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S/S ‘Stars or Thorns’ 컬렉션.
당신과 브랜드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성민입니다. 런던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에서 석사 학위를 마치며 졸업 작품이 판매 된 것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모양을 갖췄어요. 제이든 초를 정의하며 제가 생각한 3가지 키워드, 행복, 낭만, 여유를 기반으로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는 희박한 요소들인 것 같아 그 자체를 대변하고 싶었고, 희소가치 있는 특별한 옷을 통해 기분 좋은 감정이 전달되길 원했어요.
그 중심에 소재가 있는 것 같아요. 소재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폴리에스터나 나일론에 익숙한 우리 세대, 제 친구들에게 실크라는 소재를 입히고 싶었어요. 제이든 초가 쿠튀르적이고 공예적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건 옷을 보는 분들이 붙여준 형용사일 뿐 저는 사실 ‘접근 가능한 옷’을 만들려 했어요. 소재 자체가 다소 어렵고 자수 장식이 화려하지만 오히려 그런 것들을 거리낌없이 입을 수 있는 모양으로 만드는 게 우리의 정체성이라 생각했어요.
SFDF 올해의 우승자로 선정되셨어요.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거짓말인 줄 알았어요. 브랜드 론칭과 동시에 매년 지원해 이번이 벌써 네 번째였거든요. 파이널은 물론 1차 심사를 통과한 것조차 처음이라 선정된 게 실감 나지 않았어요. 시상식과 전시를 준비하면서도 마찬가지였고요. 행사 마치고 일주일쯤 지난 이제야 끝났구나 싶어요. 사실 그간 해온 것들이 무모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처음부터 어떤 ‘시도’라 여겼고 안정적인 상태에 이른다면 좋은 시도를 한 브랜드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SFDF 수상이 그 첫걸음이 된 것 같아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1 사진가 조기석이 촬영한 제이든 초의 조성민. 2 ‘01. Encore’ 컬렉션 룩. 3 비이커 청담점에서 열린 제21회 SFDF 우승자 제이든 초 전시 전경.
지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곳, 북촌의 제이든 초 플래그십 스토어에 대해서도 소개 부탁드려요. 구옥을 개조한 공간 디테일 등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어요. 처음으로 제대로 진행한 공간 프로젝트였어요. 도면 3개월, 공사 3개월 해서 거의 반년에 걸쳐 준비했죠. 저는 ‘욕심이 그득그득한’ 공간이라고 표현해요. 시작부터 불안정한 공간으로 보이길 바랐어요. 마감이 딱 떨어지거나 완벽하기보다는 어딘가 불편한 느낌이 있길 원했죠. 누군가는 너무 좋아하고 다른 누군가는 너무 싫을 수 있는. 사실 제이든 초 자체도 어떤 이에게는 소중한 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고 어려운 브랜드일 수 있죠. 저는 컬렉션을 할 때도 너무 예쁘면 싫거든요. 약간 불편해서 일주일쯤 지났을 때 예뻐 보이는 게 좋아요. 보는 순간 모두가 바로 예쁘다고 하는 건 이미 봤던 옷이라는 거니까. 새로운 건 분명 절반 정도는 불편하게 느껴져야 한다 생각했어요. 그렇게 옷을 만드는 방식을 공간에도 투영한 거죠. 컬렉션에도 정말 많은 소재와 색을 섞거든요. 이 공간도 모든 벽과 바닥의 소재가 달라요. 입구의 시멘트 벽부터 시작해서, 엄버 포스트파스트 공간은 실크로 염색한 벽이고 바닥은 나무 타일로 되어 있죠. 정면에 보이는 하얀 벽들도 모시 원단을 바르고 그 위에 페인트를 덧칠해 질감이 보이게 연출했고요. 그 밖에 2,000℃가 넘는 끓는 아연에 담갔다 빼서 철이 다 흘러내리는 텍스처를 살린 벽, 유리, 거울 등. 가장 섬세한 옷 뒤에 가장 거친, 날것의 소재가 놓이게 했어요. 바닥은 어설프게 이등분을 했고요. ‘한 공간에 이렇게 많은 소재를 쓰나? 조금 별로인데’ 싶은. 첫 공간 작업으로 너무 완벽하거나 세련돼 보이지 않고 어설퍼 보이거나 대범해 보이려 한 것 같아요.
지난 2월 첫 번째 쇼를 여셨죠. 당시 컬렉션 노트를 몇 번이고 곱씹어 읽은 기억이 나요. ‘P.S. 낭만과 사랑, 충만, 순수한 삶, 완벽한 행복’. 평소 동경하는 단어들이라 마음에 감동이 일었어요. 질문을 받고 저도 당시가 떠오르며 환기가 되더라고요. 처음 밝히는 건데 제가 직접 작성한 게 아니라 아그네스 마틴의 작품 제목에 사용된 단어들이에요. 그걸 보고 저도 마찬가지 감정을 느꼈거든요. 무언가 영원히 가질 수 없는 단어들의 나열인 것 같았어요. 너무 당연하게 아름답고 절대적으로 좋은 단어들이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조합으로 연달아 나오는데 오히려 파괴적인 느낌? 컬렉션에서 옷이 한 벌 한 벌 나올 때도 그 단어들의 나열처럼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눈앞에 있고, 걷는 소리마저 다 들리는, 손만 뻗으면 만지고 입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닿을 수 없이 어려워 보였으면 하는.
