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더봄] 사랑한다면 꼬리를 밟지 마라-철새가 가르쳐준 ‘예의 바른 무관심’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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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주 더봄] 사랑한다면 꼬리를 밟지 마라-철새가 가르쳐준 ‘예의 바른 무관심’의 미학

여성경제신문 2026-01-16 10:20:00 신고

지금 겨울 서천 금강하구의 노을은 유난히 붉다. 그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수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일제히 날아오르는 군무(群舞)는 경이로움을 넘어 숙연함마저 느끼게 한다. 서천의 겨울 하늘은 새가 글씨를 쓰는 종이다. 여러 탐조 현장을 다니며 매번 새들을 보며 감탄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엄격한 거리두기의 지혜다.

서천 금강하구에 수천마리의 가창오리가 모여 있다.  가창오리는 전 세계 개체 수의 90% 이상이 대한민국에서 월동하는 아주 특별한 겨울 손님이다. 시베리아 동부와 캄차카반도 등에서 번식한 뒤, 추위를 피해 한반도로 내려와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머문다. 사진/최한수
서천 금강하구에 수천 마리의 가창오리가 모여 있다.  가창오리는 전 세계 개체 수의 90% 이상이 대한민국에서 월동하는 아주 특별한 겨울 손님이다. 시베리아 동부와 캄차카반도 등에서 번식한 뒤, 추위를 피해 한반도로 내려와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머문다. /사진=최한수

보름 전 아우가 퇴원했다. 정신의학적 진단을 받기 위한 1주일이었는데 짧았지만 퇴원길을 맞이하러 간 나는 무척 반가웠다. 아우도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서로 웃으며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 순간뿐. 이후로 서로 말이 없다. 우울증이 1주일 만에 치료되지 않는다. 아우는 또다시 심연에 빠진 듯하다. 말이 없다. 나도 말이 없다. 남자 형제끼리는 원래 그렇다 치고 지내고 있다.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후배는 연락이 끊겼다. 전화를 할까 문자를 할까 고민하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괜히 남의 머릿속을 헤집어놓는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놈이 먼저 연락할 리도 없다. 어떻게 되겠지 하고 내버려두고 있다. 

그 와중에 연초라고 얼굴 좀 보자는 친구가 있어 만났는데 마침 심리 상담가다. 나와 아우, 후배 사이에 대화 없는 상황에 대하여 답답함을 토로하니 뜻밖의 말을 한다. 그냥 두란다. 그냥 내버려 두는 배려가 필요하단다. ‘예의 바른 무관심’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거리를 두고 지켜보면서 배려하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해주었다. 나더러 잘하고 있단다. 진짜 그런가? 내가 뭘 했다고.

쇠기러기떼들이 하늘을 날고 있다. V자 대열로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기러기들은 앞서가는 동료의 날갯짓이 만든 양력을 이용해 비행한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앞선 새의 꼬리를 밟지 않는다. 서로의 비행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존재에 의지해 끝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 이것이 자연이 가르쳐준 공존의 기술이다. 사진=최한수
쇠기러기 떼들이 하늘을 날고 있다. V자 대열로 수천㎞를 이동하는 기러기들은 앞서가는 동료의 날갯짓이 만든 양력을 이용해 비행한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앞선 새의 꼬리를 밟지 않는다. 서로의 비행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존재에 의지해 끝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 이것이 자연이 가르쳐준 공존의 기술이다. /사진=최한수

새들이 허락하는 최소한의 선, ‘도피 거리’

모든 야생동물에게는 ‘도피 거리(Escape Distance)’라는 것이 있다. 포식자나 낯선 존재가 그 선을 넘는 순간, 새들은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날아가 버린다. 숙련된 탐조가는 결코 그 선을 넘지 않는다. 새를 사랑할수록 망원경의 배율은 높이고, 자신의 발걸음은 멈춘다. 내가 다가가는 것이 새에게는 ‘호의’가 아니라 ‘공포’가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서천의 수만 마리 가창오리가 엉키지 않고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움직일 수 있는 비결 역시 거리에 있다. 그들은 서로 아주 가까이 붙어 비행하는 듯 보이지만, 결코 부딪히지 않을 만큼의 미세한 간격을 유지한다. 

기러기 역시 마찬가지다. V자 대열로 수천㎞를 이동하는 기러기들은 앞서가는 동료의 날갯짓이 만든 양력을 이용해 비행한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앞선 새의 꼬리를 밟지 않는다. 서로의 비행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존재에 의지해 끝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 이것이 자연이 가르쳐준 공존의 기술이다.

야생동물에게 ‘거리’는 곧 생명이다. 하지만 인간의 이기심은 종종 이 생명선을 침범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희귀 조류의 근접 촬영을 위해 새의 다리를 고의로 부러뜨리거나 둥지 주변의 나뭇가지를 모두 쳐내 새끼들을 천적에게 노출시키는 잔인한 사례가 빈번히 발생한다. 이는 탐조가 아니라 ‘학대’다.

