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이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게 되면서, 국내 자본시장의 최대 현안 중 하나로 꼽혀온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그동안 사법 리스크로 인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MBK의 행보가 다시 가시화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선 이번 불구속 결정이 단순한 형사 절차상의 판단을 넘어, 고려아연을 둘러싼 지배구조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경영권 분쟁은 MBK가 고려아연의 자본 효율성과 주주환원 정책을 정면으로 문제 삼으면서 본격화됐다. MBK는 고려아연이 글로벌 비철금속 1위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내부 유보 △낮은 배당 성향 △보수적인 지배구조를 유지해 왔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 측은 “장기적인 설비 투자와 신사업 확대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특히 배터리 소재, 친환경 제련 기술 등 미래 먹거리 투자를 강조하며 단기 수익을 중시하는 사모펀드식 접근과 선을 그었다.
이 과정에서 고려아연은 단순한 기업을 넘어, 국내 핵심 소재 산업의 전략적 자산이라는 프레임을 적극 활용했다.
MBK는 단기간에 경영권을 탈취하기보다는 △주주환원 정책 확대 필요성 △글로벌 동종업계 대비 낮은 밸류에이션 △이사회 중심의 투명한 경영 구조를 강조하며 시장과 기관투자가를 상대로 여론전을 펼쳐왔다.
특히 해외 연기금과 글로벌 장기 투자자들을 겨냥해 "MBK는 단기 차익 실현 세력이 아니라 장기 주주가치 제고를 목표로 한다"는 메시지를 반복해 왔다. 이는 적대적 인수자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반면 고려아연과 우호 지분 진영 등은 △안정적인 경영 체제 △국가 기간산업 보호 △장기 기술 경쟁력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맞불을 놓았다.
최근 분쟁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변수는 김병주 회장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였다. 그동안 MBK는 김 회장의 수사 상황을 의식해 대외 행보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대형 딜이나 공격적인 주주 행동은 금융당국과 여론의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구속 결정으로 상황은 달라졌다. 업계에선 MBK 내부에서 그동안 보류됐던 시나리오들이 다시 테이블에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전언이 나온다. 김 회장이 경영 전면에 설 수 있는 여지가 커지면서, 의사결정 속도와 전략 선택의 폭이 동시에 넓어졌다는 평가다.
다만 MBK가 당장 이사회 장악이나 공개적인 적대적 M&A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망하고 있다. 대신 △배당 확대 요구 △자사주 매입·소각 압박 △ESG 및 지배구조 개선 제안 등을 통해 점진적으로 지지 세력을 늘리는 전략이 유력하다는 분석이다.
특히 고려아연의 높은 현금 창출력과 안정적인 실적은 해외 연기금, 국부펀드 등 장기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다. MBK가 이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할 경우, 경영권 분쟁의 무게추는 서서히 이동할 수 있다.
이에 고려아연 측도 방어 전략을 재정비하고 있다. 대규모자 계획 구체화, 배터리 소재·신재생 연계 사업 확대, 중장기 수익성 로드맵 제시를 통해 현 체제가 기업 가치를 극대화한다는 논리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단기 배당 확대 요구에 맞서, 장기 성장 스토리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업계에선 이번 분쟁이 단기간에 결론 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MBK는 사법 리스크 완화라는 호재를 얻었지만, 고려아연 역시 안정적인 지분 구조와 산업적 명분을 갖추고 있다.
일각에서는 △주주환원 정책 일부 수용 △추가적인 이사회 구조 개선 등 부분적 타협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승자독식보다는 장기 공존 모델이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싸움의 본질은 경영권 자체가 아니라, 누가 더 시장 친화적인 미래 가치를 제시하느냐에 있다"며 "김병주 회장 불구속 이후의 MBK는 훨씬 정교하고 계산된 방식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박성대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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