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샷!] 멸종위기종 된 '귀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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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샷!] 멸종위기종 된 '귀한 상'

연합뉴스 2026-01-16 05:50:00 신고

3줄요약

1월 졸업시즌 맞아 '개근상 = 귀한 상' 화제

"개근상, 학교당 대체로 ±10% 범위 내일 것"

"아파도 학교 가서 아파라" → "아프면 등교 말라"

"개근상 감소, 노동 기반 근대 교육담론 해체의 결과"

"학생의 기본도리와 의무…개근의 가치 여전히 중요"

선생님에게 받는 졸업 축하 꽃 선생님에게 받는 졸업 축하 꽃

(인천=연합뉴스) 임순석 기자 = 지난달 23일 인천 미추홀구 인천남부초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졸업생이 선생님으로부터 축하 꽃을 받고 있다. 2026.1.17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인턴기자 = "최근 중3 아들 졸업식이었는데 '3년 개근상'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 상을 받은 학생이 졸업생 100여명 중 10여명뿐이더라고요. 예전에 개근상은 거의 전교생이 받는 상이었는데 요즘에는 진짜 귀한 상이라고 하네요."

서울에 사는 조모 씨는 지난 15일 이렇게 말하며 바뀐 세상에 새삼 놀랐다고 밝혔다.

졸업시즌을 맞아 개근상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개근 거지'라는 말이 등장한 지도 오래지만 이런 추세라면 곧 개근상은 '멸종'될 수도 있겠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개근이라는 표현 자체는 학생이 학교에 성실히 참여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담고 있다"며 "학생으로서의 기본적인 도리와 의무를 알려주는 차원에서 개근의 가치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개근상, 정근상 상장 개근상, 정근상 상장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인턴기자 = 2022년 실제 중,고등학교에서 받은 개근상과 정근상. [연합뉴스 자료사진] 2026.01.17

◇ "요즘은 개근하면 놀림 받는 세상이잖아요"

강남구에 사는 학부모 김모 씨는 "지난주 중학교 졸업식에 갔는데 개근상 받는 학생이 전교에서 20명 남짓이라 깜짝 놀랐다"며 "체험학습이나 해외여행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개근상을 받는 아이가 드문 존재가 된 것 같다"고 밝혔다.

서초구에 사는 이모 씨도 "지난 9일 중3 아이 졸업식에 갔는데 전교생 300여명 중 개근상 받은 애가 20명 정도였던 것 같다"며 "학생들은 별 관심 없어 보였지만 나를 포함해 학부모들은 개근상 받는 학생이 그 정도뿐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며 놀라워했다"고 말했다.

또 전북 익산에 사는 윤모 씨는 "지난 6일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반별로 10명 정도씩 우정상 등 각종 상을 받았으나 개근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며 "'체험'을 쓰면 1년에 보름 정도는 결석할 수 있으니 학교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가는 애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때 졸업생 대다수가 손에 쥐던 개근상이 이제는 전교에서 단 몇 명만 이름을 올리는 '귀한 상'이 됐다. 학교 출석을 타협할 수 없는 원칙으로 여겼던 과거와 달리, 체험학습을 활용한 여행 등으로 선택적 등교가 보편화되면서 나타난 변화다.

"아파도 학교 가서 아파라"던 훈계는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 개근을 '교외 체험학습(여행)을 갈 형편이 안 되는 집 아이'로 비하하는 '개근 거지'라는 표현이 등장한 지도 오래다.

이런 분위기 속 아예 개근상을 없앤 학교도 나온다.

이달 경기도 용인의 한 중학교를 졸업한 전모(16) 양은 "우리 학교는 개근상을 안 준다. 주변에 (개근상을) 받은 다른 학교 친구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분당의 학부모 조모(51) 씨도 "중학교 졸업식에서 개근상 수여는 없었다"고 밝혔다.

온라인에서도 개근상의 위상 변화를 논하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최근 엑스(X·옛 트위터)에는 "오늘 좀 놀란 건 한 반(20여 명)에 개근상이 딱 두 명이더라. 오히려 학업 우수상은 수두룩하다. 격세지감"(de***), "요즘은 개근하면 놀림 받는 세상이잖아요"(eg***) 등의 글이 올라왔다.

고등학교 졸업식 고등학교 졸업식

[연합뉴스 자료사진]

◇ "담임 선생님도 '필요하면 체험학습 내라'고 한다"

개근상이 줄어든 배경에는 결석을 바라보는 인식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 경기도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현재는 교육청에서 일하고 있다고 밝힌 진모 씨는 "주변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물어본 결과 개근상의 의미가 과거만큼 크지 않다는 데에는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경기 양평군의 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29년차 교사 최모 씨는 "현재 우리 학교도 그렇고, 개근상이나 교과우수상처럼 상대적으로 의미가 줄어든 상은 아예 시행하지 않는 학교가 많아졌다"며 학교생활기록부 제도 변화도 영향을 끼쳤다고 짚었다.

