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이 처음으로 7000억 달러를 돌파하며 또 한 번 역사를 썼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수출 구조가 중요한 기로에 놓여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전체 수출 규모는 커졌지만, 세계 시장에서 우리 비중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품목별로도 상황이 뚜렷하게 갈린다. 철강이나 기계 같은 전통 제조업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반면, 자동차와 반도체는 기술력과 고부가가치 전략을 앞세워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최근 수년간 우리 수출은 글로벌 통상 환경 악화, 보호무역 강화, 지정학적 리스크 속에서도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미국과 유럽의 금리 인상 기조, 주요국 관세 인상, 글로벌 경기 둔화에도 불구하고 수출 증가세를 유지한 점은 겉으로 보면 긍정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세계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몫이다. 2018년을 기점으로 한국의 글로벌 수출 점유율은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닌 구조적 변화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수출액 증가는 환율, 글로벌 수요 회복, 특정 품목 호황 등 외부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지만, 점유율 하락은 국가 산업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분석한다. 다시 말해, 한국이 더 많이 팔고는 있지만 다른 나라가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경쟁력 하락이 가장 뚜렷한 분야는 철강과 기계다. 철강 산업은 이미 2010년대 중반부터 구조적 어려움에 직면했다. 중국이 대규모 설비 증설을 통해 막대한 생산 능력을 확보했고, 부동산 경기 둔화로 내수 수요가 줄자 저가 철강 제품이 글로벌 시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 과정에서 가격 경쟁력이 핵심인 범용 철강 제품 시장에서 한국 업체들은 큰 압박을 받았다.
기계 산업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중국이 범용 기계류를 대규모로 생산해 낮은 가격에 공급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구도가 급변했다. 특히 공작기계, 산업용 장비 등 중저가 제품군에서는 중국산이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했고, 한국 제품은 가격 대비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로 인해 철강과 기계는 품목 경쟁력과 시장 경쟁력 모두에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단순히 판매량 문제를 넘어 산업 구조 전반의 재편이 필요하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고부가·고기술 중심으로의 전환 없이는 장기적으로 생존이 어렵다는 것이다.
화학공업제품은 상대적으로 다른 흐름을 보인다. 중국의 석유화학 설비 증설과 미국 셰일가스 기반 저가 원료 확산으로 범용 제품 시장은 압박을 받았지만, 한국 기업들은 특수 화학 제품과 고기능 소재 비중을 확대하며 품목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중국 시장에서는 배터리 소재, 화학 중간재 등의 자급률이 높아지면서 한국 제품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모습도 나타난다. 이는 중국이 단순 생산국을 넘어 기술 자립형 제조국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석유제품 부문은 비교적 긍정적이다. 국내 정유사들이 설비 고도화와 고부가 제품 비중 확대에 나서면서 품목 경쟁력이 개선됐다. 고급 윤활유, 친환경 연료, 항공유 등 고수익 제품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전환한 효과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자동차 산업은 한국 수출 경쟁력 회복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해외 생산 확대 등으로 시장 경쟁력은 일부 약해졌지만, 품목 경쟁력은 오히려 크게 개선됐다. 고급 브랜드 라인업 강화, 품질 신뢰도 상승, 디자인 경쟁력 제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전기차 분야에서 전용 플랫폼 개발과 배터리 효율 개선, 소프트웨어 경쟁력 강화가 성과로 이어졌다. 단순히 '값싼 차' 이미지를 넘어, 기술과 브랜드 가치를 앞세운 전략이 효과를 낸 것이다. 글로벌 완성차 시장이 친환경·전동화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한국 자동차 산업은 비교적 유리한 위치를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는 한국 수출 경쟁력의 핵심 축이다. 고대역폭 메모리(HBM), DDR5 등 고부가 메모리 제품을 빠르게 개발·상용화하면서 경쟁국보다 한 발 앞선 기술력을 확보했다. 이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고성능 컴퓨팅 수요 확대와 맞물려 한국 반도체 산업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다만 중국과 동남아 시장에서는 범용 메모리 제품을 중심으로 중국 기업들의 추격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업체들이 양산 능력을 빠르게 키우면서 가격 경쟁력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장기적으로는 고부가 제품 중심의 전략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 시장 잠식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한국 수출 경쟁력을 되살리기 위해 산업별 맞춤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철강과 기계처럼 경쟁력이 약화된 산업은 단순 연명식 지원이 아니라 구조조정을 통한 체질 개선이 핵심이다. 생산 효율화, 친환경 공정 전환, 고부가 제품 개발 등 근본적인 산업 재편이 필요하다.
반면 자동차와 반도체처럼 경쟁력이 강화된 산업은 연구·개발(R&D) 지원, 기술 보안 강화, 전문 인력 양성 등 '선도 산업 전략'이 요구된다. 단기 성과보다 장기 기술 우위를 지키는 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보호무역 강화에 대응해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통상 비용을 낮추는 외교·통상 전략도 병행돼야 한다. 이는 개별 기업의 경쟁력을 넘어 국가 차원의 시장 접근성을 높이는 핵심 수단이다.
한국 경제는 이제 수출 규모 확대만으로는 성장 한계를 돌파하기 어려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얼마나 많이 파느냐보다, 얼마나 높은 가치를 파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 철강과 기계의 경쟁력 하락, 자동차와 반도체의 약진은 이 같은 구조 전환의 신호탄이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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