메시지로만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법무법인의 광고는 “빚 갚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문구로 제도를 축약하고, 온라인에서는 채무조정 사례가 마치 ‘리스크 없는 성공담’처럼 회자된다. 정책 홍보조차 제도의 설계와 한계를 설명하기보다는 결과만 부각하면서 포용금융의 본래 취지가 흐려지고 있다. 이번 시리즈는 제도와 시장, 그리고 정보 환경이 어긋나는 지점에서 지금의 포용금융이 어떤 언어로 이해되고 있는지를 차분히 짚어본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금리는 단순한 ‘이자율’이 아니다. 금융이 위험을 어떻게 해석하고, 그 위험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배분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직접적인 언어에 가깝다. 최근 포용금융을 둘러싼 논의 역시 결국 “금리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이 질문에 대한 최소한의 공통 이해가 없다면, 포용금융의 성과와 부작용을 동시에 설명하기 어렵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수년 사이 정책서민금융과 시중은행 대출 시장의 금리 구조는 뚜렷하게 달라졌다. 금융당국은 고금리 장기화 속에서 취약차주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로 햇살론, 새희망홀씨, 정책보증부 대출 등 정책금융상품의 금리를 단계적으로 낮추고 공급 규모를 크게 늘려왔다.

반면 시중은행의 일반 신용대출 금리는 기준금리 상승과 리스크 관리 강화가 맞물리면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신용도가 높은 차주라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높거나 경기 불확실성이 커질 때 가산금리가 좀처럼 낮아지지 않는 구조가 굳어졌다. ‘고신용-저금리, 저신용-고금리’라는 전통적 구분이 가격 신호 차원에서 점차 흐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구간에서는 정책금융을 이용하는 저신용자의 금리가 시중은행의 고신용자보다 낮은 ‘금리 역전’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체감 금리의 차이를 넘어, 금융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위험은 가격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원칙과 정책 목표가 충돌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신호다. 금리가 전달하던 정보의 신뢰도가 흐려지면서 성실상환자들 사이에서는 “위험이 낮은 내가 왜 더 높은 금리를 내야 하느냐”는 불만이 반복적으로 제기된다.

“가산금리는 ‘벌’이 아니라 일종의 ‘보험료’”

대출 금리는 기본적으로 기준금리와 가산금리로 구성된다. 기준금리는 자금조달 비용과 시장 환경을 반영하고, 가산금리는 차주의 신용도·상환능력·연체 가능성을 반영하는 위험 프리미엄이다. 은행이 소득 수준, 직업 안정성, 기존 대출 규모, 신용점수, 상환 이력을 면밀히 평가하는 이유는 결국 상환 실패 확률을 계량화하기 위해서다.

신용도가 높고 소득이 안정된 차주는 연체 위험이 낮다고 판단돼 낮은 가산금리를 적용받는다. 반대로 변동 소득자나 다중채무자는 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더 높은 가산금리를 부담한다. 이는 차주의 도덕성을 판단하거나 처벌하기 위한 과정이라기보다, 위험을 가격으로 환산해 거래를 가능하게 만드는 금융의 기본 작동 원리다.

홍익대 경제학부 전성인 교수는 가산금리를 보험의 원리에 비유한다. 그는 “가산금리는 연체 가능성이라는 사고 위험에 대비해 미리 받는 ‘보험료’와 같다”며 “은행은 차주가 상환하지 못할 가능성을 인식한 상태에서 대출을 집행했고, 그 대가를 이미 금리로 받은 셈”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관점에서 고금리는 ‘불성실함에 대한 벌’이라기보다, 계약 단계에서 합의된 위험 비용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금융은 애초에 모든 차주가 상환할 것이라는 전제를 두지 않는다. 일정 비율의 상환 실패 가능성을 금리에 포함시키고, 그 가격을 받아들이는 차주와 거래하는 것이 금융의 본질이다. 가산금리는 바로 그 위험을 수치화한 결과물이다.

연체 그 이후…‘위험의 비용’에서 ‘도덕의 언어’로

문제는 이러한 가격 논리가 연체 이후 단계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되느냐다. 대출 계약 당시에는 위험을 전제로 거래가 성립하지만, 실제로 상환이 지연되면 연체는 곧바로 ‘계약 위반’이나 ‘도덕적 문제’로 재해석되는 일이 적지 않다.