그 때문인지 쇼장에서 옷자락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 비즈가 찰랑이는 소리, 하얀 공간을 가득 채운 빛과 그림자 등이 아직도 선명한 인상으로 남아 있어요. 제이든 초가 옷을 보여주는 방식과 태도를 잘 드러내는 연출이라 생각했죠. 작은 브랜드니 대단한 걸 할 수 없다는 전제가 있었고, 쇼의 성격 자체도 홍보보다는 지난 3년의 시간을 자축하는 의미가 짙었어요. 그래서 타이틀도 ‘01.Encore’로 정했고요. 그 자리에 진심으로 함께 축하해줄 수 있는 가까운 분들만 초대하고 싶었어요. 이 길이 맞을까 고민하던 시간에 사무실로 찾아와 격려와 응원을 건네시고 저희 옷을 구입해주신 감사한 분들 딱 40명만 초대해서 제가 이만큼 성장했고, 덕분에 이런 옷을 겁 없이 할 수 있었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었죠. 그렇기에 쇼가 최대한 담백해 보이길, 부유하거나 사치스럽게 보이지 않길 원해서 의자와 백월, 조명, 모델 등 최소한의 요소만 두었어요. 제가 가장 편한 공간에서, 편한 분들을 모시고 하고 싶어 엄버 포스트파스트 홈에서 프라이빗하게 진행했고요. 집들이하는 느낌이었어요.
1, 2, 3, 4 다양한 소재가 한데 어우러진 제이든 초의 북촌 플래그십 스토어.
모두 빠르게 소비하고 빠르게 잊는 시대예요. 패션계는 그런 경향이 더 짙고요. 호흡이 빠르고 극한의 상업성을 추구하는 업계에서 지속 가능하며 쿠튀르적인 디자인을 선보인다는 게 쉽지 않을 듯해요. 어렵죠. 하지만 대량으로 생산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항상 ‘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생산성이 용이한 옷들도 결국 사람의 손을 빌리고, 사람과 소통해서 만들어야 하는 건 똑같거든요. 그래서 제가 하는 옷이 더 어렵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비단 생산뿐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고 소비하는 이들의 정서와 태도에서도 간극이나 어려움이 느껴지진 않나요? 저희 고객들이 다 천사 같아요. 불만을 표시하는 분도 없고 이제까지 환불 건도 없었어요. 좋은 분들과 함께 시작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옷 자체를 사는 것도 있지만 저희가 고생한 것에 대해 보답해주시는 느낌까지 들 정도예요. 그리고 구매하신 분들 모두 옷도 너무 잘 입고 다니세요. 감사한 일이죠.
디자이너에게 영감의 원천을 묻는 게 다소 식상하고 무의미할 수 있죠. 하지만 흔히들 사용하는 꽃 모티프를 제이든 초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을 보고 있자면, 그런 감각과 감성은 어디로부터 오는 걸까 궁금했어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제이든 초라는 세계를 형성하는 배경에 관한 궁금증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컬렉션을 준비할 때 뭘 찾지 않는 편이에요. 스스로는 게으르다고 표현하는데,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리서치를 잘 하지 않아요. 그냥 ‘나 이거 해야 할 것 같아’라는 시작점이 어디선가 생겨요. 평소 제가 먹고, 살고, 친구들과 다니면서 수집한 이미지나 쌓여 있던 것들이 어느 순간 내면에서 뭉치는 때가 있거든요. 그게 오리지낼리티라 생각해요. 물론 다 출처가 있는 ‘점’의 요소들이지만 그것이 모여 어떤 입체가 됐을 때 비로소 컬렉션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소재가 메인이다 보니 구상적인 사물이나 대상보다 추상적인 것에서 영감을 많이 얻고요. 항상 감정, 기분 등을 시각화하고 물체화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 생각해서 ‘저게 조금 더 반짝였으면 좋겠다’, ‘더 이런 느낌에 가까웠으면 좋겠다’라는 추상적인 언어로 팀원들과 소통해요. 디자이너들에게도 비주얼 레퍼런스를 잘 주지 않으려 하고요. 처음 5~6벌은 제가 시작하고 ‘이런 소재와 색인 것 같아’, ‘이렇게 시작해보자’ 제시해요. 그러고 3개월쯤 지나면 어느새 행어가 다 채워져 있더라고요.
