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존립과 직결된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의 배경에 특유의 경쟁·비교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인들은 세계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출산기피 이유로 '경제적 부담'을 꼽는 경우가 유독 많았는데 경제적 부담을 키우는 주된 이유가 경쟁·비교 문화에서 비롯된 높은 양육비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한국 사람들 특유의 "남들만큼은 해야"하는 인식이 사교육비 등 양육비 고통으로 이어졌고, 결국 주변의 모습을 보거나 들은 청년들이 출산에 과도한 공포감을 갖게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결혼은 원하면서 출산은 두려워하는 한국 사람들,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부담"
1970년대 무려 4.53에 달했던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가임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꾸준히 감소세를 보여 2024년 0.75명까지 급감했다. OECD 회원국 38개국 중 최하위(2024년 기준) 수준이다. 37위를 기록한 칠레(1.03명)과 비교해도 상당한 격차다. 가임여성 1명이 1명도 낳지 않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같은 기간 OECD 38개국 평균 합계출산율은 약 1.37명이었다.
우리나라의 낮은 출산율은 경제적 문제와 관련 깊은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11일 발표한 '국외 인구정책 사례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과 독일, 일본, 프랑스, 스웨덴 등 5개 국가에 거주하는 20~49세 성인 2500명씩을 대상으로 2024년 진행한 결혼·출산·육아에 관한 인식 조사 결과, 한국인들은 출산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 우려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한국인 응답자 비율은 무려 92.7%에 달했다. 이어 일본 73.2%, 프랑스 75.5%, 독일 77.6%, 스웨덴 65.2% 등의 순이었다.
반면 출산의 전제 조건인 결혼 선호도 결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결혼 의향은 한국인 응답자가 52.9%로 가장 높았다. 이어 스웨덴 50.2%, 독일 46.5%, 프랑스 38.2%, 일본 32.0% 등의 순이었다. 연구팀은 "경제적 부담이 한국의 낮은 합계 출산율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며 "출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완화하고 실질적인 제도적 지원을 강화할 경우 향후 출산율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인들이 출산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우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큰 양육비 부담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중국 베이징 인구·공공정책 연구기관인 위와인구연구소의 연구 보고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 부모는 자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7.79배에 달하는 양육비를 지출한다. 자녀를 만 18세까지 기르는데 발생하는 비용이 약 3억6500만원에 달하는 셈이다. 연구소가 분석한 주요 14개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같은 기간 1인당 GDP로 비교한 양육비 수준은 중국 6.9배, 일본 4.26배, 미국 4.11배 등이었다.
한국 부모들의 양육비 지출액 중에는 사교육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청주교육대학교 이호준 교수와 서울대 김지연 박사과정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의 사교육 참여율은 약 80% 수준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다. 이어 에스토니아(69.7%), 라트비아(68.7%) 등의 순이었다. 반면 덴마크(29.4%), 아일랜드(32.5%) 등은 사교육 참여율이 현격이 낮았다. 우리나라와는 무려 2.5배 이상의 격차를 보였다. 전체 사교육비 규모 역시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29조2000억원으로 또 다시 최고치를 경신했다.
비교·경쟁 문화➞사교육 열풍➞양육비 부담➞출산공포…"남들만큼" 인식이 낳은 출산포비아
한국의 사교육 열풍의 주된 원인으로는 "나만 처질 수 없다" "남들만큼만" 등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박힌 과도한 비교·경쟁 문화가 지목됐다. 앞서 OECD는 한국 교육 현황을 분석한 보고서를 통해 "전반적인 학업 성취도는 OECD 평균을 상회하지만 여전히 사교육 의존도가 매우 높다"며 "치열한 경쟁 문화로 인해 학생들이 정서·심리적 부담을 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비판적 사고력이나 자기주도성 등 인공지능(AI) 시대에 요구되는 미래 핵심 역량의 경우 한국 학생들이 비교적 취약하다"고 부연했다.
세계 석학들도 비슷한 견해를 내비쳤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헤크먼 시카고대 교수는 지난 3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 2026 연례총회'에서 한국 기자들을 만나 "학교와 사회에서 생산성만 바라보는 경쟁만 강요한다면 그런 사회 구조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그는 "한국의 교육에서 느껴지는 것은 오직 읽기, 쓰기, 수학, 시험성적 같은 측정 가능한 것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며 "더 중요한 것은 아이를 위한 상호작용적이고 내면적으로 실험하는 정신을 길러주는 것이다"고 말했다.
헤크먼 교수는 "경쟁적인 환경도 아이들에게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모든 자원을 인적 자원 개발에만 집중하도록 제한하는 것은 과도한 경쟁과 저출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한국의 출산율이 0.8%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게 이런 시스템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과도하게 이른 경쟁과 성과 압박이 만들어낸 한국의 학원이라는 구조적 결과가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 정서적 에너지를 키우고 결국 가족과 사회 전체에 압박으로 작용한다"며 "이런 구조가 사회 전체에 집단적으로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부연했다.
한국의 전문가들도 과도한 비교·경쟁 문화가 사교육 의존도를 높여 양육비 증가를 초래했고 종국엔 경제적 부담 때문에 출산에 대해서도 공포감을 갖게 만드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고 진단했다. 노중기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 전반에 뿌리박힌 과도한 비교와 경쟁 문화가 사교육 시장을 활성화시켰으며 이에 따라 양육비 부담이 커지면서 젊은 세대들에게 출산의 두려움을 안겨줬다"며 "육아에 대한 청년층의 심리적 부담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저출산 문제는 쉽게 해결되기 어려워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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