회계와 규제의 언어로 보면, 일정 기간 이상 연체가 발생한 대출은 곧바로 ‘부실 위험 자산’으로 분류되고 충당금 적립, 채권 매각, 추심 등 별도의 관리 절차가 가동된다. 이 과정에서 연체는 당초 금리에 반영됐던 ‘통계적 위험’이 아니라, 규범적 의미의 ‘문제 채권’으로 다뤄지며 금융의 언어가 위험 계산에서 도덕 평가로 옮겨 붙게 된다. 가격으로 위험을 처리하던 장치가, 연체 순간부터는 도덕과 규범의 언어를 덧입는 셈이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직장인 A씨는 몇 년 전 은행 창구에서 “신용등급이 낮아 가산금리가 높게 붙는다”는 설명을 들으며 연 9%대 신용대출을 받았다. 그는 “소득이 일정치 않고 경력이 길지 않다는 점이 위험 요인이라는 설명을 들었고, 그래서 금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구조는 납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기 둔화로 소득이 줄면서 일시적인 연체가 발생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은행의 관심은 과거에 위험을 어떻게 가격에 반영했는지보다는, ‘연체자’라는 현재의 상태를 관리하는 데로 옮겨갔다. A씨는 “애초 높은 금리를 감수한 건 그만큼의 위험비용을 미리 내는 것이라고 이해했는데, 막상 연체가 생기니 모든 것이 도덕성과 태도의 문제로만 이야기되는 느낌이었다”며 “계약 당시의 설명과 사후 대응 사이에 적지 않은 괴리가 있다”고 토로했다.

전 교수는 이 지점을 금융 논리의 긴장으로 본다. 그는 “보험에 가입해 보험료를 냈다면 사고가 나더라도 보장을 청구하는 것이 계약의 일부인 것처럼, 가산금리를 통해 위험비용을 이미 지불한 차주에게 연체를 전적으로 도덕 문제로 돌리는 것은 금융이 스스로 세운 논리와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위험을 가격으로 처리한다고 말해온 시스템이 실제 위험이 현실화되는 순간, 그 위험을 다시 윤리와 규범의 언어로만 재단하는 모순이 드러난다는 설명이다.

선의에서 비롯된 포용금융…흐려진 가격 신호

포용금융은 본래 금융 접근성을 넓히고 취약차주의 부담을 덜기 위한 정책이다. 고금리·불법 사금융에 내몰린 차주를 제도권으로 다시 끌어올린다는 취지에는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돼 있다. 최근 정부가 ‘포용금융 대전환’을 내세우며 정책 서민금융 금리를 추가로 인하하고 채무조정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금리가 위험을 전달하는 ‘가격 신호’라는 점이 간과되면, 연체나 지원 정책을 둘러싼 논의가 쉽게 감정적 갈등이나 도덕 논쟁으로 흘러갈 수 있다. 저신용·연체 차주에 대한 구제 조치가 늘어날수록 성실상환자는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고, 저신용자에 대한 낙인은 또 다른 방식으로 심화되는 이중의 현상이 관찰된다.

‘누구를 얼마나, 어떤 조건으로 도울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금리만 인위적으로 조정될 경우, 금융 질서 전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위험도 커진다.​

세종대 경영학부 김대종 교수는 “금리는 위험을 비용으로 환산한 결과물인데, 정책 목표에 따라 이를 반복적으로 인위 조정할 경우 가격 신호가 왜곡될 수 있다”며 “포용금융에 대한 논쟁이 반복되는 이유는 금리의 역할과 한계에 대한 공통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금융권 연구원도 “취약계층 지원과 금융시스템 안정성은 본질적으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관계”라며 “다만 금리가 어떤 부분까지 정책의 도구가 될 수 있고 어디서부터는 시장의 언어를 존중해야 하는지에 대한 경계가 불명확하면, 제도 논의가 계속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포용금융의 출발점은 정책의 선의나 차주의 도덕성 이전에, 금리라는 언어가 지닌 의미를 다시 이해하는 데 있다. 위험의 가격이라는 기본 원칙을 무시한 채 정책 목표를 앞세우면, 시장은 왜곡되고 선의는 갈등으로 전환된다. 지금 금융은 위험의 가격과 윤리의 언어 사이에서, 스스로 세운 원칙을 어떤 방식으로 지킬 것인지 묻는 기로에 서 있다.​

다음 편에서는 연체 이후 단계에서 포용금융 제도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도의 설계와 현장 체감 사이에 어떤 간극이 존재하는지 현장의 목소리와 함께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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