최 교사는 "학교생활기록부 출결 상황란의 특기사항에 개근 여부를 명시하도록 교육부 기재 요령에 제시돼 있다"며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굳이 수상 기록으로 중복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근무 중인 학교를 예로 들면 전교생 59명 중 2025년 기준 개근 학생은 12명으로 약 20% 수준"이라며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10% 범위 내일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중학생 자녀를 둔 최모 씨는 "병원 진료로 하루 이틀 빠지는 게 특목고 진학에 영향을 주지 않을지 걱정했지만 학교에 따라 개근상 자체가 사라진 경우도 있더라"며 "예전처럼 결석을 문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학생들도 개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모습이다.

이달 서울의 한 일반고를 졸업한 김모(18) 군은 "3학년이 되면 학교 수업보다 학원이나 특강 수업이 더 우선시되는 경우가 많다"며 "모의고사 이후에는 아예 학교에 안 나오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개근을 채우겠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다"며 "결석한다고 해서 주변에서 이상하게 보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다음 달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이모(18) 양도 "입시 막판에는 결석하는 친구들이 많고, 담임 선생님도 '필요하면 체험학습 내고 다녀오라'고 하셨다"며 "고3에게 개근상은 사실상 의미가 없는 상이다. 받는 사람이 있는지도 잘 모른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개근 자체가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해 논란이 인다.

네이버 맘카페에는 "매일 학교에 나오는 아이가 성실해서가 아니라 체험학습이나 해외여행을 못 간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안타깝다"(고***), "직장 동료에게 아이가 개근상을 받았다고 했더니 '개근거지'라는 말을 들었다"(담***) 등의 글이 올라왔다.

지난 9일 엑스(X)에 올라온 '개근상' 관련 게시물 지난 9일 엑스(X)에 올라온 '개근상' 관련 게시물

[X(엑스·옛 트위터)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근대 교육 담론 해체의 결과"…"교육적으로 권장해야"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이를 교육 담론의 변화 속에서 설명했다.

조 교수는 "과거에는 개근상이 성실성이나 근면함 같은 인성적 가치를 보여주는 중요한 상으로 여겨졌다"며 "이는 교육을 노동과 동일시하던 근대 교육 담론의 영향"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시대가 바뀌면서 개인의 삶과 건강, 휴식에 대한 존중이 커졌고, 특히 코로나19를 계기로 공중보건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면서 감기에 걸린 학생은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이제는 노동보다 웰빙이나 삶과 여가의 균형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교육에도 반영되고 있다"며 "교육이 노동에 기반해 있다는 근대 교육 담론이 깨지고 변화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개근 거지' 논란에 대해서는 "사회 불평등이나 계층·계급 간 양극화가 만들어낸 부산물로 볼 수 있다"며 "한국 사회의 어둡고 씁쓸한 단면을 드러내는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사도 "코로나 시기 가정학습 최대 57일 인정이 이뤄진 이후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며 "생리 결석, 체험학습, 법정 감염병에 따른 출석 인정이 보편화되면서 기성세대가 갖고 있던 개근에 대한 인식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어 "1년이나 3년 동안 한 번도 아프지 않고 학교를 빠지지 않는 것이 과연 개인의 성실성만으로 설명될 수 있느냐, 운의 영역 아니냐는 반론도 나온다"고 덧붙였다.

사각모쓰고 졸업하는 초등학생들 사각모쓰고 졸업하는 초등학생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렇다고 개근상이 '무용'한 것은 아니다.

학부모 진모 씨는 "이번에 아들이 수시로 대학에 합격했는데 입학 면접관이 생기부 출결에 주목했다고 하더라"며 "3년간 결석이 없는 점에서 성실함을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최 교사도 "고등학교에서는 수시전형에서 출결이 중요한 평가 요소로 작용하는 만큼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며 "같은 성적이라면 3년간 개근한 학생의 성실함을 높게 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특성화고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도 학교생활기록부에서의 개근은 여전히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양 교수는 "개근상은 단순히 출석 일수를 넘어서 학생의 성실성, 학교생활에 대한 태도와 책임감을 함께 반영하는 상"이라며 "교육적으로 충분히 권장할 만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는 "학생 시기에는 생활 습관이 형성되는데, 어릴 때부터 '학교에 안 가도 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고등학교 단계에서는 출결 상황이 학생부 평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정당한 사유 없이 결석이나 지각이 잦을 경우 성실성이 낮게 평가돼 실제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minj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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