인간에게는 멋진 사진 한 장이지만, 도피 거리를 침범당한 새에게는 삶의 터전이 파괴되는 재앙이다. 최근 멋진 참수리 사진 하나 건져 보겠다고 팔당댐 상수원 보호구역에서 냉동 물고기를 참수리에게 던지는 몰지각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인간과 동물의 ‘안전거리’가 무너질 수 있는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지 않는 선을 넘는 행위다. 

‘보여주는 곳’에서 ‘숨겨주는 곳’으로, 동물원의 진화

과거의 동물원이 창살 속에 동물을 가두고 인간의 구경거리로 전락시켰다면, 현대의 동물원은 ‘거리두기 시스템’을 통해 변화하고 있다. ‘경관 몰입형 전시(Landscape Immersion)’가 대표적이다. 동물의 서식지와 유사한 환경을 조성하여 관람객이 마치 동물의 영역에 조심스럽게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동물의 ‘숨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외국의 선진 동물원들은 전시장 곳곳에 바위틈·수풀·동굴 같은 은신처를 풍부하게 마련한다. 관람객의 눈을 피해 동물이 스스로 몸을 숨길 수 있게 설계한다.

관람객 쪽에서는 동물이 보이지만 동물 쪽에서는 밖이 보이지 않는 특수 유리나 일방향 관람창을 설치하여 동물이 시선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한다. 이제 동물원은 ‘무조건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동물이 편안함을 느끼는 ‘적정 거리’를 과학적으로 설계하는 공간으로 진화하려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에버랜드의 로스트밸리가 유일하다. 

인간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마음의 병을 앓거나 무기력에 빠진 사람에게는 그들만의 은신처가 필요하다. 우리가 호의라는 명목으로 그들의 성문을 두드리는 행위는, 어쩌면 잠든 동물을 깨우려 유리창을 두드리는 관람객의 조급함과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마음 아픈 사람을 보면 어떻게든 가까이 다가가 손을 잡으려 애쓴다. "힘내라", "왜 그러고 있느냐"며 끊임없이 안부를 묻고 도움을 자처한다.

하지만 마음의 병을 앓는 이들에게 타인의 과도한 호의는 때로 도피 거리를 침범하는 포식자의 접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라는 압박이 아니라, 숨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사랑한다면, 그냥 내버려 두는 용기

나는 소중한 관계 속에서 조급증을 앓아왔다. 무기력증에 빠진 이에게 나의 진심을 전하고자 더 많은 말을 건네고 선물을 챙겨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정적이었다. 그때 서천의 기러기들이 떠올랐다.

"기러기는 앞서가는 동료의 날갯짓이 만든 양력을 타고 날지만, 결코 앞 새의 꼬리를 밟지 않는다."

상대를 진정으로 돕는 길은 내 방식의 친절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 기운을 차려 날아오를 때까지 묵묵히 그 거리를 지켜주는 것이다. ‘예의 바른 무관심’이야말로 지금 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배려인 것이다.

예의 바른 무관심(Civil Inattention)이란 상대방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지만, 상대가 자신의 사생활이나 영역을 침해받지 않도록 '더 이상은 쳐다보지 않거나 아는 척하지 않는' 현대적 사회 에티켓을 말한다. 캐나다 사회학자 에르빙 고프먼(Erving Goffman)이 제시했다. 

지금 한참 추운 겨울이지만 이내 봄이 올 것이다. 그때 철새들이 북쪽으로 떠날 채비를 하듯, 우리 마음의 겨울도 언젠가는 지나간다. 지금 누군가와의 관계가 서먹하고, 아픈 가족의 무심함에 서운함이 밀려와도 서천의 들녘을 떠올려 보자.

서로의 도피 거리를 존중할 때 비로소 우리는 공존할 수 있다. 억지로 성문을 두드리기보다, 내 성문을 열어둔 채 묵묵히 내 길을 걷다 보면, 언젠가 기운을 차린 그가 먼저 내 문을 두드리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때까지 우리는 그저 ‘적당히 떨어져서’ 서로를 바라봐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심리상담가 친구에게 물었다. 혹시 내게서 우울증세가 보이느냐고. 그가 말했다.

“턱도 없는 소리 마라. 네가 우울증이면 온 국민이 우울증이다. 너만큼 밝은 애 못 봤다.”

☞예의 바른 무관심=캐나다 사회학자 에르빙 고프먼이 제시한 개념이다. 상대방의 존재를 인식하면서도 상대가 사생활을 침해받지 않도록 더 이상 쳐다보지 않거나 아는 척하지 않는 현대적 에티켓을 의미한다.

여성경제신문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sungz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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