제이든 초뿐 아니라 엄버 포스트파스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도 활동하며 두 브랜드를 4년 넘게 이끌어오셨어요. 각각 풀어낼 이야기가 다를 테니 힘든 만큼 그 이상의 성취감이 있을 듯해요. 둘 다 같은 시기 론칭했어요. 브랜드를 하는 게 처음인 데다 동시에 보여주고 판매해야 한다는 것에 부담이 컸죠. 같아 보여도 안 되고 또 너무 달라 보여도 안 되니까요. 추상적으로 접근하자면 제이든 초는 조금 더 직관적이고, 저 개인과 우리 세대에 관한, 제가 살고 있는 현재에 대한 이야기예요. 누군가는 로맨틱하고 꿈같고 환상을 불러일으킨다고 하지만 제게는 훨씬 더 현실적인 브랜드로, 지금의 제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입었으면 하는 것을 보여주죠. 반면 엄버 포스트파스트는 컨템퍼러리 브랜드 같다는 평가와 당장 입고 싶은 옷이 많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사실 과거부터 미래까지 모두 아우르는, 시대성이 느껴지지 않게 의도한 브랜드예요. 저는 ‘공적인 브랜드’라고 표현하는데, 원래부터 한국에 존재했고 서울 사람들이 향유한 소재와 염색 기법, 재료들을 제가 큐레이션해서 제시하는 것에 가깝죠. 직관적으로는 두 브랜드가 컬러에서도 크게 구분되는데, 엄버 포스트파스트의 경우 이름 자체가 짙은 브라운 색상을 지칭하다 보니, (이제야 희석이 되었지만) 엄버는 반강제로 핑크를 못 쓰고, 제이든 초는 어두운 컬러를 못 쓰게 되어버렸죠(웃음). 아직도 둘을 정확히 정의 내리는 것이 숙제이지만 이전보다 많이 정립된 것 같아서 이제는 제가 갖고 있는 요소들을 두 브랜드에 섞어 사용해도 똑같은 걸 한다는 느낌은 안 들 것 같아요. 기존처럼 조심스럽게 하지 않고 훨씬 공격적이고 본격적으로 구성을 넓혀가려 계획 중이에요.
1 비즈로 구성한 무지갯빛 꽃자수. 2 창 너머로 한옥 풍경이 들어오는 엄버 포스트파스트 홈. 3 엄버 포스트파스트와 담화헌의 제주 옹기 협업 컬렉션. 제주 옹기 흙을 장작 가마에서 구워냈다.
제이든 초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두고 본다면 지금은 어떤 지점에 와 있는 것 같나요? 미래가 시작되는 지점인 것 같아요. 그동안 현재에 집중하며,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했고요. 사실 제이든 초를 운영하기 위해 그 외의 다른 많은 일을 하며 4~5년을 보냈어요. 그래서 이 브랜드에 되게 미안해지더라고요. 낮에 밖에 나가 돈 많이 벌어오는 아빠 같은 느낌(웃음). 결국 퇴근하고 나서 늦은 밤에야 보는 자식. 제이든 초가 그런 느낌이에요. 그래서 짠하고 이 브랜드가 지난 시간 희석되지 않고 버텨줬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는 제이든 초에 더 초점을 맞추고 싶어요. 어떻게 보면 이번 SFDF 수상이 그 기점이 될 것 같고요.
벌써 12월도 며칠 남지 않았어요. 첫 번째 쇼와 SFDF 수상. 올해는 더욱 특별한 한 해로 기억되실 듯해요. 맞아요, 쇼가 2월이었고 SFDF 수상이 11월이었으니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큰 이슈가 있었어요. 첫 쇼와 첫 수상이라는 너무 값진 것을 얻은 좋은 한 해였어요.
2026년은 훨씬 바쁘실 것 같아요. 상반기에 두 번째 쇼를 준비하고 있고요. 올해 해외 세일즈도 조금 쉬었는데, 다시 파리로 옷을 들고 가서 202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진출해보려고요. 또 엄버 포스트파스트에서 먼저 시작했지만, 제이든 초에서도 라이프스타일과 홈 제품을 하반기 전에 출시할 예정이에요. 저희 텍스타일로 만든 패브릭 제품과 도자기, 가구류까지 준비하고 있어요. 엄버 포스트파스트에서 재료에 조금 더 집중했다면 제이든 초에서는 제 장기인 패턴이나 컬러감이 강조된 제품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바쁜 가운데 당신을 가장 행복하고 충만하게 만드는 순간은 어떤 건가요? 설마 일하실 때? 일할 때 맞아요. 저는 아직 이 일이 너무 좋아서 출근한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사무실과 집이 서로 바뀐 느낌이에요. 엄버 포스트파스트가 다음 달 새로운 전시를 여는데 주제가 ‘두 개의 집’이거든요. 저는 사무실이 오히려 더 집 같아서,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해요. 스튜디오에서 마음이 더 편하고, 집은 정말 씻고 자고 나오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생각해요. 그래서 좋아하는 것들은 모두 사무실에 두고요. 팀원들도 마치 가족처럼 서로 불편한 요소가 없어야 한 공간에서 지낼 수 있으니까 그렇게 될 수 있게 노력해요. 그 밖엔 친구들과 밥 먹는 것 좋아해요. 정말 가까운 사람들과 맛있는 것 먹을 때가 가장 충만해지는 순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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